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종의 산 백두산에 대하여 조선사람들이 얼마나 우러러 보았는가 하는것은 백두산
일제에 의하여 국권이 롱락당하였던 20세기초에 민족종교인 대종교와 천불교의 교인들을 비롯한 우리 인민들은 백두산천지기슭에 룡신비각을 세우고 백두산을 정신적기둥으로 숭상하였다.
당시 일제의 날강도적책동으로 나라의 생존이 심히 우려되게 되자 우리 인민들은 민족의 발상지로, 조종의 산으로 숭상하던 백두산에 나라와 민족의 운명을 구원해줄것을 기원하는 룡신비각을 세웠던것이다.
룡신비각은 1981년 7월 백두산천지종합탐험대원들에 의하여 백두산
20세기초 대종교나 천불교의 관계자인 천화도인에 의하여 세워진 룡신비각은 높이 116㎝, 너비가 44㎝(웃 너비), 58㎝(가운데 너비), 68㎝(밑 너비)이며 두께가 10~11㎝이다.
백두산 분출암을 다듬어 세운 이 비석은 100여년세월 백두산의 비바람, 눈바람에 풍화되였으나 글자획은 그대로 보존되여있다.
비석의 앞면에는 한자로 《대태백 대택수 룡신비각》(大太白 大澤守 龍神碑閣)이라고 씌여져있다.
《대태백 대택수 룡신비각》이라는것은 백두산을 지키는 천지 룡신의 비석이라는 뜻이다.
구체적으로 대태백은 백두산, 대택수는 큰 못, 즉 천지를 의미하며 룡신비각은 천지의 룡신에 대한 비석이라는것이다.
뒤면에는《지궁 룡왕 룡신비각 청정 대태백 대택수 중비각 래래무량안정 천화도인》이라고 새겨져있다.
《지궁》(地宮)이라는것은 천지가 땅우에 있는 룡왕의 궁전이라는 뜻이다.
예로부터 룡들가운데서 으뜸인 룡왕은 깊은 바다속에 있었다고 일러왔는데 우리 선조들은 해발 2천m가 넘는 높은 산정에 이처럼 넓고 깊은 물이 고여있는 백두산천지를 룡왕이 있는 지상궁전으로 여겨왔다.
《지궁》이라는 글 아래에는 《룡왕 룡신비각 청정 대태백 대택수 중비각 래래무량안정 천화도인》(龍王 龍神碑閣 淸晶 大太百 大澤守 中碑閣 來來無量安定 千和道人)이라고 씌여있다.
여기서《룡왕 룡신비각 청정대태백 대택수 중비각》이라는것은 이 비석이 수정처럼 맑고 깨끗한 백두산천지를 지키고있는 룡왕룡신에 대한 비석이라는 뜻이고 《래래무량안정》이라는것은 영원무궁토록 안정하게 해줄것을 바란다는 뜻이며 《천화도인》이라는것은 비석을 세운 사람들을 의미한다.
비문의 내용을 총체적으로 보면 우리 인민들이 예로부터 백두산을 지키는 천지의 《룡신》을 조선사람들을 무궁토록 안정하게 살도록 해주는 숭상의 대상으로 여기고 백두산을 지키는것을 민족의 존엄과 운명을 지키는것으로 간주하고있었다는것을 알수 있다.
이 비석은 국보유적 제195호로 등록되여 천지가 잘 내려다 보이는
오늘도 《룡신비각》은 우리 민족의 국보유적으로서 이곳을 찾는 국내외사람들에게 백두산이 조종의 산이라는 력사적사실을 그대로 보여주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