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연구

오성산의 칼벼랑길에 새겨진 불멸의 자욱

 2022.4.2.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장군님께서 사나운 눈보라를 헤치며 병사들을 찾아 넘고 오르신 철령과 오성산, 사나운 파도를 헤치며 찾으신 초도를 비롯한 조국수호의 전초선들은 선군장정의 길에 바치신 장군님의 애국헌신의 증견자로 남아있을것입니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에 대한 그리움이 커갈수록 주체87(1998)년 8월의 오성산 칼벼랑길에 새겨진 불멸의 자욱이 생생히 떠올라 눈굽이 뜨겁게 젖어든다.

오성산은 적들과 직접 대치하고있는 최전방초소인 동시에 최전선의 고지들중에서도 높고 험하기로 손꼽히는 산이다.

가파로운 산비탈과 벼랑길을 톺아 오성산의 정점에 오르자면 굽이만도 무려 152개를 넘어야 하고 한굽이한굽이가 다 한발만 잘못 디디여도 언제 천길 벼랑으로 떨어질지 모르는 중부산악지대의 험산오지이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바로 아찔한 칼벼랑과 깊은 골짜기로 이루어져있고 적의 초소가 코앞에 도사리고있으며 해발고가 1 000m가 넘는 이러한 오성산을 한해에만도 두차례나 찾으시였다.

주체87(1998)년 8월초 어느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장마비에 령길이 씻기우고 군데군데 뭉청 떨어져나가 고지에 오를것 같지 못하니 도로를 수리한 후에 올라가주시였으면 한다고 간절히 아뢰는 일군들에게 고지에 전사들이 있는데 여기까지 왔다가 올라가지 않으면 안된다고, 최고사령관이 오늘과 같은 이런 궂은 날씨에 전선의 험한 령길을 다녀보아야 우리 전사들의 생활을 잘 알수 있다고 하시면서 결연히 야전차에 오르시였다.

세찬 바람과 폭우에 길옆의 풀대들이 뿌리채 뽑혀져 나딩굴고 사품치는 흙탕물에 씻기여 앙상한 돌만 남은 험한 길이여서 차체는 연방 들추어댔고 옆으로 눈길을 돌리면 깊이를 가늠할수 없는 낭떠러지가 아찔하게 내려다보여 오금이 저려나고 눈앞이 어질어질해와 모두가 손에 땀을 쥐고있는데 꽝하는 소리와 함께 야전차의 다이야가 예리한 돌에 뚫려 터져나갔다. 예비다이야를 맞추어끼우고 다시 전진하여 몇굽이를 돌았을 때 갑자기 야전차는 기우뚱하더니 낭떠러지로 기울어지기 시작하였다. 운전사가 재빨리 운전대를 돌려 위기를 모면하였지만 힘겹게 오르던 차가 또다시 헛바퀴를 돌더니 아래로 미끄러져내리다가 가까스로 멈춰섰다. 더는 차가 오를수 없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차에서 내리시여 차체에 어깨를 들이미시였다.

일군들이 그처럼 만류하였건만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더욱 힘차게 차를 미시였다. 뒤따라 어깨를 들이민 수행원들은 눈물을 삼키며 한치한치 차를 올려밀었다.

가슴을 찢는 안타까움과 간난신고끝에 야전차는 드디여 령길을 돌고돌아 초소에 이르렀다.

영광에 넘쳐, 환희에 넘쳐 환호성을 올리며 야전차로 달려오던 병사들은 그만 그 자리에 굳어지였다. 흙탕물을 뒤집어쓴 야전차에서 옷자락과 신발을 다 적시신 우리 장군님께서 내리시는것이 아닌가.

경애하는 최고사령관동지께서 이렇게 험한 길을 걸으시면 우리는 어떻게 합니까라는 병사들의 눈물에 젖은 목소리가 산정에 절절히 울리였다.

그러나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일없다고, 어떻게 좋은 길로만 다니겠는가고, 험한 길도 다녀보아야 한다고 흔연히 말씀하시였다.

정녕 조국과 인민의 운명을 한몸에 지니시고 우리 장군님께서 헤쳐가신 선군장정의 길에 그 언제 좋은 날, 좋은 길이 있었던가.

언제인가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헤쳐오신 험난한 전선길을 추억하시며 오성산이란 말만 들어도 눈물이 나고 간고하였던 고난의 행군, 강행군시기가 잊혀지지 않는다고 교시하시였다.

그날에 위대한 장군님께서 억척의 의지를 안고 걸으신 선군혁명령도의 그 길에서 오늘의 부강번영과 인민의 행복이 마련되였음을 오성산의 칼벼랑길은 오늘도 뜨겁게 전하여주고있다.

위대한 장군님 헤쳐가신 수백수천의 《오성산》의 그 전선길들이 얼마나 멀고 험했던지 고난의 그 나날에는 미처 다 몰랐어도 행복의 길을 걸으며 우리는 심장에 깊이 새겼다. 그 하나하나의 전선길들이 모여 웃음넘친 아이들의 등교길이 되고 인민의 행복넘친 길이 되였음을 우리는 위대한 장군님의 념원이 만복의 열매로 주렁지듯 오늘의 자랑찬 현실을 보며 더 잘 알게 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