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로부터 우리 나라의 비단은 세계적으로 이름이 높았습니다.》 (
우리 인민들은 자연을 개조하기 위한 오랜 기간의 창조적활동을 벌려오는 과정에 우리 나라의 자연기후조건과 생산활동, 우리 인민의 감정과 정서에 맞는 여러가지 옷감을 만들어 리용하였다. 그 가운데는 비단도 있다.
비단은 누에고치에서 풀어낸 명주실로 짠 자연섬유이다.
비단천으로 만든 옷은 사람의 건강에 매우 좋다. 명주실에 들어있는 18가지 아미노산 특히 티로신은 자외선을 흡수하였다가 천천히 내보내므로 살균작용을 하는데 특효가 있다. 그리고 명주천은 습기를 빨아들이고 내보내는 성질이 강한데로부터 땀을 잘 빨아들이고 빨리 날려보낸다.
우리 나라 비단은 오랜 력사를 가지고있을뿐아니라 가볍고 질기며 아름다운 무늬와 부드러운 손맛을 가지고있는것으로 하여 세상에 널리 알려졌다.
우리 나라에서는 원시시대말기에 벌써 베, 모시와 함께 비단천이 생산되고있었다.
황해북도 봉산군 지탑리유적을 비롯한 우리 나라 신석기 및 청동기시대유적들에서 그릇밑바닥에 뽕누에모양의 자리가 찍혀있고 그릇벽에는 누에를 형상한 무늬들이 새겨져있는 질그릇들이 발굴되였는데 이것은 이미 오래전부터 비단이 생산되고있었다는것을 보여주고있다.
중국의 력사책인 《후한서》에는 조선사람들이 비단옷을 입고있었다는데 대하여 전하고있으며 《삼국지》에는 조선사람들이 뽕누에치기와 비단천짜기를 잘하였으며 화려한 비단으로 옷을 만들어 외국에 갈 때 입었다는 기록이 있다.
이것은 고대에 벌써 우리 나라의 비단이 주변나라들에 알려져있었다는것을 보여준다.
비단은 고대이후 가공방법이 발전하여 여러가지 종류로 생산되였으며 다른 천들에 비하여 화려하고 아름다워 고급옷감으로 리용되였다.
삼국시기에 전반적지역들에서 경작지가 더 개간되고 뽕밭도 훨씬 늘어나 누에치기가 더욱 활발히 진행되면서 비단가공기술이 보다 발전하였다. 그리하여 비단종류만도 면, 겸, 견, 시, 주, 라, 사, 초, 금, 릉 등 10여가지나 되였으며 색과 무늬도 다양하였다. 이 시기 생산된 비단천들은 그 질이 높고 아름다운것으로 하여 중국이나 일본에까지 알려지게 되였다.
일본의 력사책인 《일본서기》에는 4~5세기부터 7세기에 이르는 기간에 우리 나라의 비단짜는 기술자들이 일본으로 많이 건너가 일본사람들에게 기술을 배워주어 그 생산이 시작된데 대하여 전하고있다.
고려시기에 이르러 비단생산기술이 더 발전하여 그 종류도 훨씬 늘어났을뿐아니라 그 질이 또한 우수하여 이웃나라는 물론 멀리 중근동에까지 수출되여 《고려비단》이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지게 되였다.
《고려사》에서는 이 시기에 생산된 견, 백, 주, 사, 릉, 시, 수, 기, 채, 곡호, 정, 회, 소, 환, 금, 란 등 다양한 비단천들에 대하여 기록하고있다.
조선봉건왕조시기에 들어서면서 전국각지에는 뽕이 많이 나고 물이 좋은 곳마다 이름난 비단생산지가 생겨나게 되였는데 그 가운데서도 특히 평안도의 녕변, 성천, 함경도의 금야, 정평, 고원, 리원, 홍원, 북청, 단천, 길주, 명천, 강원도의 철원, 황해도의 수안, 전라도의 라주, 경상도의 안동 등지에서 생산된 비단이 유명하였다.
우리 인민들이 생산한 비단천들은 자연섬유들가운데서 가장 질기며 가볍고 아름다웠을뿐아니라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스하였다. 또한 튐성이 커서 잘 구겨지지 않는 성질과 함께 몸에 닿는 느낌이 부드러워 고급옷감으로 리용되였다.
이와 같이 우리 인민들은 일찍부터 비단천을 생산하였을뿐아니라 그 질이 좋아 세상에 널리 알려져있었다.
오늘 우리 나라에서는
우리는 옷차림분야에서도 우리 인민의 우수한 민족적전통을 적극 계승발전시켜 사회주의문명강국건설에 적극 이바지하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