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종합대학 조선어문학부 박사 부교수 김영윤
2021.7.15.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혁명과 건설을 령도하시는 그처럼 바쁘신 속에서도 인민들의 언어생활에 언제나 깊은 관심을 돌리시고 언어생활에서 주체성과 민족성을 철저히 구현해나가도록 현명하게 이끌어주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언어생활에서 고유어를 적극 살려쓰는 문제가 주체성과 민족성을 구현하는데서 가지는 의의와 중요성을 깊이 통찰하시고 사람들이 일상언어생활에서 한자말이나 외래어가 아니라 고유어를 널리 사용하도록 하시였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언어생활에서 주체를 세워 고유한 우리 말과 글을 적극 살려쓰게 되면 우리 인민의 민족성을 살리고 민족적긍지와 자부심을 높여주게 됩니다.》 (《김정일전집》 제3권 128페지)
고유어는 다른 민족어의 침습을 받지 않고 그 민족이 대대로 창조하고 발전시켜온 민족적특성을 가장 뚜렷하게 가지고있는 어휘로서 해당 민족어의 어휘구성에서 기본을 이룬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일찌기 김일성종합대학에서 혁명활동을 벌리시던 시기 《언어생활에서 주체를 세울데 대하여》를 비롯한 불후의 고전적로작들을 발표하시여 고유어를 적극 살려쓰는데서 나서는 원칙적문제들을 밝혀주시였으며 혁명령도의 전기간 이 사업을 현명하게 령도해주시였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무엇보다먼저 말을 하고 글을 쓰는데서 위대한 수령님의 혁명적이며 인민적인 문풍을 따라배우기 위한 사업을 힘있게 벌리도록 하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주체53(1964)년 1월 6일 김일성종합대학 학생들에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지난 항일혁명투쟁시기에 몸소 보고문, 연설문, 론문, 혁명적예술작품뿐아니라 격문, 포고문, 강령 선언문, 삐라, 구호와 같은 전투적이며 선동적인 글을 쓰시여 항일혁명투사들과 인민대중을 항일혁명의 성전에로 힘있게 불러일으키시면서 혁명적문풍의 본보기를 창조하시였다고 하시면서 그때부터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힘있는 사람은 힘으로, 지식있는 사람은 지식으로, 돈있는 사람은 돈으로 조선독립을 위한 반일성전에 총궐기할데 대한 수령님의 말씀과 《무장은 우리의 생명이다! 무장에는 무장으로!》라는 혁명적인 구호를 비롯한 위대한 명제들은 오늘도 그 간결성과 통속성, 전투성과 심오성으로 하여 만사람의 심장을 세차게 울려주고있다고 교시하시였다. 그러시면서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항일혁명투쟁시기에 창시하신 인민적이며 혁명적인 문풍의 력사적뿌리에 기초하여 해방후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발전풍부화된 평양말을 기준으로 하여 조선어를 발전시켜야 한다고 가르쳐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언제나 깊은 뜻을 담고있으면서도 쉽게 리해될수 있는 로동자, 농민들이 늘 쓰는 고유어를 널리 사용하심으로써 어휘사용의 빛나는 모범을 창조하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주체81(1992)년 1월 20일에 발표하신 불후의 고전적로작《주체문학론》에서 고유어에 기초하여 씌여진 작품을 보면 대체로 다 서정이 짙고 생신한 형상적인 맛을 풍긴다고 하시면서 불후의 고전적명작《사향가》는 우리의 고유어를 리용하여 풍만한 형상미와 향토적인 서정미를 돋군 본보기작품이라고 교시하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내 고향을 떠나올 때 나의 어머니 문앞에서 눈물흘리며 잘 다녀오라 하시던 말씀이 귀에 쟁쟁하다고 노래한 1절이나 우리 집에서 멀지 않게 조금 나가면 작은 시내 돌돌 흐르고 어린 동생들 뛰노는 모양이 눈에 삼삼하다고 노래한 2절은 다 우리의 고유어에 기초하여 사람의 가슴속에 사랑하는 고향과 조국산천에 대한 사무친 애정의 감정을 불러일으키고있다고 하시면서 우리의 문학작품은 다 고유어의 진맛을 돋구는 참다운 조선식작품으로 되여야 한다고 교시하시였다.
위대한 장군님의 현명한 령도밑에 위대한 수령님의 혁명적이며 인민적인 문풍을 따라배우기 위한 투쟁이 힘있게 벌어짐으로써 인민들은 민족어의 기본을 이루는 고유어의 우수성에 대하여 더 깊이 체득하게 되였으며 온 사회에 고유어를 적극 살려쓰기 위한 된바람이 일어나게 되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다음으로 불면불휴의 저술활동을 하시면서 인민들이 늘 쓰는 고상하고 아름다운 고유어를 적극 찾아쓰시여 심오한 사상을 알기 쉽고 소박하게 표현하시는 언어구사의 빛나는 모범을 창조하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몸소 창작하신 《조국의 품》과 《나의 어머니》를 비롯한 불후의 고전적명작들은 거기에 담겨진 높은 사상예술성과 함께 고유어를 적극 살려쓴 언어구사에서의 인민성과 통속성으로 하여 오늘도 문학작품창작의 귀중한 귀감으로 되고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주체41(1952)년 8월 위대한 수령님께서 계시여 반드시 승리한다는 필승의 신념과 조국의 앞날은 끝없이 밝고 창창하다는 확신을 담아 불후의 고전적명작《조국의 품》을 창작하시였다.
작품의 1절에서는 모란봉에 붉게 타는 노을과 대동강에 곱게 비낀 무지개로 상징되는 조국, 그것이 곧 내가 자란 정든 고향이라는 사상감정이 《붉다, 타다, 노을, 곱다, 비끼다, 무지개, 아름답다, 품, 자라다, 정들다, 집》과 같은 고유어들에 의하여 표현되였으며 2절에서는 진달래꽃 방긋 웃는 새봄과 종달새가 지저귀는 하늘, 봄날처럼 따사로운 조국의 품이 바로 나를 안아 키워준 어머니이라는 사상감정이 《진달래꽃, 방긋, 웃다, 새봄, 종달새, 지저귀다, 하늘, 봄날, 따사롭다, 품, 나, 안다, 키워주다, 어머니》와 같은 고유어들에 의하여 표현되였다. 작품의 3절에서는 바다우에 둥실 솟는 아침해이고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빛이며 해빛처럼 밝고밝은 조국의 품이 곧 아버지장군님의 품이라는 심오한 사상감정이 《바다우, 둥실, 솟다, 아침해, 밤하늘, 반짝이다, 별빛, 해빛, 밝다, 품》과 같은 고유어들에 의하여 표현되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보여주신 고유어사용의 빛나는 모범은 장군님께서 주체49(1960)년 7월 평양남산고급중학교 졸업생축하모임에서 어머님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을 안고 어머님의 당부대로 어버이수령님을 더 잘 받들어모실 마음을 담아 부르신 노래《나의 어머니》의 구절구절을 통해서도 잘 알수 있다.
노래의 1절에서는 혁명의 길에 가로놓인 온갖 시련과 고난속에서도 주체혁명위업의 위대한 계승자를 안아키우신 김정숙어머님의 자애로운 사랑의 감정이 《눈비, 다, 맞다, 나, 품다, 키우다, 어머니, 헤아려보다, 곱다, 꿈, 꽃피워주다》와 같은 고유어들에 의하여 표현되였으며 2절에서는 비가 와도 눈이 와도 먼길을 떠나도 따뜻이 손잡아 이끌어주시며 순간을 살아도 빛나게 살라고 위대한 뜻을 키워주신 어머님에 대한 절절하고도 뜨거운 사랑과 한없는 그리움의 감정이 《비, 오다, 눈, 먼길, 떠나다, 손, 잡다, 이끌다, 나, 어머니, 살다, 빛나다, 길러주다, 그, 품, 어이, 잊다》와 같은 고유어들에 의하여 분출되였다. 노래의 3절에서는 기쁠 때나 어려울 때나 먼저 찾게 되는 어머님을 생각하시며 어머님의 숭고한 뜻대로 어버이수령님을 높이 받들어모시고 이 세상 끝까지 오직 주체의 한길로만 가시려는 위대한 장군님의 철석의 맹세가 《기쁘다, 힘들다, 부르다, 정답다, 미덥다, 나, 어머니, 그, 못잊다, 끝, 받들다, 한길, 가다》와 같은 고유어들에 의하여 표현되였다.
이처럼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자신의 숭고한 모범으로 언어생활에서 고유어를 적극 살려쓰도록 이끌어주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다음으로 조선어어휘구성에 남아있던 불필요한 한자말들과 외래어들을 정리하며 어렵고 힘든 표현들을 고유어로 바꾸어쓰도록 하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고유어는 어감이 풍부하고 섬세한 정서적인 빛갈을 가지고있으며 표현이 다양하고 말소리의 울림이 아름답기때문에 문학작품의 형상성과 서정성을 살리는데 매우 적중한 언어수단으로 된다고 하시면서 언어생활에서 고유어를 적극 살려쓰도록 현명하게 이끌어주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주체50(1961)년 5월 25일 일부 사람들은 어려운 한자말과 외래어를 쓰는것을 마치 유식한것으로 생각하고있는것 같은데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라고 하시면서 얼마전에 연구실에 《까비네트》라는 간판을 써붙였기때문에 우리 말로 고쳐 써붙여야 하겠다고 말해준 일이 있다고 교시하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문학예술부문사업을 정력적으로 지도해주시던 나날 영화나 연극의 제목으로부터 인물들의 대사와 설화, 노래의 가사에 이르기까지 깊은 관심을 돌리시면서 인민들이 늘 쓰는 알기 쉬운 고유어를 잘 살려쓰도록 이끌어주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주체61(1972)년 4월 10일 영화예술부문 일군들과 창작가들에게 예술영화 《공중무대》에서 《무남독녀》, 《금시초문》, 《피차일반》을 비롯하여 한문투로 된 대사는 다 문화어로 고쳐야 한다고 가르쳐주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주체66(1977)년 12월 12일 우리 일군들이 글을 까다롭고 리해하기 힘들게 쓰는것은 수준이 낮은것과도 관련되여있지만 주요하게는 체병이 있는것과 관련되여있다고 하시면서 일부 사람들은 글을 쓰거나 말을 할 때 마치 어려운 표현을 써야 유식하고 수준이 높은것처럼 생각하면서 까다롭고 어려운 표현을 쓰고있는데 이런 사람이 유식한 사람이 아니라 대중이 쉽게 리해할수 있는 표현을 쓰는 사람이 유식한 사람이라고 가르쳐주시였다.
이처럼 고유어를 적극 살려쓰도록 하신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의 현명한 령도가 있었기에 조선어의 어휘구성속에서 고유어는 절대적인 지위를 차지할수 있게 되였으며 인민들의 사회언어생활은 고상하고 문명하게 발전할수 있게 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