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종합대학 법학부 박사 부교수 김원출
2023.4.26.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우리 수령님처럼 한없이 고매한 인민적풍모를 지니고 한평생 인민을 위하여 모든것을 바쳐오신 위인은 이 세상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김정일전집》 제7권 22페지)
한없이 고매한 인민적풍모를 지니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한평생 인민들과 고락을 함께 하시며 자신에 대한 그 어떤 특전도 허용하지 않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한없이 고결한 위인적풍모를 전하는 혁명일화들중에는 조선에서 전후복구건설이 승리적으로 끝나고 사회주의건설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던 시기에 어버이수령님의 댁에서 있었던 한알의 닭알에 대한 눈물겨운 이야기도 있다.
주체49(1960)년 8월 3일 늦은저녁이였다.
온종일 흙먼지 날리는 여러 건설장들을 현지지도하신 후 저녁무렵에는 전국예술축전에 참가한 연극부문 종합공연까지 지도해주시고 여느날보다 좀 일찍 댁으로 돌아오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부엌에서 일하고있던 료리사를 찾으시여 오늘은 왜서인지 목이 아프고 가슴이 답답하다고 하시며 닭알이 있으면 달라고, 그것을 까서 목을 추기면 좀 시원해질것 같아서 그런다고 갈리신 어조로 말씀하시였다.
료리사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듯 하였다. 그때 위대한 수령님의 댁에는 닭알이 한알도 없었다.
위대한 수령님의 청을 받고 어쩔바를 몰라하던 그는 서둘러 닭알을 얻기 위해 이집저집을 뛰여다니다가 어느한 군관의 집에서 닭을 기른다는 소리를 듣고 달려갔다. 그러나 그 집에도 낮에 반찬감으로 몇알 있던 닭알을 다 쓰다보니 남은것이 없었다. 결국 료리사는 끝내 닭알을 구하지 못하고 돌아가게 되였다.
군관의 안해는 나날이 근심걱정이 덜어지고있던 그러한 때에 그 행복을 마련해주신 어버이수령님께 닭알 한알을 못드린다는것이 도저히 리해되지 않아 가슴을 치며 눈물을 흘리면서 저도 모르게 료리사를 따라섰다. 하지만 송구스러움과 죄책감으로 몸둘바를 몰라 서성거리였을뿐 차마 어버이수령님의 댁으로 들어서지 못하였다.
이때 저녁식사를 끝내고 나오시던 어버이수령님께서는 군관의 안해를 띠여보시고 못내 반가와하시면서 그간 잘 있었는가고, 이밤중에 어떻게 왔는가고 물으시였다.
무엇이라고 선뜻 말씀올릴수가 없었던 그는 인사를 하느라 숙이였던 고개를 들며 숫저운 어조로 《수상님, 저희들의 죄가 큽니다. 모처럼 청하신 닭알 한알도 드리지 못하고…》했을뿐 더 말을 잇지 못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짐작이 가시는듯 닭알때문에 그러는가고, 료리사동무가 괜히 분주탕을 피웠다고 하시면서 아직도 눈굽을 적시고있는 료리사와 군관의 안해를 다정하게 바라보시며 환한 미소를 지으시고 괜찮다고, 우리 집에도 닭알이 없을 때도 있고 있을 때도 있다고, 우리 집이 무슨 큰 부자집이라고 먹고싶은것, 요구하는것이 척척 다 있겠는가고 말씀하시였다.
너무도 흔연하게 하시는 어버이수령님의 말씀에 군관의 안해가 송구스러운 마음으로 《그래도 나라의 수상이신데…》하면서 말끝을 흐리였다.
죄송함에 어쩔줄을 몰라하는 그들을 잠시 바라보시던 어버이수령님께서는 그 마음이 고맙다고, 너무 마음쓰지 말라고 하시며 수상은 부자가 아니라 인민을 위해 일하는 심부름군이다, 심부름군에게 먹고싶고 요구되는것이 다 있으면 일을 잘할수가 없다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계속하시여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배부른 충복이 주인을 위해 부지런히 일하는것을 보았는가, 나는 인민의 충복이다, 인민의 충복인 나에게 부족한것이 많아야 주인인 인민들의 생활이 풍족해지도록 하기 위해 부지런히 일을 더 많이 할수 있다고 하시며 크게 소리내여 웃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화제를 돌리시여 군관의 안해에게 아이들이 잘 자라는가고 물으시고 앓지 않고 모두 잘 자란다는 그의 대답을 들으시고는 그러면 좋다고, 우리가 이렇게 바쁘게 살면서 일하는것은 모두 그애들때문이라고, 오늘 비록 닭알 한알을 못 먹으며 일을 하지만 후날 우리 아이들은 행복하고 유족한 생활을 하며 잘살게 될것이라고 따뜻한 음성으로 말씀하시였다.
그날 군관의 안해는 어버이수령님께서 닭알대신 시원한 찬물에 밥을 말아 잡숫겠다고 하시며 된장에 풋고추를 찍어 식사를 하시였다는 료리사의 이야기를 듣고 세상에 우리 수령님처럼 고결하시고 인민적풍모를 지니신 분이 또 계실가 하는 생각으로 잠을 이룰수가 없었다.
이런 눈물겨운 사연들로 수놓아진 어버이수령님의 한생은 오직 인민만을 위하시고 인민을 위해 모든것을 바쳐오신 뜨거운 사랑의 한생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