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종합대학 력사학부 박사 부교수 박금순
2019.3.7.
청봉밀영이 고난의 행군과 함께 항일혁명력사의 한페지를 차지할수 있게 된것은 거기서 혁명가의 신념과 충실성을 검증하는 엄중한 사건이 벌어져 인민혁명군의 모든 대원들에게 심각한 교훈을 남기였기때문이다. 항일혁명력사를 서술한 도서들과 교과서들에는 청봉이라는 이름을 가진 동명의 두 사적지가 나온다. 하나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주체28(1939)년 5월 조선인민혁명군 주력부대를 거느리시고 무산지구로 진출하실 때 첫 밤을 보내신 유서깊은 량강도 삼지연군의 청봉숙영지이고 다른 하나는 항일유격대원들이 1930년대 후반기에 후방밀영으로 개척한 서간도의 청봉이다.
청봉밀영에서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동지께서는 수령의 전사는 수령의 사상과 로선을 어떻게 지켜 싸워야 하는가를 실천적모범으로 보여주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그때 김정숙동무가 앞장에 서서 엄광호의 패배주의를 되게 비판하였습니다. 그는 사령부의 로선이나 작전적방침과 어긋나는 그릇된 사상에 대해서는 추호의 타협도 하지 않고 견결하게 투쟁하였습니다. 그는 철저한 사상론자였습니다.》
조선혁명의 전 로정은 수령의 혁명사상이 안고있는 진리의 힘을 남김없이 발양시키기 위한 사상전의 력사였다.
우리 혁명에서 가장 위력하고 유일한 무기는 위대한 혁명사상이였다.
우리 혁명은 그 첫걸음부터 자기의 확고한 지도사상을 가지고 사상의 힘으로 전진하여왔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간고하고 시련에 찬 혁명의 길에서 위대한 수령님의 혁명사상을 절대적진리로, 유일한 지침으로, 기준으로 삼으시고 견결히 옹호고수하여 투쟁하시는 실천적모범을 보여주시였다.
김정숙동지에게 있어서 위대한 수령님의 혁명사상과 로선은 모든 사고와 실천의 기준이였고 지침이였다.
항일혁명투쟁시기 적들은 조선의 혁명가들에게서 신념의 기둥을 무너뜨리고 혁명대오를 사상적으로 와해시키려고 어용출판물들을 동원하는 한편 사람의 발길이 닿아본적도 없는 천고의 수림속에까지 모략과 허위로 가득찬 종이장들을 하얗게 뿌려놓았다.
한장의 신문에 넋을 잃고 비관하다가 투항변절한 지갑룡의 사건이나 엄광호의 사건은 사상과 신념이 투철하지 못하면 어지간한 난관과 시련앞에서도 쉽게 동요하게 되며 나중에는 혁명의 배신자로 굴러떨어지게 된다는것을 보여주고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청봉밀영에서 위대한 수령님의 혁명사상에 배치되는 투항주의적궤변에 맞서 견결히 투쟁하시는 숭고한 모범을 보여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고난의 행군이 계속되던 주체28(1939)년 1월 7도구치기에서 녀대원들과 병약자들을 청봉밀영으로 들여보내시였다.
어느날 밀영에서는 남패자회의방침과 관련된 학습토론을 하였다. 엄광호는 그때 로씨야혁명의 경험을 실례로 들면서 어떤 혁명에나 고조기가 있고 저조기가 있기마련이다, 고조기에는 고조기에 알맞는 전략을 세워야 하고 저조기에는 저조기에 알맞는 전략을 세워야 한다, 그러자면 정세의 변화를 보고 진단을 정확히 내려야 한다, 그리고 저조기의 징조가 보이면 저조기가 도래하였다는것을 솔직하게 인정할줄 알아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 혁명은 지금 어떤 단계에 있는가, 저조기에 있다, 보라, 열하원정도 실패하고 《혜산사건》이 터지는 바람에 혁명조직들도 죄다 망가지지 않았는가, 이것이 그래 저조기가 아니란 말인가, 이런 형편에서는 《일보전진 이보퇴각》의 교훈을 명심해야 한다, 말하자면 공세와 정면대결은 피하고 유리한 기회가 조성될 때까지 퇴각해야 한다, 이것이 혁명을 구원하는 길이라고 하였다.
엄광호는 밀영안의 모든 성원들에게 이런 주장을 내리먹이려고 하였다. 열하원정과 혜산사건의 여파로 해서 혁명이 몹시 위축되여있던 때인것만큼 얼핏 들으면 그것은 사리에 맞는 주장같기도 했다.
그의 주장이 위대한 수령님의 혁명사상과 배치되는 위험한 견해라는것을 예리한 안목과 높은 정치사상적실력, 통찰력으로 포착하신 김정숙동지께서는 서슴없이 나서시여 여지없이 론박을 가하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객관적정세가 혁명투쟁에 많은 영향을 준다는것은 물론 우리도 부인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을 절대화해서는 안된다, 혁명가들은 정세가 불리하면 할수록 그에 반작용을 해서 화를 복으로 만들기 위해 분발해야 한다, 이것은 사령관동지의 뜻이다, 조선의 혁명가들은 정세가 유리할 때에도 투쟁을 해왔고 정세가 불리할 때에도 투쟁을 계속해왔다, 만일 조선공산주의자들이 정세가 불리할 때에는 숨어서 지내고 정세가 유리할 때에만 활동했더라면 조선인민혁명군이라는 상비적인 무장대오를 가질수 있었겠는가, 그리고 총검의 숲을 뚫고 국내에 나가서 보천보를 치는것과 같은 대담한 군사작전을 할수 있었겠는가, 맑스-레닌주의가 공산주의학설인것만큼 혁명활동과 실천에서 그것을 지침으로 삼는것은 물론 좋은 일이다, 그러나 사령관동지께서 늘 강조하는바와 같이 맑스-레닌주의도 조선혁명의 실정에 맞게 창조적으로 적용해야지 덮어놓고 적용해서는 안된다, 동무는 《일보전진 이보퇴각》의 내용도 잘못 리해하고있는것같은데 그래 조선혁명이 중중첩첩한 난관속에서 발전해왔다는것을 모른단 말인가, 동무는 지금과 같은 정세하에서는 퇴각하는것만이 상책이라고 하는데 도대체 우리에게 퇴각할 후방이나 있는가, 우리가 퇴각하면 혁명의 고조기는 누가 마련해주는가, 남패자회의에서 사령관동지께서 선언하신것처럼 우리는 어려운 때일수록 난관을 맞받아나가야 한다, 그래서 역경을 순경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말씀하시였다.
김정숙동지의 원칙적이고 사리정연한 론거는 엄가놈의 패배주의적이며 투항주의적궤변에 큰 타격을 주었다.
김정숙동지를 비롯한 녀대원들한테서 반격을 당하게 되자 엄광호는 맑스와 레닌의 명제들을 이것저것 섬겨대면서 어떻게 하나 자기 주장을 합리화하려고 하였다. 야심가, 기회주의자로서의 엄광호의 정체는 론쟁과정에 더욱 적라라하게 드러났다.
사상과 신념으로 하는것이 혁명이다.
이런 의미에서 항일무장투쟁은 그야말로 사상과 신념을 지키는 대결장이였다고 말할수 있다.
혁명의 배신자들, 타락분자들은 투쟁이 간고해지고 시련이 앞을 막아나설 때이면 자기의 본색을 드러내기마련이고 혁명의 사령부를 모해하고 헐뜯으며 대오의 통일단결을 파괴하고 더러운 종파적야욕을 실현하기 위해 미쳐날뛰게 된다.
김정숙동지께서는 토론회에서 엄가놈의 궤변을 높은 정치사상적실력과 신념으로 여지없이 밝혀놓으시고 타격을 가하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주체28(1939)년 4월 북대정자에서 엄가놈의 죄행을 낱낱이 폭로규탄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우리는 비록 한목숨이 끊어질지언정 사령관동지의 혁명사상과 어긋나는 경향과는 타협할수가 없었습니다.
이때 우리에게 힘과 용기를 준것은 오직 하나 사령관동지에 대한 믿음이였습니다.
…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높은 정치적각성과 혁명적신념을 가지고 사령관동지의 혁명사상을 견결히 옹호고수하여야 하며 그이의 혁명사상을 헐뜯는 현상에 대하여서는 날카로운 투쟁을 벌려야 합니다.
사령관동지의 혁명사상을 목숨으로 지킵시다. 이것은 우리의 가장 숭고하고 영예로운 임무입니다.》
청봉밀영에서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동지께서 사생결단의 각오와 의지로 혁명대오안에 나타났던 사상적동요와 패배주의적배신행위에 맞서 투쟁하신것은 위대한 수령님의 혁명사상을 견결히 옹호하고 혁명대오의 사상적단합과 통일을 실현하는데 기여하신 불멸의 공헌으로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