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연구

만경대고향집과 더불어 영원히 전해질 고결한 풍모

 2019.12.6.

한평생 인민을 위해 모든것을 다 바쳐오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빛나는 생애를 돌이켜볼 때마다 우리모두의 가슴속에 뜨겁게 안겨오는것은 어버이수령님의 한없는 검박성과 겸허성이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우리 수령님은 혁명가적풍모에 있어서나 인간적풍모에 있어서나 그 누구도 견줄수 없는 위인중의 위인이시다.》

시대와 력사앞에 5천년민족사가 알지 못하는 거창한 업적을 이룩하시였건만 우리 수령님께서는 한 공민이 법적으로 향유할수 있는 한계를 뛰여넘는 그런 특권은 절대로 허용하지 않으시였다.

우리 인민들은 해마다 태양절을 맞으며 만경대고향집을 찾아보군 한다. 하지만 찾을 적마다 사람들은 벼짚이영을 덮은 초가집의 두칸방에 다락과 허청간, 그안에 소장되여있는, 해방전 어느 농가에서나 찾아볼수 있는 수수한 기물들, 어데를 둘러보아도 조촐한 가구하나 눈에 띄지 않는, 너무도 소박한 살림살이도구들을 보며 새롭고 깊은 감동을 금치 못한다.

우리 혁명의 만년재보의 하나인 귀중한 사적물을 그대로 보존하고있는 만경대고향집이 예나 지금이나 본래의 모습대로 보존되고있는 여기에는 만경대일가분들의 소박한 성품과 함께 위대한 수령님의 겸허하신 풍모가 뜨겁게 깃들어있다.

해방후 이 력사의 집을 찾아오는 사람들의 수는 이루 다 헤아릴수 없었다.

당시 년로하신 조부모들로서는 하루에도 몇차례씩 찾아오는 손들을 맞아들이는것이 힘에 부치는 일이였다.

그래서 적지 않은 일군들이 어떻게 해서든지 고향집에 필요한 강사도 두고 더우기는 보존대책이 없이 그대로 놓여있는 사적물들과 유물들을 원상대로 영원히 보존하기 위한 과학기술적대책을 세우는 문제를 제기하게 되였다.

그러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고향집과 그 주변의 유적, 유물들의 보존관리문제에 대해서는 일체 의견을 제기하지 못하게 하시였다.

그러는 가운데 1959년 리보익할머님께서 세상을 떠나시였다.

이제는 만경대고향집의 보존관리문제가 더는 미룰수 없는 절박한 문제로 나서게 되였다.

우리 일군들을 고향집을 영구보존하며 만경대일가분들의 사적이 깃들어있는 귀중한 유적, 유물들을 전시하기 위한 대책안을 세우게 되였다.

사실 온 세상사람들이 우러러 찾아오는 만경대고향집의 유적, 유물들을 후손만대에 길이 전하기 위한 당적, 국가적대책을 세우는것은 너무도 응당한 일이였다.

그리하여 풍화작용을 받지 않도록 고향집에 덧집을 씌우는 문제와 개별적인 유적, 유물들을 영구보존하기 위한 진렬실을 새로 꾸리는것을 비롯하여 여러가지 필요한 대책들을 예견하게 되였다.

그러던 주체50(1961)년 2월말의 어느날 위대한 수령님께서 몸소 만경대에 나오시였다.

일군들은 속으로 환성을 올리며 이 기회에 자기들의 생각을 위대한 수령님께 말씀드려 결론을 받으려 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고향집을 돌아보실 때였다.

한 일군이 지금 할아버과 할머을 비롯한 혁명일가분들의 사적이 깃든 귀중한 유적과 유물들이 많지만 진렬할 곳이 없어 진렬하지 못하고있다고 보고드리면서 고향집의 영구보존대책은 후에 세우더라도 끊임없이 찾아오는 참관자들의 교양을 위해서 어떻게 하나 유물진렬실만은 꼭 꾸려야 하겠다고 의견을 말씀드리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 일군의 말을 주의깊게 들으시고나서 진렬실을 지을 필요가 없다고, 유물들을 소박하게 이 집에 그대로 두는것이 좋겠다고, 더우기 올해에는 당 제4차대회를 해야 하겠는데 그런 진렬실까지 지을수 없다고, 올해에는 그만두어야 하겠다고 말씀하시였다.

큰 기대와 희망을 가지고 의견을 제기하였던 일군은 위대한 수령님의 말씀에 락심하지 않을수 없었다.

그러나 그는 다시 용기를 내여 그러면 올해에는 못하더라고 다음해에는 진렬실을 짓도록 꼭 국가계획에 예견해주셨으면 한다는 의견과 함께 다른 나라들에서 혁명사적물들을 영구보존하기 위하여 취하고있는 대책들에 대하여 말씀올리였다.

거듭 간청하는 그 일군을 다정히 바라보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다시금 그것도 토론해보아야 하겠지만 자신의 생각에는 유물들을 소박하게 그대로 두는것이 더 의의가 있을것 같다고 하시면서 괜히 다른 나라의 본을 따를 필요가 없다고, 래년에는 공장들을 대대적으로 건설할 계획인데 이런데다 자금을 돌리면 안된다고, 동무들이 제기한 문제는 인민들이 다 잘 살게 되였을 때 한번 토론해보자고, 지금 있는 유물들과 사적물들은 이 집에 그대로 두는것이 좋겠다고 부드럽게 타이르시였다.

일군들은 위대한 수령님의 한없는 겸손성앞에서 다른 말씀을 올릴수가 없었다.

그때로부터 많은 세월이 흘러갔다.

만경대고향집 가까운 갈매지벌과 송산벌에 이르는 넓은 지역에는 위대한 수령님위대한 장군님의 배려로 현대적인 유희시설들이 건설되여 이곳을 찾은 사람들을 더없이 기쁘게 해주고있으며 인민들은 현대적인 광복거리살림집들에서 행복한 생활을 누리고있다.

그러나 우리 인민의 근대력사와 더불어 온갖 풍상고초를 다 겪어온 유서깊은 고향집과 그 귀중한 유적, 유물들은 오늘도 의연히 원래의 모습 그대로 허청간과 야외에 전시되여있어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더욱더 경건한 마음으로 만경대혁명일가분들의 한없이 고결한 풍모에 대하여 가슴깊이 되새겨보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