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연구

조선전쟁시기 미군에게 제 민족의 피까지 섬겨바친 일본의 죄행

 2017.9.15.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조선인민은 우리의 평화적도시와 농촌을 재더미로 만든 미군의 공군기지들이 일본에 있으며 조선전쟁시기 일본이 미군의 병기창으로, 후방기지로 되여있었다는것도 잘 알고있습니다.》 (김일성전집》 제15권 469페지)

일본은 지난 조선전쟁시기 《유엔군》에 소속된 15개추종국가들에 비할바 없이 우리 인민을 반대하는 침략전쟁에 적극 가담한 특등참전국이다.

일본군국주의자들이 조선전쟁초시기부터 온 나라를 통채로 미국의 작전 및 공격기지, 병참 및 보급기지로 제공하였다는것은 널리 알려진 력사적사실이다.

심지어 일본군국주의자들은 조선전쟁에서 얻어맞은 미제침략군부상병들을 치료하기 위하여 수많은 의약품들을 마련하는 한편 일본의 병원들에서 일하는 간호부들까지 섬겨바치면서 미국의 조선침략전쟁을 적극 지원하였다.

일반적으로 전상자를 구하는데서 제일 첫째가는 의약품은 피이다. 조선전쟁시기 일본군국주의자들은 미군부상병들의 목숨을 살리기 위하여 제 민족의 피까지 뽑아 바쳤다.

그것은 미군 부상병들의 치료를 위해 부족되는 피를 일본인들의 피를 긁어모아 보장하려고 미쳐날뛴 일본적십자사 《수혈대책위원회》의 활동을 통하여 잘 알수 있다.

일본반동들은 1949년 5월 일본의사회라는것을 벌려놓고 일본적십자사안에 이전 일본해군대좌 무라까미를 책임자로 하는 《수혈대책위원회》라는것을 조작하였다. 그리고 이해 9월부터 6개월간 도꾜의학대학의 교수 가또 가쯔하라를 미국에 보내여 미국적십자사 수혈은행의 기구구성과 그 운영정형을 상세히 알아가지고 돌아오게 하였다.

이렇게 조작된 《수혈대책위원회》는 조선전쟁발발 이전인 1950년 2월부터 벌써 전국적규모에서 채혈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하였다.

조선전쟁발발이후 1950년 7월 오산전투로부터 시작된 미군의 련이은 참패로 하여 미군부상자들의 수가 많아졌으며 부상자들을 살리기 위한 수혈문제가 가장 중요하고도 긴급한 문제로 제기되였다.

저들의 흉악한 목적으로부터 조선전쟁에 적극 가담할것을 정책으로 결정한 일본반동정부는 일본적십자사가 미군의 의료보장 특히 수혈보장대책을 세우는데 적극 협력할것을 요구하였다.

이에 따라 일본적십자사의 《수혈대책위원회》는 1950년 9월 28일부터 일본의 여러곳에서 《자유세계》를 수호하기 위하여 싸우는 미군병사들을 구한다는 명목으로 헌혈운동을 벌려놓았으며 10월 5일에는 《닛세끼신붕》을 통하여 일본사람들이 적극적으로 헌혈할데 대한 글까지 발표하였다.

이렇게 일본사람들에게서 긁어모은 피는 유엔군 406진료소를 비롯한 미제침략군의 여러 야전병원들과 의학연구소들을 통하여 미제침략군부상병들의 치료에 보장되였다.

1965년 4월 일본적십자사 로무관리연수회가 줄여서 발표한 자료에 의하더라도 1951~1953년사이에 일본사람들로부터 뽑은 피를 가공하여 미제침략군부상자들의 치료에 바친 순수한 피의 량만 2만 3 064L였다고 한다.

이것은 건장한 사람 한명의 몸안에 차지하는 피의 평균량이 4~5L로 볼 때 얼마나 많은 일본사람들이 미제침략군 부상병들에게 필요한 피를 보장하는데 혹사되였는가 하는것을 보여준다.

일본군국주의자들은 제 민족의 피와 함께 조선전쟁에 참가한 미제침략군에게 수많은 의약품도 생산하여 보내주었다.

단편적인 자료에 의하더라도 1950년 7월 10일 제1차로 요꼬하마항으로부터 조선전쟁마당에 보내준 지혈제와 강심제만 하여도 3t에 달하였다고 한다.

이것은 조선전쟁시기 일본이 미국의 의약품창고, 조달자로서의 정체를 뚜렷이 보여주고있다.

조선전쟁시기 미국을 위한 일본의 간호부역할도 제 민족의 피를 뽑아 바치는 행위에 못지 않게 진행되였다.

일본적십자사가 이른바 《구호반》을 조직하여 일본에 있는 미제침략군병원들과 조선전쟁마당에 보낸것이 그 대표적인 실례이다.

당시 일본적십자사 부사장 이또는 1950년 7월 20일부 《닛세끼신붕》을 통하여 《조선문제와 일본적십자사가 나아갈 길》이란 제목으로 담화를 발표하면서 《일본적십자사가 전쟁피해자들을 도와주기 위하여 구호반을 파견하는것은 인도주의로부터 응당한 일이다.》라고 황당한 궤변을 늘여놓았다.

일본적십자사의 조치에 따라 당시 일본의 병원들에서 일하는 많은 간호원들에게 일본적십자사 《구호부》의 도장이 찍힌 《소집령장》이 떨어졌다.

일본반동들은 《소집령장》을 받은 일본녀성들에게 《이 이상 명예스러운 일은 없다.》고 하면서 미제침략군 부상병들을 위하여 《뼈가 부서지고 몸이 가루가 되도록》 복무하여 《일본적십자사의 면목》을 세우라고 악청을 돋구었다.

일본반동들은 간호원들에게 군복까지 입히고 《전쟁마당으로 향하는 기분으로 떠나달라》고 웨치면서 패망한 일제침략군의 간호원들이 부르던 군가였던 《총포의 울림》까지 부르게 하였다. 이렇게 되여 군복차림을 한 수많은 일본녀성간호원들이 《구호반》의 명목으로 일본과 조선전쟁마당에 있는 미제침략군병원들에 끌려갔다.

당시 미제침략군병원들에 끌려갔던 한 일본인 녀성간호원의 회상에 의하면 규슈지방에서 하까다에 있던 미제침략군야전병원에 끌려간 간호원수만 하여도 1 000여명이나 되였다고 하였다. 그들은 거기에서 조선침략전쟁마당에서 부상당한 미제침략자들을 간호하는것은 물론 양키들의 동물적야욕을 충족시켜주는 노리개로까지 리용되였다고 한다.

이상의 사실은 일본군국주의자들이 일본령토를 통채로 미제침략군의 군사기지, 병참보급기지로 제공하고 인적, 물적자원을 총동원하다 못해 제 민족의 피까지 섬겨바치면서 미제의 조선침략을 적극 지원한 우리 인민의 피맺힌 원쑤라는것을 똑똑히 보여주고있다.

오늘도 일본반동들은 우리 인민앞에 저지른 과거를 성근하게 사죄하고 배상할 대신 세계제패를 꿈꾸는 미국에 편승하여 침략의 기회만을 호시탐탐 노리고있다.

우리 인민은 조선전쟁시기 미국의 충견이 되여 날뛰면서 온갖 못된 짓을 다한 일본반동들의 죄행을 절대로 잊지 않을것이며 천백배의 결산을 하고야 말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