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종합대학 력사학부 최성혁
2022.2.25.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우리 수령님은 그이께서 지니신 천재적인 사상리론과 특출한 령도력으로 하여, 한없이 너그럽고 자애에 넘친 인품과 높은 덕망으로 하여 인류력사가 일찌기 알지 못했던 존경과 흠모를 낳은 위인중의 위인이시였습니다.》 (《김정일선집》 증보판 제18권 3페지)
불세출의 위인이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를 만나뵈온 세계 여러 나라의 국가 및 정부수반들과 당지도자들, 저명한 인사들은 누구라 할것없이 끝없는 흠모심을 금치 못해하였다.
국제친선전람관에는 위대한 수령님께 완전히 매혹되였던 전 일본사회당 중앙집행위원회 위원장 이시바시 마사시가 자기의 격동된 심정을 글에 정히 담아 올린 선물이 전시되여있다. 그것이 바로 액틀식축하문 《풍취일부동》이다.
《풍취일부동》, 이 말은 바람이 불어도 태양은 움직이지 않는다는 의미로서 위대한 수령님께서 창시하신 주체사상은 그 어떤 바람이 불어도 변하지 않고 영원불멸하다는 뜻이 담겨져있다.
일본의 한 저명한 인사가 위대한 수령님께 지성을 다해 축하문 《풍취일부동》을 올리게 된데는 깊은 사연이 있었다.
그는 주체73(1984)년 9월 일본사회당대표단 단장으로 우리 나라를 처음으로 방문하였다.
짧은 체류기간에 위대한 수령님을 4차례나 만나뵈운 그는 격동된 심정을 누르지 못하였다. 위대한 수령님이시야말로 그 누구도 따를수 없는 비범한 예지와 천리혜안의 선견지명을 지니시고 조선혁명과 세계혁명을 승리에로 이끄시는 절세의 위인이시라는 확신과 격정이 그의 심장을 틀어잡았던것이다. 그때 그는 일본의 어느 한 인사가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를 만나뵙지 않고서는 그이의 위대성을 다 알지 못한다고 한 말을 상기하면서 참으로 옳은 말이라고 생각하였다.
그의 이런 생각은 주체사상탑을 비롯한 대기념비적창조물들을 참관하면서 더욱 굳어졌다.
하기에 그는 우리 나라 방문을 마치고 돌아가자 자기가 받은 인상과 감동을 글에 담아 위대한 수령님께 올리기로 결심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인상기로도 써보고 송시로도 창작해보았으나 종시 완성하지 못하였다. 그 어떤 류형의 글도 그의 마음에 들지 않았던것이다.
그렇게 고심하며 여러 달을 보낸 그는 주체74(1985)년 2월초 위대한 수령님에 대한 다함없는 흠모의 정을 시구절에 담을수 있지 않겠는가고 생각하게 되였다. 하여 그는 우리 나라 방문에서 받은 가장 깊은 인상을 되새기며 마침내 《풍취일부동》이라는 축하문을 짓게 되였던것이다.
그는 이 축하문을 직접 쓸수 있었으나 일본의 100살이 나는 이름있는 서예가에게 의뢰하여 씌였다.
일본사람들은 최상의 경의를 표시할 때 그것을 장수자를 통해 표시하는 관례가 있다.
위대한 수령님께 올리는 축하문 《풍취일부동》을 쓰게 된 사연을 알게 된 100살난 서예가는 정결한 방에서 깨끗한 돗자리우에 백지와 필묵을 놓고 흥분된 마음으로 《풍취일부동》이라는 글을 썼다.
축하문 《풍취일부동》, 진정 여기에는 영생불멸의 주체사상을 창시하시고 그 광휘로운 빛발로 조선혁명과 세계혁명을 승리의 한길로 이끄시는 위대한 수령님에 대한 일본의 한 저명한 인사의 끝없는 존경과 신뢰, 다함없는 흠모와 칭송의 마음이 뜨겁게 담겨져있다.
참으로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는 사상과 정견이 다른 사람이라도 누구든지 한번 만나뵈오면 천재적인 사상리론과 특출한 령도력, 자애에 넘치신 인품과 높은 덕망에 매혹되여 끝없이 흠모하고 존경하며 우러르는 절세의 위인이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