과학연구

유구한 력사를 자랑하는 고려성균관

 2019.11.25.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력사유적유물들은 우리 선조들이 투쟁과 창조적활동을 통하여 이룩한 귀중한 유산이며 후세에 길이 전해갈 민족의 재부입니다.》

력사유적유물은 민족의 넋과 재능, 민족사의 유구성을 실물로 보여주는 귀중한 문화유산이다.

우리 민족의 우수한 문화유산들가운데는 개성시에 있는 고려시기의 성균관도 있다.

현재 고려박물관으로 리용되고있는 고려성균관은 우리 나라 력사에서 첫 통일국가였던 고려시기 최고교육기관으로서 인재육성의 중심기지였다.

원래 이 건물은 고려 11대왕 문종시기(1047-1083년)에 대명궁이라는 별궁으로 건설된것이였다. 그후 순천관, 숭문관의 이름을 가지고 외국에서 오는 손들을 류숙시키는 숙소와 유교경전에 관한 사무를 보는 곳으로 리용되여오다가 국자감이 이곳으로 옮겨온 후부터 고려시기를 대표하는 최고교육기관이 자리잡게 되였다.

고려는 인재육성의 중요성으로부터 992년 개성 외성의 남대문(회빈문)안에 최고교육기관으로 설치하였던 국자감을 1087년에 이곳으로 옮기였다. 그리고 그 명칭을 성균감, 성균관, 국자감 등으로 고쳐부르다가 1362년에 성균관으로 정식 고착시켰다.

성균관에서는 학생들에게 봉건통치리념인 유교를 주입시키고 그들이 장차 봉건관리로서의 일정한 실무적자질을 갖추도록 할 목적으로 교육내용을 편성하고 《론어》를 비롯한 유교경전들과 률학(법학), 산학(수학), 서학(글씨쓰는 법) 등 전문지식을 가르쳤다.

물론 당시 교육의 목적과 내용에서는 시대적 및 계급적제한성을 면할수 없었지만 성균관의 설립과 그 운영은 우리 민족이 일찍부터 교육에 얼마나 큰 힘을 넣어왔는가를 력사적사실로 실증해주고있다.

고려성균관에서는 우수한 인재들을 수많이 배출하였다. 고려시기 국력강화와 과학문화발전에 기여한 사람들의 대다수가 성균관교육을 거쳐 과거에 급제한 사람들이였다. 그들중에는 조국방위를 위한 투쟁에서 공을 세운 서희, 강감찬과 같은 애국명장들도 있고 리규보, 리색, 리숭인, 정몽주, 문익점과 같은 이름난 학자, 애국적문인들도 있다.

고려성균관은 력사의 풍운속에 파란많은 곡절과 시련을 겪었다.

1392년 고려봉건국가가 멸망하고 그후에 조선봉건왕조가 세워짐에 따라 개성의 고려성균관은 최고교육기관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하고 지방교육기관으로 떨어지게 되였다.

또한 임진조국전쟁시기 일본침략자들의 야만적행위에 의하여 성균관건물은 불타버렸다. 현재 있는 건물은 17세기 초엽 8년간에 걸쳐 옛 모습대로 복구한것이다.

고려성균관은 20여채의 건물들로 이루어졌는데 제사를 지내던 대성전을 중심으로 한 북쪽구역과 강의를 하던 명륜당을 중심으로 한 남쪽구역으로 나뉘여져 하나의 큰 건축군을 이루고있다.

북쪽구역은 제일 높은 곳에 대성전이 있고 그 앞뜰 좌우에 동무와 서무가 있으며 대성전 서쪽에는 계성사가 있다. 북쪽구역을 둘러막은 남쪽담장가운데에는 삼문이 있다. 이 삼문을 통하여 남쪽구역을 드나들게 되여있다.

남쪽구역은 중심에는 명륜당이 있고 그 동쪽에 향실, 서쪽에 존경각이 있으며 명륜당앞의 좌우에는 동재와 서재가 마주서있다. 남쪽구역을 둘러싼 담장 한가운데 삼문이 있는데 이 문은 성균관으로 들어가는 기본정문이다.

남쪽구역에서 이채를 띠는것은 고려성균관의 오랜 력사를 증명해주는듯 오늘도 명륜당 앞마당좌우에 우람차게 서있는 1000년이나 자란 느티나무와 은행나무이다.

고려성균관은 우리 나라 교육제도의 유구성을 실물로 보여주는 국보적가치가 있는 귀중한 교육문화유산이다.

그러나 고려성균관의 천여년의 력사도 위대한 태양의 손길이 있어 비로소 빛을 뿌리게 되였다.

주체81(1992)년 5월 5일 80고령의 년로하신 몸으로 개성지구에 대한 현지지도의 길을 이어가시던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이날 아침 첫 시간에 이곳 성균관을 몸소 찾아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명륜당과 동재, 서재 그리고 천년자란 은행나무와 느티나무까지 돌아보시고 성균관을 잘 지었다고, 성균관은 국보적가치가 있다고 교시하시였다.

그러시고는 성균관이란 많은 인재를 키운다는 뜻이라고 하시면서 개성시의 책임일군들에게 성균관을 대학으로 리용할수 없겠는가고 물으시였다.

그때 일군들은 집이 좁고 옛날식이기때문에 대학으로 리용하기에는 불편할것 같다고 말씀올리였다.

그들의 대답을 들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리가 지금까지 세계에서 제일 력사가 오랜 성균관을 가지고있으면서 그것을 대학으로 승격시키지 못한것은 잘못되였다고, 성균관을 지금처럼 고려박물관으로 꾸려놓고 우리 나라에 오는 다른 나라 사람들과 해외동포들에게 이 건물이 고려시기의 최고교육기관이였다고 설명이나 하여서는 의의가 없다고, 성균관을 대학으로 승격시켜 《고려성균관》이라 하고 우리 나라에는 고려시기에 세운 최고교육기관이였던 성균관을 계승한 대학이 있다는것을 실물로 보여주는것이 좋겠다고 교시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깊은 자책에 잠겨있는 일군들에게 성균관을 대학으로 하는것이 어떤가고 다시 물으시였다.

일군들이 한결같이 그렇게 하는것이 더없이 좋을것 같다고 대답올리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동무들이 찬성하면 그렇게 하자고 하시면서 자신의 생각에는 성균관을 대학으로 승격시켜 《고려성균관》이라 하고 경공업종합대학으로 만드는것이 좋을것 같다고 교시하시였다.

참으로 어느 력사가, 교육자도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숭고한 뜻이 담겨진 가르치심이였다.

이처럼 민족의 력사를 누구보다도 귀중히 여기시고 빛내여주시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우리 나라에서 고려성균관을 계승한 1 000년력사를 가진 대학을 내올데 대한 현명한 조치를 취해주시고 몸소 《고려성균관》이라는 대학이름까지 친필로 써주시였다.

세계적으로 오랜 력사를 자랑하는 대학이라고 하여도 대체로 11세기에 설립되였지만 고려성균관은 그보다 한세기나 앞서 설립된 최고교육기관이였다.

고려성균관은 오늘도 민족유산보호사업을 우리 민족의 력사와 전통을 빛내이는 애국사업으로 여기시고 현명하게 이끌어주시는 경애하는 김정은동지의 뜨거운 손길아래 우리 민족의 우수한 력사문화유산으로 찬연히 빛나고있으며 우리 민족은 세계적으로 가장 앞선 교육문화유산을 가진 민족으로 자랑떨치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