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사람들은 고구려무덤의 벽화를 놓고도 조선의 문화가 자기네 나라에 건너왔다고 말하고있습니다.》 (
우리 인민은 고대와 중세 인류의 문화발전에 커다란 기여를 하였을뿐 아니라 일본을 비롯한 주변나라들의 문화발전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중세에 우리 나라가 일본의 문화발전에 큰 영향을 주었다는것은 6세기~7세기에 일본에서 높이 발전한 아스까문화의 다까마쯔무덤벽화를 통해서도 잘 알수 있다.
무덤은 죽은 사람의 유해를 보존하기 위해 만든 시설로서 그 형식과 내용에서 시기성과 함께 민족성과 지역적특성을 비교적 뚜렷이 반영한다.
1972년 일본 나라현 아스까촌에서 발굴된 다까마쯔무덤은 무덤칸의 크기가 길이 265㎝, 너비 103㎝, 높이 113㎝되는 돌칸흙무덤이며 무덤칸의 벽면과 천정에는 회를 바르고 사람, 사신, 해와 달, 별 등 그림을 그렸다.
그런데 다까마쯔무덤벽화에는 내용과 형식, 회화기법과 채색 등에서 동방의 강국이였던 고구려무덤벽화들에서 나타나는 특징들이 뚜렷이 반영되였다.
우선 다까마쯔무덤의 벽화에 그려진 사신도에서 고구려적성격이 나타나고있다.
다까마쯔무덤벽화에 그려진 사신도의 현무와 청룡, 백호는 그 형태와 화풍이 남포시 강서구역 강서큰무덤이나 평양시 력포구역 룡산리4호무덤벽화와 같다.
다까마쯔무덤벽화에는 사신이 그려져있는데 동쪽벽 가운데는 남쪽을 향한 청룡이, 서쪽벽에는 남쪽을 향한 백호가, 북쪽벽에는 현무가 그려져있으며 남쪽벽은 파괴되여 알아볼수 없다.
여기서 사신의 목에 띠를 맨것과 청룡, 백호의 발톱을 예리하게 3개씩 그린것은 고구려무덤벽화들에 나오는 사신과 같으며 특히 청룡의 목에 붉은 띠를 그린것은 강서큰무덤의 청룡그림에서도 볼수 있다. 특히 현무는 강서큰무덤의 현무를 방불케 한다.
또한 다까마쯔무덤의 천정에 별을 그린 방식에서도 고구려적성격이 나타나고있다.
다까마쯔무덤의 천정에 그려진 별은 《천상렬차분야지도》의 그림구성과 같이 관측자가 남쪽을 향하여 바로선 상태에서 밤하늘을 올려다보았을 때의 하늘의 광경 즉 별그림의 왼쪽은 동쪽, 웃쪽은 북쪽, 오른쪽은 서쪽, 아래쪽은 남쪽을 가리키는 형태로 되여있다.
또한 다까마쯔무덤벽화에 나오는 인물들의 옷차림과 그들이 손에 들고있는 부채에서도 고구려적성격이 나타나고있다.
다까마쯔무덤의 벽화에는 16명의 남녀가 그려져있는데 청룡의 남쪽에 4명의 남자와 북쪽에 4명의 녀자가, 백호의 남쪽에 4명의 남자와 북쪽에 4명의 녀자가 그려져있다.
남포시 강서구역 수산리무덤은 5세기 후반기의것으로서 이 무덤벽화는 당시 조선사람들의 옷차림을 연구하는데 특별히 귀중한 사료로 되고있다. 벽화에는 녀주인공이 입고있는 넓은 색동주름치마를 흰색, 노란색, 분홍색의 순서로 밝고 연한색으로부터 시작하여 점차 화려하고 진한색으로 그렸다. 수산리무덤벽화에 그려진 네가지 빛갈이 규칙적으로 배합된 녀주인공의 색동치마는 다까마쯔무덤벽화에 그려진 녀자의 색동치마와 매우 비슷하며 다까마쯔무덤벽화에 그려진 남녀가 들고있는 동그란 부채도 고구려벽화무덤인 집안다섯무덤의 제4호무덤 인물화에 그려진 부채와 꼭 같다.
이러한 사실들은 당시 고구려문화가 일본의 문화발전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는것을 보여준다.
이상에서 본바와 같이 조선민족은 오래전부터 발전된 문화를 창조하여 인류문화의 보물고를 풍부히 하였을뿐 아니라 주변나라의 력사와 문화발전에 큰 영향을 준 슬기롭고 지혜로운 민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