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해방 80돐을 맞이하는 전체 조선인민은
《혁명은 곧 신념이며 신념이 없으면 혁명가가 될수 없습니다.》
투사들이 지녔던 필승의 신념과 백절불굴의 투지가 얼마나 굳센것이였는가 하는것은 우리 인민들속에 불사조로 널리 알려진 리두수동지를 비롯한 투사들의 투쟁이야기를 통하여 잘 알수 있다.
1937년 2월 홍두산전투에서 총상을 당한 리두수동지는 리계순, 박순일동지들을 비롯한 몇명의 병상자들과 함께 바위굴속의 병원에서 치료를 받으며 간고한 나날을 보내고있었다. 말이 병원이지 변변한 약도 주사도 없었고 수술칼조차 없었으며 중환자인 박순일동지는 제때에 치료를 받지 못한탓으로 하여 발이 썩어들기까지 하였다.
그러한 간고한 나날속에서 투사들은
간고한 혁명의 길에서 혁명전사 한사람한사람을 절대로 잃어서는 안될 자신의 살붙이처럼 여기시며 육친의 사랑과 정을 안겨주시는
박순일동지는 빨리 완쾌되여 혁명초소로 돌아가야겠다고 하면서 통졸임통으로 자신이 직접 만든 양철톱으로 옹근 엿새동안 혁명가요를 부르면서 썩는 발을 자기스스로 잘라냈다.
그러던 어느날 제일 선참으로 적을 발견한 박순일동지는 적《토벌》대가 달려드는 위급한 순간에 동지들을 구원할 일념으로 두발이 없는 몸으로 자기를 생포하려고 달려드는 적병놈을 붙안고 벼랑아래로 굴러떨어지면서 《토벌》대가 왔다고 소리치며 장렬한 최후를 마치였다.
박순일동지가 알려준 덕분에 나무를 베려고 병원초막을 떠났던 리두수동지는 쉽사리 피신할수 있었으나 리계순동지를 포함한 몇사람은 적들에게 붙잡혀가고 나머지사람들은 희생되였다. 요행 피신할수 있은 리두수동지는 동지들도 초막도 량식도 없이 산중에 홀로 남게 되였으며 깊은 산중에서 혹심한 참경을 당하게 되였다.
메돼지가 뜯어먹군 한다는 속새풀을 씹으며 목숨을 이어갔으며 그 무서운 백두산추위속에서 옷마저 다 꿰져 헌 마대쪼박으로 몸을 가리우고 원시인처럼 한지에서 지내지 않으면 안되였다.
재속에 묻어 가까스로 살려오던 불씨마저도 꺼져버렸을 때 리두수동지는 죽는것이 상책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최후를 각오한 그 순간 리두수동지는 완쾌되여 전장에서 만나자고 하신
《나에게는 죽을 권리가 없다. 스스로 죽음을 택하는것은 자기를 희생시켜 나를 살려준 동지들에 대한 배신이다. 살아서 다시 전장에 나서라는것은
이렇게 생각한 리두수동지는 먹을것도 입을것도 없는 절해고도와 같은 산중에서 무려 석달 스무날이나 홀로 지내면서도 기적적으로 목숨을 보존하고 다시 혁명대오에 서게 되였다.
참으로 항일혁명투사들은 몸은 한점의 티끌로 사라지면서도 정신만은 백두의 령봉처럼 도고한 불사조들이였고 신념의 의지의 화신들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