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종합대학 력사학부 김광진
2021.12.10.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김일성동지는 고결한 인품과 덕망을 지니신 위대한 인간이시였다.
수령님께서는 뜨거운 인정미와 한없이 검박하고 소탈한 품성을 지니시고 인민들을 따뜻이 대해주고 보살펴주시였다.》
위대한 생애의 전기간 조선혁명과 인류자주위업의 진두에 서시여 세기를 주름잡아오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는 걸출한 령도자, 뛰여난 혁명가이시기전에 위대한 인간이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는 혁명생애의 전기간 언제나 인민들속에 들어가시여 그들과 함께 계신 인민의 자애로운 어버이이시였다.
인민에 대한 무한한 존중의 마음, 인민을 하늘처럼 여기시는 숭고한 애민헌신의 관점은 위대한 수령님으로 하여금 인민과 허물을 모르는 당과 국가의 수반로 한생을 살아오실수 있게 한 정신적바탕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당과 국가, 조국과 인민의 수반이시였지만 인민들을 대하시는데서 자그마한 간격도 두지 않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 46(1957)년 10월 10일 조선로동당창건 12돐이 되는 뜻깊은 명절날에도 평안북도에 대한 현지지도의 길에 계시였다.
이날 위대한 수령님께서 자기네 고장에 오시였다는 소식을 들은 동주중학교의 학생들이 수업이 끝나자마자 그이를 뵙겠다고 와 달려나왔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아이들을 보시고 못내 기뻐하시며 그들에게 공부는 다 끝났는가, 공부들을 잘 했는가고 하나하나 물어보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아이들에게 크면 무엇을 하겠는가 하나하나 물어주시고 그들의 결의도 지지해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저녁해가 지기 전에 사진을 찍자고 하시며 아이들과 함께 잔디밭에 앉으시여 사랑의 기념사진까지 찍어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아이들과 함께 찍으신 이날의 기념사진은 우리 혁명력사에 영원한 후대사랑의 화폭으로 남아있다.
위대한 수령님께 있어서 학생들, 인민들과 함께 어울려있는 때이상 귀중하고 즐거운 시간이 없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사업이 너무 바쁘시여 인민들과 아이들을 찾아가지 못하는것을 못내 아쉬워하시였으며 자신에게 찾아온 사람들을 나무람하는 일군들을 보실 때마다 서운하고 노여운 마음을 금치 못해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에게는 당과 국가앞에 지니신 직책상의 업무를 보시는 시간과 장소가 특별히 정해져있지 않았다.
언제인가 위대한 수령님께서 두루섬에 가시였을 때 밭일을 하던 농민과 인사를 나누시며 그의 손을 잡아주시려고 하자 방금까지 거름을 주무르던 손이여서 엉거주춤하며 바지에 손을 문지르는 그에게 일없다고, 농민의 손이 그렇지요라고 하시며 그의 손을 다정히 잡아주신 일도 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전화의 나날 모범전투원들과 최고사령부의 밤나무밑에서 허물없이 자리를 같이 하시고 그들의 위훈담도 정답게 들어주시였다.
이어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들과 저녁식사도 함께 하시면서 모범전투원들에게 손수 음식들도 권해주시였으며 오락회때에는 몸소 노래《사향가》도 불러주시였다.
인민들과 어울리는 시간이 그이의 업무시간이였고 인민들과 허물없이 마주하고 앉으신 곳이 그이께서 당과 국가의 일을 보시는 장소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얼마나 사람들을 허물없이 대해주시였으면 아이들은 그이의 품에서 마음껏 응석을 부렸고 어른들까지도 그이의 따뜻한 정에 저도 모르게 끌려들어 나라의 운명을 책임지신 그이께 세세한 개인생활에 이르기까지 숨김없이 다 말씀올리고 은정을 베풀어주실것을 청탁드리기도 하였다.
이처럼 우리 인민들을 끝없이 사랑하시고 진정으로, 허물없이 대해주신것으로 하여 위인중의 위인으로서의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숭고한 인간상은 온 나라 인민들에게 더더욱 깊이 새겨지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는 언제나 인민들과 고락을 같이 하시며 그들과 다름없이 검박하게 생활해오신 진정한 인민의 수령이시였다.
주체36(1947)년 4월 15일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해방후 두번째로 맞으시는 생신날이였다.
이날 아침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동지께서는 항일혁명투사들과 함께 검소하게나마 생신상을 차려놓고 수령님께서 돌아오시기를 기다리고 계시였다.
그런데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간밤에도 집무실에서 꼬박 새우시고 15일 아침까지도 댁에 돌아오지 않으시는것이였다.
얼마후 댁으로 돌아오신 위대한 수령님께 투사들이 축원의 인사를 올리자 아무 말씀도 없이 방안을 천천히 오가시던 수령님께서는 조용히 동무들의 성의는 고맙다고, 그러나 생일이라고 하여 내 어찌 생일상을 받겠는가고, 나라가 해방되였어도 아이들에게 사탕한알 제대로 먹이지 못하고있는데 내가 생일상을 받은들 어떻게 마음이 기쁠수 있겠는가고 하시며 끝내 생일상을 마다하시였다.전체 인민이 행복하게 사는 부강한 인민의 나라를 이 땅우에 세우시려 소박한 생일상마저 사양하시고 불철주야의 로고를 바치시는 위대한 수령님을 우러르며 항일혁명투사들은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주체36(1947)년 9월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 나날 함경북도의 경성군의 여러 부문사업을 현지에서 지도해주시느라 저녁늦게야 숙소로 돌아오군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로고에 가슴뜨거워 일군들이 위대한 수령님께 소박한 식사로 기장밥과 물고기료리를 올리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자신때문에 물고기까지 구해왔다고 하시면서 항일무장투쟁시기 산천어잡이를 하여 대원들과 맛있게 드시던 때를 감회깊이 추억하시였다.
그러시면서 해방이 되였는데 우리 인민들에게도 이런 맛좋은 물고기를 많이 공급해야 하겠다고 하시였다.
일군들이 거듭 식사를 하시라고 간청드리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아직 우리 인민들이 어렵게 살고있는데 인민들의 식생활이 유족할 때 자신께서도 동무들의 성의를 받겠다고 굳이 사양하시며 끝내 노란 좁쌀밥을 드시였다.특식도 아닌 기장밥과 물고기료리마저 사양하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검박하신 풍모에 일군들은 뜨거운 눈시울을 적셨다.
인민을 위해서는 자신의 모든것을 다 바치시면서도 자신께서는 언제나 인민들과 꼭같이 수수하고 평범하게만 사신 위대한 수령님의 한없이 검박한 생활은 위대한 생애의 마지막시기까지 끝없이 이어졌다.
지니고계시는 명성이나 쌓으신 업적과는 너무도 대조되는 검박한 생활이여서 인민은 위대한 수령님의 한생을 돌이켜보며 마음속으로 심장의 뜨거운 눈물을 흘리고있다.
위대한 수령님은 이렇게 한평생 인민들과 함께 계시면서 인민의 심장속에 민족의 어버이로 간직되신 한없이 고결하신 분, 불세출의 위인이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