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연구

배후교란작전

 2024.4.24.

인류력사에는 수많은 위인, 명인들이 배출되였으며 그들의 생애와 활동에 대한 수많은 일화들이 기록되고있다.

조선민족이 수천년력사에서 처음으로 맞이하고 높이 모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는 인류사에 공인된 절세의 위인이시며 그이의 혁명생애와 활동에는 세월이 흐를수록 만사람의 끝없는 흠모와 경탄속에 전설처럼 전해지고있는 수많은 일화들이 있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세계의 진보적인민들은 수령님을 우리 시대의 〈위인중의 위인〉으로 우러르고있으며 한 세대에 강대한 두 제국주의를 때려눕힌 강철의 령장이라고 높이 칭송하고있습니다.》

한 세대에 강대한 두 제국주의를 타승하시고 총대와 더불어 백승을 떨치면서 이룩하신 위대한 수령님의 불멸의 업적을 칭송하는 혁명일화들에는 신출귀몰하시며 적들을 답새기신 위대한 수령님의 신묘한 전법을 칭송하는 일화들도 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항일의 나날 신출귀몰한 전법으로 놈들을 때려눕힌 가지가지의 이야기들은 오늘도 조선인민들속에 널리 전해지고있다.

소왕청유격구방위전투(마촌작전)가 그런 이야기들중의 하나이다.

1934년에 접어들면서 소왕청유격구방위전투는 더욱 격렬해졌다.

적들은 만신창이 되여 허덕이면서도 검질기게 늘어붙어 장기전을 기도하였다. 인원도 무기도 식량도 공급받을데가 없는 유격근거지를 장기전의 함정에 빠뜨려 얼어죽고 굶어죽게 하자는것이였다.

많은 생각을 하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유격구방위전과 함께 적들의 종심에서 강력한 교란작전을 벌릴것을 결심하시였다. 이것만이 정세를 역전시킬수 있는 길이라고 보시였던것이다.

적들이 장기전을 꾀하는 조건에서 우리가 아무리 력량을 집결한다고 하여도 적을 감당하기 어렵게 되였다, 그래서 배후교란작전을 벌리자는것이다, 인민들을 사방에 피난시키고 유격대를 여러 조로 나누어 적후방을 교란시키자, 가령 총을 멘 대원 10명이 30~40명의 총없는 청년들을 데리고 적구로 들어가 적의 약한 고리들을 자꾸 답새기면 총도 얻고 먹는 문제도 해결할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그이의 작전안을 지지하였으나 일부는 그때까지도 용단을 내리지 못하고 주저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단호하게 결심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유격대를 두개 대오로 가르시고 한 대오는 유격구를 지키고 다른 한 대오는 자신께서 인솔하시고 적구로 들어가시였다. 그리고 1 500여명에 달하는 근거지인민들은 공청원들의 인솔하에 라자구로 소개하도록 하시였다.

그이께서 예견하신대로 적후방은 텅 비여있었다. 유격대가 어느한 부락에 들렸을 때 마을사람들은 기뻐하며 교즈와 기장떡을 비롯한 설음식을 정성껏 만들어주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 다음날에는 대원들을 종일 푹 재우시였다.

그러시고는 다음날부터 적들을 답새기기 시작하시였다.

맨 처음으로 친것이 량수천자의 적이였다.

유격대의 벼락같은 기습에 위만군과 자위단이 녹아나고 일본령사관 경찰병영이 완전히 점령되였다.

량수천자에서 적후교란전의 첫 총성을 울리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멀리로 가는척 하다가 그 자리에 돌아앉아 신남구에서 이동하는 적자동차수송대를 습격소탕하고 많은 밀가루와 군수물자를 로획하시였다.

신남구에서 멀리 떨어진 북봉오동의 산악지대로 쭉 빠져나가 새로운 전투준비를 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얼마후 북봉오동의 위만군과 경찰, 자위단을 또다시 들이치시였다.

북봉오동에서 승리의 개가를 울리고 사동방향에 진출한 유격대는 동골에 있는 산림경찰대를 공격하여 병영의 놈들을 모조리 사살하거나 생포하였다.

놈들은 사방에서 아우성을 쳤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내놓으신 배후교란작전에 넋을 잃은 놈들은 드디여 유격구에 들이밀었던 자기들의 무력을 철수시키지 않을수 없었다. 하여 90여일간에 걸쳐 진행된 소왕청유격구방위전투는 승리적으로 끝났다.

하기에 오늘 조선인민과 진보적인류는 탁월한 지략과 전법으로 항일대전을 승리에로 이끄신 위대한 수령님을 전설적영웅으로 높이 칭송하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