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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갑문건설을 시작할 때의 일이였다. 갑문을 어디에 건설하겠는가 하는 문제를 두고 론의가 분분하였다. 위치를 어디에 정하는가 하는것이 갑문건설과 그 관리운영에서 결정적의의를 가지는 중요한 문제이기때문이였다. 많은 론의끝에 설계일군들은 대동강하구의 당시 은률군의 압도와 메추리꼬리사이를 택하였다. 그들은 즉시 자료를 묶어
하지만
그러던 주체70(1981)년 5월 22일이였다.
거기는 남포항에서 무려 40여리나 떨어져있는 날바다였다.
일군들과 전문가들은 모두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다. 그 누구도 생각조차 해보지 못한 뜻밖의 곳이였던것이다.
사실 그무렵 갑문을 건설할 위치문제를 놓고 누구보다 사색과 탐구를 깊이하신 분은
대동강물에 의한 퇴적물의 운반과 침적문제, 바다감탕의 형성과 대동강하구에서의 퇴적문제, 밀물, 썰물현상과 갑문건설과의 관계문제, 갑문건설이 침적현상에 주게 될 영향과 그것이 미치게 될 후과,…. 다른 나라들에서의 갑문건설경험은 갑문위치를 잘못 잡으면 바다에서 밀려오는 감탕과 강에서 흘러내리는 퇴적물이 뒤섞여 쌓이면서 갑문운영에 엄중한 후과를 주게 된다는것을 보여주고있었다.
이렇게 놓고볼 때 압도와 메추리꼬리사이는 이미 쌓여진 감탕층이 두터운데다가 감탕퇴적이 더 많아질 우려가 있었다. 게다가 바다밑이 서로 다른 암반의 단층으로 되여있어서 갑문기초공사도 매우 어려울수 있었다.
물론 압도와 메추리꼬리사이를 막으면 공사량은 적어질수 있었다. 그러나 작업량만 가지고 만년대계의 갑문위치를 정할수는 없었다.
마침내 배가 갑문건설예정위치에 이르렀다. 그곳은 신통히도 대동강과 바다물이 경계를 이루는 곳이였다.
일군들의 가슴은 환희와 격정으로 세차게 끓어번졌다.
상상도 할수 없었던 신기한 현상이 눈앞에 펼쳐졌던것이다. 마치 자를 대고 줄을 긋기나 한것처럼 대동강물과 바다물의 계선이 뚜렷한데 바다물은 바닥이 들여다보이게 맑고 린접한 대동강물은 흘러내리는 퇴적물로 하여 흐려있었다.
참으로 기적같은 광경이였다. 바로 여기다. 여기에 갑문을 건설하면 갑문위치선정에서 기본문제인 감탕퇴적문제가 완전히 해결되여 감탕퇴적현상으로 인한 피해가 없게 될것이 아닌가. 그리고 피도를 지탱점으로 하여 공사도 헐하게 할수 있고 갑문언제가 륙지와 섬에 의탁하게 되기때문에 그야말로 만년대계의 든든한 구조물로 될수 있을게 아닌가.
이렇게 생각하는 일군들과 전문가들은 억제할수 없는 기쁨과 경탄을 안고
기쁨속에 우러르는 일군들과 전문가들의 심장은 연구에 연구를 거듭하면서도 풀지 못했던 문제를 과학적인 통찰력과 분석판단력, 기적적인 신통력으로 순간에 풀어주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