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인민은 자기의 근면한 창조적활동으로 훌륭한 물질문화적재부를 창조하면서 자기 운명을 개척하여온 지혜롭고 재능있는 민족입니다.》 (
반만년의 유구한 년륜을 새기는 조선민족의 력사에는 각이한 시대에 뛰여난 재능으로 이름을 남긴 인물들이 적지 않다.
그속에는 녀성들도 적지 않으니 신사임당(1504-1551)이 바로 그들중의 한사람이다.
신사임당은 주로 이름난 녀류화가로 많이 소개되였고 또 임진조국전쟁전야에 《10만양병설》을 주장하여 이름을 날린 조선봉건왕조시기의 유명한 재상이며 철학가였던 률곡 리이의 어머니로 알려져있다.
그러나 신사임당은 그림을 잘 그리는것은 물론 문장에도 능하여 시인으로서도 문학사에 이름을 남기였다.
신사임당은 1504년 10월 강원도 강릉에서 신명화의 둘째딸로 태여났는데 이름은 전해져오지 않고 주로 호인 사임당 혹은 임사재로 전해져온다. 그의
어려서부터 총명하였던 신사임당은 녀성의 몸이지만 학문을 꾸준히 익혀 《시서화의 3절》(시짓기와 글씨쓰기, 그림그리기를 뛰여나게 잘하는것)로 이름을 날리였다.
신사임당은 시부모들을 공대하고 남편을 섬기며 자식들을 키우는 바쁜 속에서도 글짓기를 계속하여 적지 않은 시작품들을 남기였다.
그의 시작품들은 주로 녀성들의 지조와 도덕을 찬양하는 인정세태적인 내용으로 일관되여있는데 아쉽게도 현재까지 전해지고있는것은 그리 많지 못하다.
신사임당의 시작품들가운데서 대표적인것이 《대관령을 넘으며》와 《
시 《
옛집은 천리밖 첩첩히 산이 가려
그리운 이 마음은 꿈결에나 가보네
한송정언덕에는 달돋아 물에 어리고
경포대앞에는 맑은 바람 불어올제
모래우에 갈매기는 흩어졌다 모이고
강기슭 고기배도 오락가락 하련만은
어느때나 다시 강릉 옛길 달려가
부모님슬하에서 놀아볼가
그의 고향인 강릉은 옛날부터 《관동팔경》의 하나로 이름높은 경포대를 가지고있는 고을이여서 경치가 매우 아름다웠다.
시에서는 이러한 고향땅의 아름다움을 부모님들에 대한 그리움의 감정과 잘 결합시켜 노래하였다.
시 《대관령을 넘으며》에서도 역시 홀로 계시는 어머니를 혼자 두고 떠나가는 석별의 감정을 잘 보여주고있다.
신사임당은 1541년에 꿈결에도 그리던 고향 강릉을 찾았다. 그때 고향에는 남편을 잃고 딸자식들을 모두 시집보낸 늙은 어머니만이 홀로 살고있었다.
늙으신 어머니를 고향에 홀로 남기고 다시 떠나야만 하는 신사임당의 마음은 괴롭기 그지없었다. 그리하여 신사임당은 어머니와의 석별의 감정을 담아 시 《대관령을 넘으며》를 남기였다.
머리 흰 어머니 강릉에 외로이 계시는데
이 몸 한성 향하여 홀로 가는 마음이여
다시 한번 머리 돌려 옛 살던 고장 바라보니
흰 구름 갈앉은 곳에 저문 산만 푸르구나
시에서는 백발이 된 어머니를 홀로 두고 다시 떠나가야만 하는 자신의 애타는 감정을 어머니에 대한 효성의 감정과 결부시켜 노래하였다.
이상의 시들에서 보는바와 같이 신사임당의 시들은 정든 고향과 부모님들을 그리는 마음을 녀성의 섬세한 감정정서와 시적운률로 재치있게 노래하고있다.
이렇게 신사임당은 재능있는 화가, 현숙한 어머니로서만이 아니라 시인으로서도 당대에 이름을 날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