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반드시 시대의 선구자로 되여야 하며 진정한 여론의 조직자로 되여야 한다.》 (
시대의 선구자이며 진정한 여론의 조직자인 신문에서 보도기사와 함께 론설이 차지하는 위치와 역할은 자못 크다.
조선에서 신문은 새롭고 의의있는 소식을 전달하는 기본기사종류인 보도기사와 함께 사회정치적문제들을 론의하고 그에 대한 견해와 주장을 내세우는 론설이 기사의 원종으로 하여 출현하였으며 그에 기초하여 여러가지 기사종류를 분화시키면서 발전하여왔다.
조선의 첫 신문에 실린 기사들중에서 가장 중요한 몫을 차지한것은 우선 보도기사이다.
기사는 신문에 실리는것을 목적으로 하여 씌여지는 글로서 그 목적과 내용, 형식에 따라 여러가지로 구분된다.
보도기사는 사실을 알려주는것을 기본으로 하는 기사이다.
보도기사에 언제, 어디에서, 누가, 무엇을, 어떻게, 왜 했는가 하는 사실전달의 요목만 갖추어지면 사실을 원만히 알려주는것으로 된다.
이런 속성으로 하여 세계적으로 볼 때 보도기사는 신문과 함께 출현한 기사의 원종이다.
조선에서도 보도기사는 신문의 원종으로 출현하였다.
그것은 조선의 첫 신문인 《한성순보》의 창간호에 20여건의 보도기사가 실려있는데서 잘 알수 있다.
창간호에 실린 기사 《안남사기원》은 언제, 어디서, 누가, 무엇을, 어떻게 했는가 하는 사실을 구체적으로 알려준 대표적인 실례로 된다.
《한성순보》창간호를 비롯한 여러 호들에 실린 이 기사들은 국내외에서 벌어지는 사실, 사건을 구체적으로, 신속히 알려준것으로 하여 보도기사의 본질적특성을 충분히 안고있었다.
순보에는 보도기사의 한 형태로서 별보 즉 특별보도라는 고정표식을 가진 글들도 가끔 실렸다.
별보는 보통의 관보나 외보, 잡보에 비하여 보다 중요한 문제들에 대한 보도 즉 특별한 비중을 가진 보도를 의미하였다. 따라서 글의 구성도 다른 보도에 비하여 보다 전개된 형태를 띠였고 제목도 큰 활자를 부각하여주었다. 이것은 새로운 기사형태가 아니라 후날 특종기사라고 불리운 특별히 중요한 소식보도를 의미하는것이였다.
이 시기에 와서 탐보원(전문적으로 보도자료를 수집하는 기자)들의 활동이 벌어지고 중앙과 지방의 제반 소식거리들이 취재집필공정을 거쳐 기사화되였던것만큼 이 기사들도 보도기사의 면모를 충분히 갖추었음을 알수 있다.
이처럼 조선의 첫 신문 《한성순보》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것은 보도기사였다.
조선의 첫 신문에 실린 기사들중에서 보도기사와 함께 중요한 몫을 차지한것은 또한 론설이다.
《한성순보》에는 보도기사와 함께 정치인들과 문필가들의 견해와 주장을 반영한 글들이 적지 않게 실리였다.
《한성순보》의 제3호에 실린 《회사설》과 제25호에 실린 《치도략론》 등이 대표적인 론설들이였다.
이와 같이 조선의 첫 신문 《한성순보》는 발생초기부터 보도기사와 함께 론설을 중요한 기사종류로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