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력사학, 민속학, 고고학부문에서는 우리 인민이 창조한 우수한 민족문화유산들을 더 많이 발굴고증하고 계승발전시키기 위한 사업을 힘있게 벌리며 우리 나라의 력사를 외곡날조하는 행위에 학술적으로 대처하기 위한 과학연구사업에 힘을 넣어야 합니다.》
고려는 민족의 단합된 힘과 지혜로 나라의 경제와 문화를 발전시키고 거란을 비롯한 외래침략자들의 침략과 략탈도 단호히 물리친 자랑찬 력사를 가진 나라였다.
고려의 이러한 력사는 우리 민족의 귀중한 고전문헌인 《고려사》에 잘 반영되여있다.
조선봉건왕조초기에 편찬된 《고려사》는 고려의 근 500년(918-1392년)의 력사를 기전체(본기와 렬전, 지)형식으로 서술된 력사책이다.
우선 《고려사》의 편찬사업은 조선봉건왕조가 성립한 1592년부터 시작하여 반세기이상 걸쳐 1451년에 완성되였다.
《고려사》는 조선봉건왕조성립직후인 1392-1395년에 정도전(판삼사사)과 정충(정당문학) 등이 편찬한 《고려국사》에 의거하여 편찬되였다. 그러나 《고려국사》가 고려말기의 력사적사실이 잘 반영되지 못하고 복잡한 사건들이 계속 발생하였으며 편년체형식으로 편찬되였다는 등으로 수정작업이 계속되였다. 기전체형식의 고려사편찬사업은 1449년(세종 31년)부터 시작하여 1451년에 가서야 결실을 보게 되였다.
다음으로 《고려사》의 기본내용을 보면 정사체의 기전체로서 총 139권으로 구성되였다. 《고려사》는 목차 2권, 세가 46권, 지 39권, 년표 2권, 렬전 50권으로 되여있다.
《고려사》의 세가는 기전체의 본기로서 제1대왕인 태조 왕건으로부터 34대왕 공양왕까지 475년간에 걸쳐 고려봉건왕조의 왕실을 중심으로 벌어진 중요한 정치, 군사, 경제, 문화부문의 중요한 력사적사실들을 왕대별로 년, 월, 일 순서로 비교적 구체적으로 서술하였다.
《고려사》의 지는 천문, 력, 오행, 지리, 례, 악, 여복, 선거, 백관, 식화, 병, 형법의 분류체계에 따라, 고려봉건국가의 통치기구와 관직제도, 토지제도를 비롯한 정치경제관계, 봉건의례와 외교관계, 과학기술 및 문학예술관계, 군사 및 법률관계 등 각종 제도를 년, 월, 일 순서로 편찬하였다.
《고려사》의 년표는 918년부터 1392년까지 고려왕의 왕대에 따라 매해를 간지로 표기하고 중국왕조의 각 왕대와 대조하여 표기하고 가장 중요한 사건, 사실들을 간단히 삽입하였다.
《고려사》의 렬전은 봉건왕실의 후비, 종실, 공주와 이름난 봉건관리들, 외적과의 싸움에서 이름을 날린 무인들, 봉건유교도덕을 잘 지킨 인물들, 문학예술에서의 대표적인 인물들, 비법행위를 많이 한자들, 《반역죄》로 규정받은자들을 부류별로 서술하였다.
다음으로 《고려사》는 고려사연구의 기본자료로서 커다란 사료적가치를 가진다.
《고려사》는 고려 력대왕들의 실록을 기본으로 한것으로 하여 그 내용이 비교적 풍부하고 모든 부문의 사료들이 다양하게 고려사연구의 기본자료로 되고있다.
《고려사》의 사료적가치는 우선 고려의 성립과 사회발전, 쇠퇴 등이 변천사적으로 반영되여 있고 봉건통치제도와 토지제도, 군사제도와 계급신분관계 등이 구체적으로 반영되여있다.
《고려사》의 사료적가치는 또한 봉건지배계급과 외래침략자들을 반대하는 인민들의 투쟁이 적지 않게 반영되여있는것이다.
이 책에는 1135-1136년 서경(평양)인민들의 투쟁과 1174-1176년 서경을 중심으로 한 서북지방인민들의 투쟁, 1198년 개경의 사노 만적의 투쟁과 993년-1019년까지 3차례의 거란침략자들을 반대하는 고려인민들의 투쟁, 14세기 왜구의 침입을 반대하는 고려인민들의 투쟁 등이 반영되여있다.
그러한 자료들은 일정하게 외곡되거나 부족된 면도 있으나 고려인민들의 반침략, 반봉건투쟁의 기본자료로 된다.
《고려사》의 사료적가치는 또한 고려시기 인민들이 자연을 정복하기 위한 투쟁에서 이룩한 생산과 과학문화발전내용들이 많이 반영되여있는것이다. 특히 농업과 일상생활에서 필수적요구로 제기되였던 천문관측과 자연현상에 대한 천문자료들이 많이 기록된것이 주목된다.
《고려사》의 사료적가치는 또한 일본, 몽골, 녀진 등 여러 나라들과 종족들과의 대외관계자료들이 반영되여있는것이다. 이러한 자료들은 당시 고려의 대외관계연구와 동방사연구에 귀중한 사료로 리용되여있다.
이밖에도 《고려사》는 봉건통치배들의 인민들에 대한 봉건적착취와 봉건통치배들의 학정밑에 비참한 생활을 강요당하는 인민들의 생활처지에 대한 사료들도 있는것으로 하여 력사연구의 중요한 자료로 된다.
이와 같이 《고려사》는 고려사연구의 1차적인 귀중한 사료로 된다.
다음으로 《고려사》는 편찬자들의 반인민적인 력사관으로 하여 적지 않은 제한성을 가진다.
《고려사》의 제한성은 우선 정권을 잡은 국왕을 비롯한 봉건통치배들의 통치력사를 중심으로 서술한것이다.
《고려사》는 서술의 대부분이 국왕과 봉건통치배들의 통치와 착취행위를 서술한것이고 력사의 주체이며 창조자인 인민대중의 활동을 완전히 도외시하였다. 특히 인민들의 반봉건투쟁을 《적》(賊), 《도적》(盜賊)으로 외곡하거나 간단히 서술하였고 승리의 요인도 인민대중의 역할이 아니라 국왕이나 봉건통치배들, 개별적명장들의 역할로 평가하였다.
《고려사》의 제한성은 또한 봉건유교적인 《대의명분》의 립장과 사대주의적립장에서 력사적사실을 평가정리하고 고려말기의 력사적사실을 심히 외곡날조한것이다. 그리고 사료상 착오와 모순, 루락된 개소들이 있는것이다.
이처럼 《고려사》는 고려사연구의 기본자료로서 커다란 사료적가치와 함께 일련의 제한성도 가지고있다.
이와 같이 《고려사》는 고려의 력사와 문화를 보여주는 우리 민족의 귀중한 고전문헌의 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