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연구

일제의 세균전부대 100부대의 정체

 2019.5.28.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세계적으로 제일 간악한것은 일본제국주의자들이였습니다.》 (김일성전집》 제90권 333페지)

일제가 감행한 야만적인 세균전만행의 갈피에는 100부대라는 악명높은 부대의 명칭도 올라있다.

100부대는 1930년대에 일제가 대륙침략전쟁을 발광적으로 벌리면서 중국의 장춘에 본거지를 두었던 세균전부대이다.

일제는 대륙침략전쟁을 도발한 후 1931년 11월 군마보장을 위해 관동군림시병마(病馬)수용소라는것을 장춘에 설치하였다. 이것이 100부대의 전신이였다. 1934년 4월에는 수용소안에 세균연구실이 설치되였으며 8월에는 명칭이 관동군림시병마창으로 바뀌였다. 1936년 8월에는 관동군군마방역창으로 되였고 이때부터 100부대로 불리우기 시작하였다. 마지막 부대장이였던 와까마쯔 아리지로의 이름을 따서 와까마쯔부대라고도 불리웠다.

100부대는 1945년 8월 일제가 패망할 때까지 중국의 길림성 장춘시 맹가툰에 주둔해있었다. 부대주둔지의 규모는 동서 500m, 남북 1 000m에 달하였고 거기에서 일본인 800명이 세균전과 관련한 각종 업무에 종사하였다.

100부대는 관동군사령부에 직속되여있었으며 부대운영비용은 일본륙군성과 관동군사령부가 보장하였다.

일제는 100부대를 군용동물의 위생관리, 연구 등을 진행하는 부대로 위장하기 위하여 그 명칭을 관동군군마방역창이라고 달아놓았다.

그러나 100부대는 조선과 아시아인민들을 반대하는 세균전을 준비하기 위해 각종 세균무기를 연구생산하고 독성물질을 통한 인체실험까지 감행한 악마의 세균전부대였다.

부서들의 구성만 보아도 100부대의 기본사명이 세균전준비였다는것을 명백히 알수 있다.

주요부서는 서무부외에 5개부로 이루어져있었다.

여기서 기본은 제2부(제1과;세균, 제2과;병리학, 제3과;실험용동물관리, 제4과;유기화학, 제5과;식물, 제6과;세균전준비)였다.

특히 1943년에 창설된 제6과는 세균전연구와 세균의 대량생산을 기본임무로 삼고있던 핵심부서였다. 1943년은 일제가 태평양전쟁에서 련이은 군사적참패로 하여 내리막길로 들어선 때였다. 따라서 일제가 이 시기 침략전쟁에서의 파멸로부터 벗어나기 위하여 세균무기를 대량적으로 생산하는 길에 들어섰다는것을 보여주고있다.

100부대가 제조할수 있는 년간 세균생산능력은 초기에만도 탄저균 1 000kg, 비저균 500kg, 적리병균 100kg이나 되였다.

그가운데서 탄저균만 보아도 치사률이 95%이상에 달하는데다가 생존성과 저항성이 매우 강한것으로 하여 단번에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해칠수 있는 악마의 무기로 알려져있다.

이러한 사실들은 100부대가 단순히 군마를 비롯한 군용동물들의 전염병을 막기 위한 수의방역부대가 아니라 인간의 생명을 해치기 위한 세균전부대였다는것을 잘 보여주고있다.

일제는 100부대에서 실지 침략전쟁에 써먹을수 있는 세균전연습과 세균무기생산을 위한 인체실험까지 감행하였다.

100부대에서 근무하였던 전 일제침략군 군인은 저들이 세균전연습을 진행한데 대하여 《…연구원, 장교, 기술원을 합쳐 30명정도 참가하였으며 지휘는 소좌 무라모도가 맡았다. 쏘련과의 국경에 있는 강에서 고무뽀트를 타고 약 100m간격으로 비저균을 투하하여 오염시켰다.》고 증언하였다.

지어 일제는 100부대에서 살아있는 사람을 대상으로 인체실험까지 감행하였다. 100부대에서의 인체실험은 주로 일제가 태평양전쟁을 도발한 1941년이후부터 많이 감행되였다. 인체실험은 100부대에서 배양한 탄저균, 비저균 등이 가축에 비해 사람에게 얼마나 강한 영향을 주는가를 시험해볼 목적으로 감행되였다.

100부대에서 인체실험에 직접 참가하였던 전 일본군군인은 《…인체실험은 1944년 8-9월에 진행되였다. 나는 제100부대에서 7~8명의 대상에 대해 독성물질의 효력을 시험하였다. 실험에 사용한 약품은 헤로인을 비롯한 독성물질들이였다. 이것들을 음식물에 섞어 실험대상에게 먹이였다.…음식물을 먹은 대상은 30분내지 1시간후에 잠들었고 5시간동안 계속 잠을 잤다. 실험대상들은 2주일후에는 쇠약해져 모두 죽었다.…헤로인 1g을 섞은 죽을 먹인 대상은 몇시간동안 의식이 똑똑치 않은 상태에 처해있다가 사망하였다. 또한 다른 실험대상들은 비밀을 지키기 위해 헌병에 의해 총살당하였다.》고 구체적으로 증언하였다.

이러한 자료들은 멸망의 구렁텅이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악랄하게 책동한 일제의 야수적본성을 낱낱이 폭로하고있다.

인체실험을 비롯하여 온갖 야수적행위를 일삼던 100부대는 1945년 8월 10일 부대장 와까마쯔 아리지로의 명령에 따라 죄악의 증거를 은페시키기 위하여 건물을 모두 폭파하여 흔적도 알아볼수 없게 만들어버렸다. 세균전준비에 리용된 중요한 기재와 자료들은 모두 파괴하거나 불태워버렸다. 그리고 부대장이하 주요성원과 가족은 렬차를 타고 우리 나라를 거쳐 일본으로 도주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후 응당 전범자로 징벌을 받아야 할 와까마쯔 아리지로를 비롯한 100부대의 주요관계자들은 세균전과 관련한 모든 자료들을 미국에 넘겨주는 대가로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고 살아남았다. 특히 와까마쯔 아리지로는 조선전쟁시기 우리 나라에 여러차례 기여들어 우리 민족을 멸족시키기 위한 미국의 세균전에 적극 협력하였다.

일제가 100부대와 같은 세균전부대들을 조직하고 감행한 세균전만행은 조선인민을 비롯한 전인류를 대참사속에 몰아넣기 위한 야만행위로서 절대로 용서받을수 없는 반인륜적행위이다. 또한 질식성, 독성을 포함하여 이와 류사한 가스 및 세균전의 사용을 완전히 금지하고있는 제네바의정서를 비롯한 국제법적요구에 엄격히 배치되는 범죄행위이다.

일본반동들은 과거 일제가 저지른 온갖 범죄적죄행에 대한 책임에서 벗어나기 위한 오그랑수에 매달릴것이 아니라 일제가 조선과 아시아인민들에게 저지른 반인륜적죄행과 관련한 모든 자료들을 공개하고 그에 대하여 철저한 사죄와 배상을 하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