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연구

열두삼천리벌농민들의 세기적념원을 풀어주시여

 2019.10.7.

오늘 우리 나라는 위대한 수령님들의 현명한 령도에 의하여 농촌수리화가 높은 수준에서 실현된 나라로 전변되였다.

온 나라의 농장벌들에 사랑의 생명수를 보내여 수많은 농민들의 피눈물과 원한을 자아내던 천수답들을 그 어떤 가물과 수해에도 끄떡없는 풍년벌로 전변시키신 위대한 수령님의 현명한 령도는 열두삼천리벌에도 깃들어있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원대한 구상에 따라 진행된 평남관개공사는 우리 나라 농촌수리화에서 이룩된 거대한 승리였으며 물에 대한 열두삼천리벌농민들의 세기적념원을 완전히 실현한 력사적사변이였습니다.》(김정일전집》 제11권 3페지)

열두삼천리벌은 안주, 문덕, 숙천, 평원일대의 넓은 지역을 차지하고있는 우리 나라의 주요곡창지대의 하나이다.

그러나 해방전에는 농사에 필요한 물이 없어 이 곡창지대가 사람못살 곳으로 버림받고 갈밭만 무성한 곳으로 되여있었다.

논에 물을 한번 마음껏 대보았으면.

이것은 땅에 대한 소원과 함께 해방전 열두삼천리벌농민들의 평생의 소원이였다.

열두삼천리벌에서는 모내기때에 비가 좀 와야 그해에 한정보에서 벼를 겨우 800kg정도나마 거둘수 있었지만 모를 낼 때에 비가 안오면 그나마도 거두지 못하였다. 이 고장은 비가 안와도 농사가 잘 안되였지만 비가 조금만 많이 와도 또 농사가 안되였다. 저수지와 배수시설이 없어서 비가 조금만 많이 오면 물이 온 벌판의 벼를 삼켜버리였다.

가물과 수해때문에 몇알 거두지 못하는것마저 일제와 지주놈이 《공출》과 소작료로 깡그리 빼앗아가고 나면 농민들은 그야말로 탈곡마당에서 절량이 되고말았다.

먹는물도 없어서 마타리물(눈비가 온뒤 웅뎅이에 고인물)을 먹으며 토질병에 걸려 고생하며 살아가는것이 바로 열두삼천리벌의 농민들이였다. 그래서 해방전에는 모두 사람못살 곳이라고 이곳을 떠나가버리여 이 넓은 벌판에 대부분 갈만 무성해있었다.

지나가는 길손에게 밥 한그릇은 주어도 물 한그릇은 주지 못하던 이 벌에 번영의 새 력사가 시작된것은 위대한 수령님의 은혜로운 사랑의 손길이 비치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열두삼천리벌농민들에게 토지를 무상으로 나누어주시여 땅에 대한 그들의 소원을 풀어주시였을뿐아니라 물에 대한 소원까지도 풀어주시기 위하여 주체35(1946)년 4월 몸소 안주에 나오시여 자체의 힘으로 평남관개공사를 4~5년내에 완성할데 대한 방침을 제시하시고 그 실현을 위한 방도를 하나하나 가르쳐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37(1948)년 9월 서해기슭의 한끝인 숙천군 창동리에 들리시여 그들이 마타리물을 먹으며 살아가고있다는것을 아시고 몸소 그 물맛까지 보시며 물에 서린 그들의 원한과 슬픔을 헤아려보시였으며 차마 그대로 가실수가 없으시여 잔디로 벽을 쌓은 《떼장집》에서 농민들과 함께 밤을 지새시며 물문제를 풀 방도를 의논해주시며 하루빨리 평남관개공사를 완성할데 대한 웅대한 구상을 펼쳐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내각 제3차전원회의를 소집하시고 해방된 나라에서 할 일도 많고 자금을 요구하는 곳도 많았지만 막대한 자금을 이 공사에 투자하도록 하시였으며 이 공사를 국가적인 사업으로 내밀고 로력과 설비, 자재, 기술, 로력을 우선적으로 보장하여 이곳 인민들의 평생념원을 하루빨리 풀어주도록 하시였다.

그리하여 위대한 수령님께서 제시하신 휘황한 전망에 고무된 이곳 농민들은 그때부터 국가의 방조밑에 관개공사를 급속히 진척시켜나갔다.

그러던 평남관개공사는 전쟁으로 인하여 중단되지 않을수 없었다. 그러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전쟁의 중하를 한몸에 안고계시는 그 바쁘신 속에서도 언제나 열두삼천리벌농민들의 아픔을 한시도 잊지 않으시였으며 전쟁의 엄혹한 정세속에서도 평남관개공사를 계속 진행하기 위한 준비사업을 예견성있게 진행하도록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전후복구건설과 함께 평남관개공사를 다시 시작하여야 한다고 하시며 관개시설을 적극 보호하기 위한 대책을 세워주시였으며 전선에서 한명의 군인, 한발의 포탄이 귀중한 때였지만 수많은 인민군장병들을 저수지를 비롯한 파괴된 관개하천시설복구사업에로 보내주시고 공장들에서 양수기와 전동기를 비롯한 관개용기자재들을 생산하도록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전화의 불길속에서 전후복구계획과 함께 평남관개공사계획을 함께 작성하도록 하시였으며 5~6년으로 예견하였던 평남관개공사를 2년내에 앞당길수 있는 예비와 방도들을 몸소 찾아주시며 공사계획을 면밀히 작성하도록 세심히 보살펴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전쟁이 끝난 직후인 주체42(1953)년 8월 5일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제6차전원회의에서 평남관개공사를 3개년계획에 포함시켜 1955년부터 본격적으로 진행할데 대하여 가르쳐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아직은 기계설비도 모자라고 한푼의 자금, 한g의 자재가 귀하였지만 령락된 인민생활을 하루빨리 추켜세우며 물에 대한 농민들의 숙원을 하루빨리 풀어주어야 한다고 하시며 공사기일을 더욱 앞당길것을 결심하시고 전문가들도 미처 생각하지 못하였던 방도를 내놓으시고 공사의 구체적인 계획과 방향을 바로잡아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몸소 공사장을 찾으시고 걸린 고리를 하나하나 풀어주시였으며 주체43(1954)년 8월 내각결정 제121호를 채택하시여 평남관개공사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도록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공사진행정형을 수시로 알아보고 지도를 주시였으며 수많은 전문가들을 파견하시였으며 전국의 지원밑에 로력, 설비, 자재, 자금을 우선적으로 보장하여 공사를 힘있게 추진하도록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정력적인 령도에 고무된 일군들과 근로자들은 혁명적열의를 높이 발양하여 공사를 시작한지 8개월도 되지 않은 기간에 수만m3의 콩크리트타입, 980여개의 각종 구조물, 1 000여리에 달하는 간선과 지선, 용수로와 배수로건설을 진행하여 방대한 1단계공사를 결속하는 기적을 창조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평남관개 1단계공사에 이어 2단계공사도 하루빨리 끝낼데 대한 방침을 제시하시고 전후 모든것이 어렵고 긴장한 속에서도 여기에 많은 자금을 추가투자하도록 하시였으며 설비와 자재를 우선적으로 보장하기 위한 대책을 세워주시고 우리 인민의 불굴의 정신과 혁명적열의를 높이 발양시켜 공사속도를 최대로 높여 영농기전에 평남관개공사를 완공하도록 정력적으로 이끌어주시였다.

우리 인민들은 위대한 수령님의 두리에 굳게 뭉쳐 종파분자들과 사대주의자들의 머리에 철추를 내리며 평남관개공사를 계획보다 앞당겨 완공하기 위한 돌격전을 힘있게 벌리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현명한 령도밑에 5~6년이 걸려야 한다던 평남관개공사는 전후 불과 몇해 지나지 않은 주체45(1956)년 5월에 완공되였으며 그물같이 째놓은 물길을 따라 대동강의 물이 열두삼천리벌로 흘러들어 마르고 탄 이 땅을 가물과 홍수를 모르게 전변시켜놓았다.

우리 인민들의 세기적념원을 실현하여주신 위대한 수령님의 불멸의 업적과 헌신의 자욱은 열두삼천리벌만이 아닌 온 나라의 방방곡곡에 깃들어있으며 우리 인민들을 잘살게 하시려는 위대한 수령님들의 생전의 념원은 오늘날 경애하는 김정은동지의 정력적인 령도에 의하여 더욱더 자랑찬 현실로 꽃펴나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