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연구

금성땅에 새겨진 위대한 자욱

 2022.1.26.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나는 나의 한생이 결코 남달리 특별한것이라고 생각지 않는다. 다만 조국과 민족을 위해 바친 한생이며 인민과 더불어 지나온 한생이였다고 자부하는것으로 만족할뿐이다.》 (김일성전집》 제95권 3페지)

해방전에는 제땅 한뙈기 없어 피죽도 변변히 먹지도 못하고 염전에서 손끝이 닳도록 소금을 걷어내는 일을 하거나 쪽배에 운명을 맡기고 바다에 나가 물고기를 잡으며 근근히 살아가던 온천군 금성리사람들이 오늘은 살기 좋은 고장에서 행복한 생활을 누리고있으니 그것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금성땅을 찾아주신 그날부터였다.

주체58(1969)년 3월 23일 온천군 금성리를 찾아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당시 리당위원회 부비서를 만나주시고 그의 지나온 생활경위에 대하여 따뜻이 물어보신 다음 리에 당원이 몇명이나 되고 농가는 몇호나 되며 살림집이 얼마나 모자라는가 등 리의 실태를 일일이 료해하시였다.

사실 그때까지만해도 이곳 리의 생활수준은 말이 아니였다. 살림집만해도 전쟁시기 대부분의 집들이 파괴되여 전후에 지은 초가집들이 태반이였으며 10여년이 지나도록 살림집건설을 하지 못하여 그때까지도 집이 없어 남의 집 웃방살이를 하거나 단칸짜리 집에서 생활하는 세대가 리세대수의 절반이상을 차지하고있었다.

리당위원회 부비서로부터 리안의 이러한 살림집형편과 농민들의 생활형편을 들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문화주택을 빨리 지어야 하겠다고, 한두해사이에 문화주택을 다 지어 농민들의 생활을 안정시켜야 한다고 하시면서 군당책임일군에게 올해 온천군에서 문화주택을 얼마나 짓게 되는가고 물으시였다. 군당책임일군으로부터 올해에 군적으로 1 500세대분의 문화주택을 짓게 되는데 금성리에 100세대분을 짓는다는 보고를 들으시고야 안심되시는듯 밝은 미소를 지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리당위원회 부비서에게 지난해 호당 분배는 얼마씩 차례졌는가고 또다시 물으시였다. 리당위원회 부비서로부터 호당 분배받은 량을 들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정도 분배하였으면 아주 낮은 수준이라고 하시며 동행한 일군들에게 아직 뒤떨어진 농장들이 적지 않다고 하시며 이 농장도 잘살도록 다같이 추켜세워야 하겠다고 하시며 그 방도에 대하여 일일이 가르쳐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여기 농민들의 생활을 추켜세우기 위해서는 농사를 잘 지으면서 한편으로 바다를 잘 리용하여 현금수입을 높여야 한다고 하시면서 험한 산골군인 창성군에서 산을 리용하여 농민들의 현금수입을 높인데 대하여 실례를 들어가며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 앞바다에 조개가 많다는 군당책임일군의 보고를 들으시고 그전에는 평안남도에 조개젓과 백하젓, 새우젓이 유명했는데 지금은 그런것이 얼마 없다고 하시며 조개를 많이 잡아 인민들의 생활을 향상시켜야 하겠다고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수산반원 한사람의 조개잡이 계획을 알아보시고 대단히 만족해하시며 대단하다고, 그만큼 잡으면 조개살을 10대 1로 보아도 대단하지 않는가고 하시고나서 앞으로 조개를 많이 잡아 현금수입을 높이며 농사를 기계화하여 절약된 로력으로 바다에서 고기를 많이 잡도록 하라고 가르치시였다. 그러시면서 수령님께서는 이곳처럼 바다를 끼고있는 곳에서는 과수를 하는것보다 수산을 하는것이 더 낫다고 하시며 조개와 물고기를 많이 잡으라고 거듭거듭 말씀하시였다.

이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금성땅을 떠나시기에 앞서 몸소 문화주택을 건설할 자리까지 일일이 잡아주시고나서 집들을 규모있게 잘 지으라고 그리고 농사일을 기계화하고 조개와 물고기도 많이 잡아 금성리를 살기 좋은 고장으로 꾸려야 한다고 거듭 당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현지지도를 받은 후 금성땅의 전체 일군들과 농장원들은 한덩어리가 되여 당면한 영농준비를 다그쳐 그해 모내기를 비롯한 봄철 씨붙임을 10여일이나 앞당겨 끝냈으며 점차 모든 농사일을 기계화하고 수산반규모를 대폭 늘이였다. 그리고 하루에 수천매의 블로크를 생산할수 있는 성형기를 만들어 2년동안에 300세대의 문화주택을 번듯하게 건설하고 새집들이를 진행하였다.

금성땅에 새겨진 위대한 수령님위대한 자욱이 있어 금성리는 몇해동안에 지난날의 낡은 때를 깨끗이 씻어버린 사회주의리상촌으로 훌륭히 꾸려질수 있었으며 농민들의 생활수준은 나날이 높아져 살기 좋고 행복한 농장으로 전변될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