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연구

언제나 자신의 숭고한 귀감으로

 2020.5.26.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이민위천〉, 인민을 하늘같이 여긴다는 이것이 나의 지론이고 좌우명이였다. 인민대중을 혁명과 건설의 주인으로 믿고 그 힘에 의거할데 대한 주체의 원리야말로 내가 가장 숭상하는 정치적신앙이며 바로 이것이 나로 하여금 한생을 인민을 위하여 바치게 한 생활의 본령이였다.》 (김일성전집》 제95권 2페지)

허례허식은 낡은 착취사회에서 통치배들의 생활방식으로서 우리 시대 사람들의 생활방식과는 아무런 인연이 없다.

위대한 수령님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자식들의 결혼식이나 생일놀이, 선친들의 제사 등 관혼상제와 일상생활에서 사치와 허례허식을 반대하여 투쟁하며 일군들부터가 소박하면서도 혁명적으로 생활하는데서 모범이 되여야 한다고 하시면서 몸소 그 숭고한 귀감을 보여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일찌기 1970년대 나라의 경제규모가 커지고 생활이 넉넉해질수록 랑비현상을 없애고 절약투쟁을 강화할데 대하여 기회가 있을 때마다 강조하시면서 특히 허례허식으로 인한 랑비를 반대하며 새로운 사회주의적생활양식을 창조하는데서도 일군들이 이신작칙하여야 한다고 교시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당과 국가사업을 지도하시면서도 허례허식으로 인한 랑비를 없앨데 대하여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주체61(1972)년 9월 어느날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어느 한 연회의 준비정형에 대하여 일군들로부터 보고를 받으시였다. 당시 일군들은 이 연회를 될수록 성대히 차리려고 하였다.

연회준비정형을 료해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연회에 인원을 많이 참가시키지 말아야 한다고, 국내간부들만 참가하는 연회에는 많은 인원을 참가시킬 필요가 없다고, 지금 연회에 인원을 많이 참가시키기때문에 랑비가 많다고 하시면서 앞으로 연회를 조직할 때 인원을 극력 제한할데 대하여 교시하시였다.

그후 주체63(1974)년 새해경축연회를 준비할 때에도 국가연회에서 허례허식을 없앨데 대하여 강조하시면서 연회를 크게 차릴 필요는 없다고, 그저 갑산식잔치처럼 차리면 된다고 유모아식으로 말씀하시였다.

당시 일군들은 처음에 《갑산식잔치》라고 하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말씀의 뜻을 인차 알아차리지 못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갑산식잔치라는것은 널판자가운데다 꼬챙이를 하나 꽂아놓고 거기에다 돼지고기 한조박, 군두부 한조박 그리고 순대나 좀 베여서 꽂아놓으면 된다고, 잘하는데서라야 술이나 한잔 부어놓는다고, 격식이 따로 없다고 그 말을 통속적으로 풀어서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당과 국가사업을 지도하시는데서뿐아니라 보통날의 일상생활에서도 허례허식을 반대하시고 몸소 그 숭고한 귀감을 보여주시였다.

주체61(1972)년 이른봄이였다.

그때 일군들은 이제 곧 위대한 수령님의 댁에서 경사스러운 대사가 있으리라는 소식을 전해듣게 되였다.

일군들은 어떻게 하면 그 대사를 준비하는데 도움을 드릴가 하고 생각하고있었다. 그러나 한주일이 지나도 아무 소식이 없었다. 하도 궁금하여 어느날 한 일군에게 조용히 물어보니 천만뜻밖에도 대사는 며칠전에 이미 치르었다는것이였다.

이 말을 듣고 아연해하고있는 일군들에게 그는 다음과 같은 내용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원래 관혼상제와 같은 대사에서 허례허식을 반대하시는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번에도 많은 사람들을 청해다 요란하게 음식을 차려놓고 떠들썩하게 하는것을 처음부터 막으시였다. 그래서 절대로 소문을 내지 못하게 하시였다. 그리하여 그처럼 뜻깊은 대사이건만 이날을 아무런 격식없이 말그대로 소박하게 보내게 되였다.

그 일군은 그날 위대한 수령님께서 하신 말씀의 내용을 궁금해하는 일군들에게 들려주었다.

우리 집을 너무 어렵게 생각할것은 없다. 원래는 우리 집도 평범한 농민의 가정이였다. 우리 할아버지도 한평생 농사로 늙으셨고 삼촌도 지금 만경대에서 농사를 하고계신다.

내가 지금 수상을 한다고 해서 우리 가문이 뭐 특별한 집안은 아니다. 이 나라의 로동자, 농민들과 같은 평범한 사람들이다.

그리고 오늘의 준비가 너무 소박하다고 섭섭히 생각지 말아야 한다. 털어놓고 말해서 우리 집에서 경사가 있다는것을 알리면 축하하러 올 손님들은 얼마나 많을것이며 무슨 선물인들 들어오지 않겠는가,

그러나 나는 그런것을 반대한다.

당에서는 지금 낡은 생활인습을 반대하고있는데 우리 집이라고 하여 그런것을 허용해서야 되겠는가. 오히려 내가 누구보다도 검박한 생활의 모범을 보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결혼식이요, 생일이요, 제사요 하면서 많은 음식을 차려놓고 숱한 사람들이 모여들어 떠들어대며 랑비하는것은 결코 좋은 일이 아니다.

우리는 아직도 할 일이 많고 건설할것도 많다. 조국도 통일하지 못했다. 그런데 집집마다 그렇게 랑비를 해서야 되겠는가.

결혼식에도 꽃다발이나 상에 놓고 가족들이 조용히 모여서 신랑신부의 행복을 축원하여 축배나 한잔씩 들고 앞으로 당과 혁명을 위해서 일을 더 잘하도록 고무해주면 될것이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고나서 다른 의견이 없는가고 물으시였다고 한다.

모두들 지당한 말씀이라고 하며 위대한 수령님께 안녕을 축원하여 삼가 축배를 부어올렸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만면에 밝은 미소를 담으시고 그 잔을 받으시며 자신의 마음을 리해해주니 고맙다고, 자신께서는 오늘 정말 기쁜 마음으로 이 잔을 들겠다고 하시면서 우리의 새 세대들이 혁명의 믿음직한 계승자로 자라난것을 가장 커다란 기쁨으로, 자랑으로 여긴다고 말씀하시였다고 한다.

일군들은 이 말을 들으면서 위대한 수령님의 한없이 겸허하고 소박하신 풍모에 다시한번 크나큰 감동을 받았다.

언제나 자신의 숭고한 귀감으로 일군들을 가르치시고 손잡아 이끌어주시는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낡은 생활인습을 타파하시는데서도 이처럼 희세에 길이 전할 고귀한 력사적화폭을 남기시였던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