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연구

19세기 후반기 김준근의 농업생산활동그림과 그 특징

 2022.1.1.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우리 선조들은 그림을 아주 잘 그렸습니다. 옛날 우리 나라 화가들이 그린 그림들가운데는 걸작이 많습니다.》 (김정일전집》 제4권 391페지)

김준근은 우리 나라에서 근대화가 촉진되여가던 19세기 후반기에 창작활동을 벌린 민간화가의 한 사람이였다.

김준근은 호를 《기산》이라고 불렀는데 그의 생존년대와 가정환경 등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알려져있지 않다.

179점으로 꾸며진 《기산인물화첩》은 당시 사람들의 경제생활, 체육오락문화생활, 관혼상제풍속은 물론 봉건사회의 반동적인 통치수법을 까밝힌 각종 형법제도에 이르기까지 구체적으로 그려놓음으로써 말그대로 19세기 후반기 우리 나라 사회생활전반을 다 포괄하는 《백과사전》적인 작품이다.

179점으로 구성된 김준근의 인물화첩에서 75점이 우리 인민들의 로동생활을 보여주는 그림들이다. 그가운데서도 농업생산활동주제의 그림들은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고있다.

그러한 그림들로서 《모내기》, 《논물주기》, 《가래질》, 《씨뿌리기》, 《벼김매기》, 《벼가을》, 《벼털기》, 《개상질》 등 벼농사와 함께 《후치질》을 비롯하여 밭농사를 보여주는 그림들이 포함되여있는데 이것들은 모두 24점으로서 30%를 차지한다.

19세기 후반기 김준근의 인물화첩에 반영된 농업생산활동주제의 그림에는 우선 당시 계절에 따라 진행하던 농민들의 벼농사 전과정이 생동하게 반영되여있다.

인물화첩에 있는 《모내기》, 《논물주기》, 《가래질》. 《씨부리기》,《벼김매기》, 《벼가을》, 《벼털기》, 《개상질》 등은 당시 농민들이 진행하던 벼농사의 전과정을 종합적으로 생동하게 보여주는 그림들이다.

논물주기
그림 1. 논물주기
모내기
그림 2. 모내기

그림《모내기》에 반영된 농민들의 작업모습은 18세기 후반기 실학자 박지원이 쓴 농업기술도서인 《과농소초》에 실린 모내기법의 기록과 잘 일치된다. 그에 의하면 《모를 조심스럽게 뽑아서 물에다 뿌리의 흙을 깨끗이 씻고 피가 있으면 골라버린 다음 조금씩 묶어서 써레질을 잘해놓은 논에 던져놓고 3~4대의 모포기를 바르게, 줄은 곧게 심어서 후날 김매기에 편리하게 할것이다.》라고 되여있다.

《모내기》에서 보는것처럼 아버지와 아들인듯한 두 사람이 줄을 맞추어 논판에 모를 꽂고있다. 포기는 바르게, 줄은 곧게 심는것은 후날 김매기를 편리하게 하려는것이며 한편으로는 이들이 수확고를 높일수 있는 영농방법으로 농사를 짓고있다는것을 보여주고있다.

이러한 벼농사를 위주로 한 그림들을 생동하게 그려낼수 있은것은 화가가 벼농사가 광범히 진행되던 벌방지대에 살면서 전시기보다 선진적인 영농방법으로 농사를 짓던 농민들의 모습을 많이 보았기때문이였다.

벼농사를 보여주는 그림에는 여러가지 농구들을 리용하여 논을 걸구고 벼를 타작하는 농민들의 생산활동도 잘 반영되여있다.

후치질
그림 3. 후치질
가래질
그림 4. 가래질

그림《가래질》에서는 삽을 든 장부와 2명의 줄잡이군이 힘을 합쳐 쪽가래질로 논을 고루고있는 모습이 그려져있고 《논써레질》에서는 써레를 메운 황소에 회초리를 휘두르며 힘있게 몰아가는 농민들의 논작답과정이 생동하게 묘사되여있다. 이와 함께 그림《씨뿌리기》에서와 같이 3명의 농군이 여러가지 농기구를 가지고 모판에 씨를 뿌리는 모습과 《벼가을》과 《개상질》에서처럼 두 농민이 벼가을하는 모습과 개상틀을 리용하여 열심히 벼단들을 휘둘러대는 모습이 잘 나타나있다.

이처럼 화첩에서는 벼농사의 전과정을 보여주는 영농공정이 비교적 생동하게 묘사되여있다.

19세기 후반기 인물화첩에 반영된 농민들의 농업생산활동주제의 그림에는 또한 여러가지 농구들을 리용하여 밭농사를 짓고있던 농민들의 모습이 생동하게 반영되여있다.

그러한 대표적인 그림으로서 《후치질》을 들수 있다.

그림에는 후치로 밭을 걸구는 농민의 모습이 잘 반영되여있다.

이랑사이의 땅을 후치로 들춰주는 영농공정인 후치질은 땅의 공기투과성을 좋게 하고 온도를 높이는 등 토양의 물리적성질을 개선하고 생육기간에 생겨난 김을 잡고 북을 주기 위하여 진행하는것으로써 우리 인민들속에서 오래전부터 진행하여 온 영농공정의 하나였다. 처음에는 돋아나온 김을 잡기 위하여 땅겉면에 대한 긁어주기를 하였고 그후 점차 땅이 굳어지는것을 막고 김을 잡는 방법이 창안되여 후치질이라는 하나의 과학적인 기술공정으로 발전하게 되였다.

력사적자료에 의하면 해당 지방의 토양과 작물에 따라 적용한 후치의 종류는 수십가지였으나 가장 많이 보급된것은 가대기형이였다.

김준근의 그림《후치질》에서는 소에 가대기형의 후치를 메여 고랑바닥의 흙을 갈아 이랑에 올려주는 부지런하고 근면한 농민의 모습이 그려져있는데 이 방법은 주로 여름철에 비가 많이 오고 물이 잘 빠지지 않는 경우에 리용되였으며 당시 이러한 영농방법이 농민들속에서 널리 적용되고있었다는것을 보여주고있다.

개상질
그림 5. 개상질
벼가을
그림 6. 벼가을

인물화첩에 반영된 벼농사와 밭농사 등 농업생산활동을 보여주는 김준근의 인물화첩에는 전시기의 그림들에서는 찾아볼수 없는 일련의 특징을 가지고있다.

그것은 우선 전시기에 비하여 근로하는 인민들의 다양한 농업생산활동이 보다 구체적이면서도 세부적으로 묘사되여있는것이다.

김준근의 농업생산활동을 보여주는 그림에서 주목되는것은 이전시기의 화가들인 리한철이나 김두량 등이 한 화폭에 그리던 《농민생활도》나 《사계절》에서와는 달리 매 계절에 맞는 생산공정을 종합적으로 취급한것이다.

김준근은 작품창작의 목적에 맞게 매 농업생산공정들을 독자적인 주제로 선정하고 그려냄으로써 주제의 폭을 확대하고 세분화하여 구체적으로 보여주는데로 지향시켰다. 실례로 벼농사와 관련된 그림들에서 보는것처럼 모내기로부터 벼탈곡에 이르기까지의 매 영농생산공정들을 독자적인 주제로 선택하고 그것을 대상에 따라 구체적으로 그려놓은것은 이를 잘 실증해주고있다.

그리고 18세기말~19세기중엽에 활동한 도화서화가들이였던 김홍도와 김득신 등은 각각 주제가 같은 《마당질》을 그린것외에 인민들이 농업생산활동을 보여주는 그림들을 다양하게 그려내지 못하였다. 그러나 김준근은 모내기하는 장면과 씨뿌리는 장면, 벼가을하는 장면 등과 함께 후치질을 하는 장면 등을 비롯하여 논농사와 밭농사를 하는 인민들의 농업생산활동을 세부적으로 보여주었다. 이것은 김준근의 인물화첩에 인민들의 농업생산활동을 보여주는 그림들이 전시기에 찾아볼수 없이 구체적이면서도 세부적으로 묘사되여있다는것을 말해주고있다.

그것은 또한 전시기에 비하여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호상관계를 생활적으로 자연스럽게 꾸며낸것이다.

인물화첩에 반영된 농업생산활동을 보여주는 그림들에는 인관관계설정이 전시기에 비해서 잘 되여있는것이 특징적이라고 볼수 있다.

실례로 김매기장면을 그린 《벼김매기》에서와 같이 화면앞에 열심히 김을 매는 두명의 농민을 배치하고 그뒤에 아버지인듯한 농민이 호미를 들고 서서 담배를 피우며 자식들이 김매기를 하는것을 돌아보는 농민을 배치하여놓음으로써 농민가정의 논김매기모양을 자연스럽게 펼쳐보이고있다. 이러한것은 인간관계의 설정이 비교적 평범하면서도 진실하게 구성된 측면의 하나라고 볼수 있다.

이와 함께 화면구성이 단순하면서도 인물형상의 생동감을 진실하게 나타낸것도 전시기의 그림들에서 거의나 찾아볼수 없는것이였다.

그것은 그림《가래질》에서처럼 화면구성을 단순하게 처리하면서도 가래삽과 가래줄을 잡고있는 농군들의 형상을 통하여 이들의 작업공정이 한눈에 알수 있게 한데서 잘 나타나있다.

이처럼 김준근의 인물화첩에 반영된 농업생산활동모습을 보여주는 그림들은 19세기후반기 우리 인민들의 근면한 농업생산활동을 생동하면서도 사실주의적으로 잘 알수 있게 하는데서 그 의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