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전쟁사에 개별적인 소년영웅, 소년렬사들의 위훈에 대한 이야기들은 적지 않지만 지난 1950년대 조선전쟁에서 조선의 소년빨찌산투쟁과 같은 그처럼 조직적이며 적극적인 소년들의 대담한 전투행동과 위훈에 대한 기록을 찾아볼수 없다.
《세계적으로 소년근위대와 소년빨찌산은 우리 나라에서 처음 나왔으며 자기
전략적인 일시적후퇴시기 적들이 사랑하는 고향땅을 강점하게 되자 조선의 소년들은 행복과 희망의 상징이였던 소중한 집과 학교들이 짓밟히우는것을 보고 참고만 있을수 없어 분연히 손에 총을 잡고 싸움에 나섰다.
황해도지구에서는 구미포소년근위대, 중산소년공작대, 국사소년공작대 등이 조직되였고 평양시와 평안남북도지구에서는 모란봉소년근위대, 안주탄광소년근위대, 공산승리소년근위대, 선천애육원소년근위대 등이 무어졌다. 함경남북도지구에서는 박주산소년근위대, 불꽃소년근위대, 원흥소년복수대, 룡원소년활격대, 길주소년근위대, 수북소년근위대 등이 무어졌다.
원쑤들이 일시적으로 강점한 조선의 거의 모든 지역에서 소년근위대, 소년빨찌산들이 련이어 태여나 1950년 10월과 11월기간에 조직된 투쟁대오수만도 무려 60여개에 달하였다. 한개 소년근위대의 인
나어린 소년들까지 판가리싸움에 떨쳐나선것은 침략자들과 그 주구들을 반대하는 전인민적항전이 얼마나 높은 단계에 올라섰는가를 뚜렷이 실증하였다.
소년빨찌산과 소년근위대는 그의 활동범위나 인원만이 놀라운것이 아니라 그 위훈과 공적 또한 세상을 놀래우는것이였다.
처음 소년들에게는 무기도 없었고 초보적인 군사지식도 없었으며 투쟁을 지도해줄 군인들은 더구나 없었다. 그러나 소년근위대와 소년빨찌산의 투쟁형태와 내용은 대단히 폭넓고 다양했으며 원쑤들이 도무지 갈피를 잡지 못할 정도로 엉뚱하고 기발하였으며 대담한것이였다.
지남산인민유격대의 소년근위대원들은 사과에 작은바늘을 꽂아 침략군놈들에게 먹이기도 하고 숨박곡질을 하는척 하면서 수십대의 자동차의 배기관에 무우토막을 틀어박아 적들의 기동에 큰 지장을 주는것으로 투쟁의 첫발을 떼였다.
또한 위험을 무릅쓰고
꾀꼴새소년근위대원들이 두달 남짓한 기간에만도 4 000여명의 인민들을 대상으로 구두선전을 벌리고 4 800여매의 삐라, 벽보, 만화 등의 직관선전으로 사람들을 고무하였는가 하면 고원과 정주의 소년근위대원들은 적들이 둥지를 튼 건물에 람홍색공화국기를 힘차게 띄워 인민들에게 승리의 신심을 안겨주었다.
적들은 아무리 머리를 짜내도 그 원인을 찾을수 없었지만 꾀꼴새소년근위대원들은 물샐틈없는 경계망을 펴고
안주탄광의 소년들이 7차례에 걸쳐 수십개의 못판을 도로에 묻어 10여대의 적자동차를 파괴할 때 령미애육원소년근위대원들은 다리목에 지뢰를 묻어 침략군 세놈이 탄 찌프차를 하늘로 날려보냈다.
용감한 소년들은 적의 자동차나 파괴하는데 만족할수 없었다.
령산의 소년들은 철길을 폭파하여 놈들의 군수렬차운행에 혼란을 조성하였고 안주탄광의 소년들은 적비행장에까지 들어가 신호등을 파괴해버렸다.
소년들은 가는 곳마다에서 적들의 통신선을 잘라버렸으며 령미애육원소년근위대원들이 10차례에 걸쳐 자른 전화선만도 1 200여m에 달했다.
그들은 처음에 절단만 하던것을 다음부터는 적들이 끊어진 부위를 찾을수 없게 피복안쪽의 쇠줄만 교묘하게 자르거나 끊어진 부위를 천으로 다시 감아놓기도 하였으며 단번에 몇십m씩 잘라 땅속에 묻어놓기도 하였다.
소년근위대원들은 투쟁속에서 단련되였으며 더욱더 대담한 활동으로 적들을 혼란에 빠뜨렸다.
적들의 연유창고들이 공산승리소년근위대와 철원소년근위대원들과 같은 용감한 소년들에 의해 순간에 재더미가 되여 날아났다.
1950년 12월초 원산항에 적들이 끌어들인 수많은 전투기술기재와 방대한 군수물자들이 단번에 불길속에 휩싸이게 한 유명한 사건도 나어린 두 소년근위대원들이 대낮에 해제낀 장거였다.
고원의 소년들은 《치안대》문턱에 폭발장치를 해놓아 숱한 놈들을 한꺼번에 황천객으로 만들었다.
조직의 이름을 룡원소년활격대로 자칭한 룡원의 소년들의 활동은 참으로 대담하였다. 대낮에 유유히 《치안대》의 소굴에 들어간 소년들은 놈들에게 총구를 들이대고 네놈들은 인민군대와 유격대에 포위되였다고 소리쳤다. 그 말을 증명하듯 사방에서 총성이 울리자 원쑤놈들은 겁에 질려 항복하고말았다.
잡히고보니 인민군대와 유격대는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소년근위대원들이 몇명씩 갈라져 주변의 높은 산고지, 산중턱들에 대기하고있다가 신호에 따라 총소리를 내였던것이다.
이처럼 1950년대 조선전쟁에서 과감하게 벌어진 소년빨찌산, 소년근위대들의 투쟁은
비록 나이는 어리고 키는 작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