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우리
1941년 4월 13일 사회주의쏘련과 제국주의일본사이에 중립조약이 체결되였다.
당시 파쑈일본의 외상이였던 마쯔오까는 도이췰란드방문을 마치고 돌아가다가 모스크바에 들려 쏘련과 중립조약을 체결하였다.
이 조약의 기본내용은 체약쌍방이 평화관계를 유지한다는것, 호상령토의 보존과 불가침을 존중한다는것, 어느 일방이 제3국과 분쟁상태에 들어가는 경우 중립을 지킨다는것이였다.
쏘일중립조약이 체결되자 우리 혁명대오안의 일부 사람들속에서는 《쏘일중립조약》체결문제를 놓고 이제는 믿을데가 없다고 하면서 사상적으로 동요하고 심지어 혁명을 포기하는 현상까지 나타났다.
사실 일본외상이 모스크바에 찾아가서 쏘련과 중립조약을 체결한것은 하나의 기만극에 불과한것이였다. 일본은 그때 자나깨나 쏘련을 칠 기회만을 노리고있었으며 일본과 도이췰란드는 쏘련을 칠 때 서로 합작하기로 밀약까지 하고 우랄산맥을 경계로 하여 쏘련의 광활한 령토를 동쪽과 서쪽에서 각각 한쪽씩 차지한다는 분배안까지 짜놓고있었다.
그러나 일본에 있어서는 아직 쏘련침공이 시기상조였으며 따라서 남쪽으로 침략의 예봉을 돌려 동남아시아를 타고앉아 전략물자의 예비까지 충분히 마련해두었다가 히틀러도이췰란드가 쏘련에 치명상을 입힌 다음에야 쏘련을 침략하여 우랄계선까지 단숨에 집어삼키자는것이 일본의 속심이였다. 쏘련과의 중립조약은 이 시간표에 따르는 하나의 속임수에 불과한것이였다.
《쏘일중립조약》이 쏘련을 기만하기 위한것이였다는것은 중립조약이 체결된 때로부터 두달이 지난 후 도이췰란드군이 쏘련을 침공하자 일본이 지체없이 《관동군특별연습》이라는것을 발령하고 쏘만국경에 배치된 관동군병력을 두배로 증강한것을 통해서도 여지없이 드러났다.
서부국경일대에 집결되여있는 도이췰란드군의 대병력이 어느 순간에 밀려들지 모르는 형편에서 씨비리를 호시탐탐 노리고있던 일본이 《중립》을 표방한것은 쏘련으로 하여금 동쪽과 서쪽에서의 동시적인 전쟁을 지연시킬수 있는 가능성을 얻게 해주었다. 이로부터 쏘련은 파쑈국가들의 협공을 막기 위하여 일본과 《중립조약》을 체결하였던것이였다.
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