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제국주의는 문화분야에서도 악독한 정책을 실시하였습니다. 조선에 대한 일제의 문화정책은 제국주의와 봉건적압박을 반대하는 조선인민의 투지와 애국정신을 말살하며 조선사람들을 자기들의 영구한 노예로 만들려는 목적을 추구한것이였습니다.》 (
40년에 걸치는 식민지통치시기 일제가 조선에서 실시한 식민지정책들은 어느것이나 할것없이 다 잔인하고 악독하였지만 식민지문화정책은 동서고금에 그 류례를 찾아볼수 없는 가장 악랄한 정책이였다.
물론 인류력사의 갈피에는 잔인한 침략자들이 적지 않게 기록되여있지만 일제침략자들처럼 조선인민의 말과 글, 성과 이름까지 빼앗고 지어는 머리속에 있는 정신마저도 깡그리 없애버리려고 한 그렇게 간악무도한 침략자는 동서고금에 없었다.
강점시기 일제가 조선인민의 민족성을 말살하기 위하여 실시한 악랄한 책동은 《내면적문화정책》에 기초한것이였다.
일제가 들고나온 《내면적문화정책》은 식민지통치를 실현하기 위한 하나의 중요한 침략정책이였다.
강점시기 일제는 조선에 대한 식민지통치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를 《정신문제, 사상문제》라고 보았다.
특히 1919년에 있은 거족적인 3.1인민봉기에 의하여 저들의 식민지통치가 밑뿌리채 뒤흔들리자 파괴와 략탈을 동반하는 식민지물질문화정책과 함께 조선인민에 대한 식민지정신문화정책의 중요성에 대하여 통감한 일제는 그 대책을 강구하기 위해 획책하였다.
그리하여 1920년대에 일제는 조선인민의 반일투쟁의식, 애국정신을 무력화시키고 종당에는 아예 없애버림으로써 저들의 식민지통치에 대한 그 어떤 반항도 할수 없게 만드는것을 식민지정신문화정책의 기본목표로 내세웠다.
이를 실현하기 위하여 들고나온것이 바로 《내면적문화정책》이였다.
일제는 《진실로 조선의 통치는 결코 외형적인 물질문화만이 아니라 내면적인 정신문화에 의거하지 않으면 성공하지 못한다.》고 떠벌이면서 대조선식민지통치에서 식민지정신문화정책실시의 필요성을 로골적으로 제창해나섰다.
일제는 로마인들이 그리스인들보다 큰 동화력을 가지고있지 못하였는데 광대한 령토를 다스리였고 영국인들이 프랑스인들에 비하여 타민족에 대한 동화력이 떨어지는데도 불구하고 능히 여러 민족의 인종을 포함융화하고있다고 떠벌이면서 이를 분석할 때 《내면적문화정책》이 식민지정책상 그 첫째 조건으로 된다고 떠들어댔다.
이것은 다른 민족을 스스로 동화하게 만드는데서 그리스인은 로마인보다 우세하고 프랑스인은 영국인보다 우세하였지만 실지 더 많은 식민지를 통치한것은 로마인과 영국인이며 자연적인 동화보다도 강제적인 동화정책이 더 효과적이라는것을 강조한것이였다.
그렇기때문에 일제는 《내면적문화정책》을 실시하는데 있어서 《신사참배》, 《정오묵도》, 《창씨개명》, 일본어보급 등 조선인민의 민족정신을 말살하기 위한 책동을 강제적인 방법으로 거리낌없이 감행하였던것이다.
일제가 들고나온 《내면적문화정책》은 본질에 있어서 조선사람들속에서 조선민족으로서의 투지와 애국정신을 깡그리 없애버리고 일본의 식민지통치에 고분고분 순종하는 노예적인 굴종의식을 주입시키기 위한 악랄한 정책이였다.
그것은 《내면적문화정책》이라는 비단보자기에 감싼것이 실지에 있어서는 조선사람들을 일본놈모양으로 동화시켜 왜왕에게 충실한 노복으로 만드는것이였다는것을 통해서 잘 알수 있다.
제3대 조선총독이였던 사이또 마꼬도는 《조선통치의 시정방침에 관한 유고》라는데서 저들의 악랄한 식민지통치를 조선의 문화를 《향상》시키며 문명적정치의 기초를 확립함으로써 《성지》 즉 왜왕의 지시를 받드는것이라고 떠벌이였다.
여기서 알수 있는것처럼 식민지통치전기간 일제가 집요하게 추구한것은 조선인민의 반침략투쟁정신과 의지를 말살하고 조선사람들을 저들의 영원한 식민지노예로 만드는것이였다.
즉 조선민족이 지니고있는 민족성, 민족의식을 말살하고 민족의 얼을 송두리채 빼앗음으로써 조선사람의 정신을 《일본인화》하는것이 필요하였다.
이런데로부터 일제는 《내면적문화정책》을 내들고 조선인민의 민족성을 완전히 말살하고 저들에게 충실한 노복을 만들어내기 위한 식민지정신문화정책을 우리 인민에게 강요하였던것이다.
일제의 《내면적문화정책》에 기초한 식민지정신문화정책에서 기본내용을 이룬것은 조선인민을 철저히 《황국신민화》하여 일본왜왕에 대한 숭배심을 부식시키는것이였다. 실례로 일본정신은 형식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론리로부터 매일 아침 학생들에게 아침조회시간에 운동장에 모여놓고 《궁성요배》, 《일장기》게양을 시켰고 일본왜왕의 《안녕》과 일본군의 《승전》, 《령혼》을 빈다고 《정오묵도》를 하게 하였다.
또한 어떤 성격의 행사에서나 《일장기》를 띄우고 《신사참배》와 《궁성요배》를 시키고 일본왜왕의 안녕과 장수를 바라는 《기미가요》를 부르게 한 후 《황국신민》이 될것을 맹세다지는 《황국신민서사》를 읽게 하였다.
이뿐이 아니다. 일제가 조선사람들의 성과 이름까지 일본식으로 바꿀것을 목적으로 한 《창씨개명》을 강요하고 우리의 말과 글까지도 모조리 없애버리려고 책동한것도 《내면적문화정책》에 따른 식민지정신문화정책의 대표적실례이다.
《창씨개명》은 일제가 조선인민에 대한 식민지정신문화정책실행의 가장 중요한 내용으로 간주한것들중의 하나이다.
1940년 11월에 조선총독 미나미는 력사적고증에 의하면 조선인은 야마도민족과 《동조동근》이였으며 서로 뗄수 없는 혈연적관계를 가지고있다고 떠벌이면서 《창씨개명》을 제창하였다.
예로부터 자기의 고유한 성과 이름을 가지고 단일민족의 혈통을 자랑하며 살아온 조선민족에게 《창씨개명》을 강요한것은 조선인민의 민족성을 깡그리 말살하기 위해 감행된 일제의 악랄한 범죄행위였다.
조선어말살책동도 조선민족의 민족성을 말살하기 위한 또 하나의 악랄한 《내면적문화정책》의 일환이였다.
민족은 민족어와 뗄수 없이 련결되여있으며 민족어는 사람들속에서 민족자주의식과 민족적자부심을 높여주어 민족적단결을 강화하는데 커다란 작용을 한다. 사람들은 자기의 고유한 말과 글을 사용하면서 자기 민족이 다른 민족과 구별되는 하나의 독자적인 민족이라는 자각을 가지게 되며 이와 같은 자각은 민족적존엄을 지키고 민족의 자주권을 행사하려는 지향에로 이어지게 된다.
그리하여 일제는 식민지적정신문화정책에서 조선어말살을 중시하고 조선말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한편 일본어를 《국어》로 선포하였다.
일제는 《국어(일본어)는 국민이 사상정신과 떼여놓을수 없는것이다. 반도인의 진정한 <황민화>는 국어를 상용시키는것이다.》고 떠벌이면서 기관, 회사, 지어는 교회당을 비롯한 공공장소와 공문서까지도 일본어를 사용하고 학교들에서는 일본어교육을 선차적인 문제로 제기하였다.
학교들에서의 조선어말살과 일본어강요에 대하여 일제출판물들까지도 《오늘의 보통학교는 일본어만능이다. 일본어질문에 일본어를 쓰지 않으면 교원은 듣지 않으며 조선인교원에게도 일본어를 쓰지 않으면 상담할수 없었다.》고 실토하였다.
이처럼 일제는 《내면적문화정책》이라는 허울밑에 악독한 식민지정신문화정책을 실시하면서 조선인민의 민족성을 말살하기 위해 날뛴 흉악한 침략자이다.
오늘 일본군국주의자들은 과거의 죄악에 찬 침략력사를 성근하게 사죄하고 반성할 대신 오히려 그것을 정당화하려고 책동하면서 또다시 모험적인 해외침략의 길로 줄달음치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