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력사에는 수많은 위인, 명인들이 배출되였으며 그들의 생애와 활동에 대한 수많은 일화들이 기록되고있다.
조선민족이 수천년력사에서 처음으로 맞이하고 높이 모신
《세계의 진보적인민들은
한 세대에 강대한 두 제국주의를 타승하시고 총대와 더불어 백승을 떨치면서 이룩하신
소왕청유격구방위전투(마촌작전)가 그런 이야기들중의 하나이다.
1934년에 접어들면서 소왕청유격구방위전투는 더욱 격렬해졌다.
적들은 만신창이 되여 허덕이면서도 검질기게 늘어붙어 장기전을 기도하였다. 인원도 무기도 식량도 공급받을데가 없는 유격근거지를 장기전의 함정에 빠뜨려 얼어죽고 굶어죽게 하자는것이였다.
많은 생각을 하시던
적들이 장기전을 꾀하는 조건에서 우리가 아무리 력량을 집결한다고 하여도 적을 감당하기 어렵게 되였다, 그래서 배후교란작전을 벌리자는것이다, 인민들을 사방에 피난시키고 유격대를 여러 조로 나누어 적후방을 교란시키자, 가령 총을 멘 대원 10명이 30~40명의 총없는 청년들을 데리고 적구로 들어가 적의 약한 고리들을 자꾸 답새기면 총도 얻고 먹는 문제도 해결할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그이의 작전안을 지지하였으나 일부는 그때까지도 용단을 내리지 못하고 주저하였다.
그이께서 예견하신대로 적후방은 텅 비여있었다. 유격대가 어느한 부락에 들렸을 때 마을사람들은 기뻐하며 교즈와 기장떡을 비롯한 설음식을 정성껏 만들어주었다.
그러시고는 다음날부터 적들을 답새기기 시작하시였다.
맨 처음으로 친것이 량수천자의 적이였다.
유격대의 벼락같은 기습에 위만군과 자위단이 녹아나고 일본령사관 경찰병영이 완전히 점령되였다.
량수천자에서 적후교란전의 첫 총성을 울리신
신남구에서 멀리 떨어진 북봉오동의 산악지대로 쭉 빠져나가 새로운 전투준비를 하신
북봉오동에서 승리의 개가를 울리고 사동방향에 진출한 유격대는 동골에 있는 산림경찰대를 공격하여 병영의 놈들을 모조리 사살하거나 생포하였다.
놈들은 사방에서 아우성을 쳤다.
하기에 오늘 조선인민과 진보적인류는 탁월한 지략과 전법으로 항일대전을 승리에로 이끄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