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연구

근대시기 우리 나라의 만국우편동맹가입과 국제우편의 실시

 2018.11.23.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지난 몇해사이에 수십개의 나라들과 새로 외교관계를 맺었으며 세계보건기구와 국제의회동맹, 만국우편동맹을 비롯한 여러 국제기구들에 가입하였고 유엔에도 자기의 대표부를 두게 되였습니다.》 (김일성전집》 제54권 415페지)

만국우편동맹(략칭-UPU)은 세계 여러 나라들간의 국제우편통신을 보장하며 그를 통일적으로 발전시킬 목적으로 1875년 7월에 스위스에서 창설되였다.

우리 나라는 근대시기에 벌써 만국우편동맹에 가입하여 국제우편통신을 실시하였다.

우리 나라는 우선 아시아에서 다른 그 어느 나라보다 먼저 만국우편동맹에 가입하였다.

1884년 4월에 조선봉건왕조는 홍영식을 우정총판으로 임명하고 우편사업의 실시 및 만국우편동맹의 가입을 시도하는 한편 일본, 영국, 홍콩우정국들과 우편물교환협약을 맺고 그 실현을 위한 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시켜나갔다.

그후 1893년 12월에 와서 만국우편동맹의 가입문제는 다시 론의되기 시작하였다.

조선봉건왕조는 이해 12월 21일에 교섭통상관리 조병직의 명의로 만국우편동맹성원국의 지위를 가지고싶어한다는것을 스위스련방 외무부 장관에게 요청하였다. 이 요청서는 1894년 2월 조선주재 미국공사를 통하여 스위스정부에 전달되였다. 그해 4월말에 스위스련방 대통령에게 공식문건으로 제출되였으며 6월에는 만국우편동맹 집행부에 제출되였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은 1894년 일제가 청일전쟁을 도발하고 우리 나라를 침략전쟁마당으로 만들면서 또다시 중단되지 않으면 안되였다.

1894년에 김홍집을 비롯한 혁신관리들에 의하여 군국기무처가 창설되고 부르죠아개혁이 다시 진행되면서 근대적우편제도를 실시하기 위한 활동이 진행되는 가운데 만국우편동맹가입문제가 다시 상정될수 있는 계기가 조성되게 되였다.

이러한 속에서 조선봉건정부앞으로는 1897년 5월에 미국 워싱톤에서 진행되는 만국우편동맹 제5차총회에 조선대표들을 초청한다는 통보가 날아왔다.

이에 따라 조선봉건왕조는 미국주재 조선공사 리범진을 전권대표로 임명하여 만국우편동맹 제5차총회에 파견하였다.

1897년 5월 20일 만국우편회의에서 조선대표는 만국우편동맹개정조약, 의정서, 시행세칙에 서명하고 만국우편동맹에 정식 가입하였다. 그리고 1898년 7월에 국왕 고종은 만국우편동맹 조약들을 승인하고 이해 12월 23일에 승인문건을 회의주최국인 미국우편당국에 발송하였다.

그리하여 우리 나라는 만국우편동맹 성원국으로서 국제우편을 실시할수 있는 모든 조건을 갖추게 되였다.

우리 나라는 또한 만국우편동맹의 가입과 함께 국제우편을 실시하기 위한 조치도 취하였다.

우리 나라에서 국제우편봉사는 일정한 준비를 거쳐 1900년 1월 1일에 정식 시작되였다. 당시 농상공부령에 따라 1900년 1월 1일에 《국제우편봉사를 개시한다.》는것이 공식 발포되였다.

같은 날 농상공부 고시로 《금년 1월 1일 이후부터 국제우편봉사를 진행하므로 조선사람들과 외국인들에게 우편물을 보낼것이다.》고 통고하였다.

국제우편봉사의 개시를 선포함으로써 우리 나라는 다른 나라들과의 우편봉사를 독자적으로 할수 있는 수단을 가지게 되였다.

조선에서 국제우편이 실시되자 우리 나라에 거주하고있던 외국인들 지어 일본인들까지도 일본우편국을 리용하는것보다 조선우체사를 리용하는것이 더 편리하다고 하면서 여기에 커다란 관심을 돌리게 되였다.

결과 1900년에 우리 나라에서 국제우편이 실시되면서부터 국제통신활동은 활기를 띠고 진행되였다.

근대시기에 우리 나라는 국제적판도에서 우편교류사업을 벌리기 위한 사업도 활발히 진행하였다.

그 일환으로 조선봉건왕조는 1899년 12월에 일본국제우편송달을 리용하던 종전의 우편송달체계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국제우편을 실시하기 위하여 일본과 우편송달조약을 맺었다.

만국우편동맹가입전에 조선에서의 국제우편은 일본이 독점하고있었지만 우리 나라가 만국우편동맹성원국으로 되면서부터 일본우편국들은 조선에서의 국제우편송달자격을 잃게 되였다.

이러한 가운데 조선봉건정부는 로씨야와 우편협정을 체결하여 독자적인 국제우편통로를 개척하였다.

조선봉건정부가 이러한 조치를 취하게 된것은 1902년 여름에 씨비리횡단철도가 개통됨으로써 로씨야의 극동지역과 당시 로씨야의 조차지인 료동반도를 비롯하여 만주에서 유럽으로 통하는 우편선로가 개설되게 된것과 관련되였다.

조로간의 우편협정체결로 조선봉건왕조는 일본우편국을 통하여 유럽으로 보내던 우편물을 씨비리행 철도를 리용하여 직접 발송할수 있게 되였다.

그리하여 1903년 씨비리횡단 단기우편통로를 통한 국제우편물들이 발송되기 시작하였다.

먼저 1903년 5월에 중국동북철도와 할빈, 우쑤리항(로씨야)사이에 이동우편국을 설치하였고 1903년 7월 인천에 대리점을 설치함으로써 우쑤리항과 인천항이 련결되여 조선에서 유럽으로 보내는 우편송달체계가 서게 되였다.

이리하여 우리 나라는 일본우편국을 통해 조선-일본-상해를 걸쳐 유럽으로 가던 통로대신 조선-중국의 동북철도-씨비리횡단철도를 경유하여 유럽으로 가는 체송로를 개척함으로써 국제우편에서 독자성을 강화할수 있게 되였다.

이처럼 근대시기에 우리 나라가 만국우편동맹에 가입하고 국제적인 우편송달체계를 확립함으로써 대외적으로 여러 나라들과의 국제적련계를 강화하고 발전시켜나갈수 있는 제반조건들이 이루어지게 되였다.

그러나 우리 나라에서의 국제우편통신활동은 근대적지향을 악랄하게 막아나선 국내외 반동세력들의 책동으로 여러가지 난관에 부닥치게 되였다.

더우기 1905년 11월 17일 일제는 《을사5조약》을 날조하고 우리 나라에 대한 악랄한 식민지적정책을 실시하면서 만국우편동맹자격을 박탈하고 저들이 우리 나라를 대신해서 만국우편동맹에 참가하는 범죄행위를 감행하였다.

그리하여 일제의 식민지통치기간에 우리 나라에서의 국제우편통신은 거의나 침체상태에 빠지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와 우리 당의 현명한 령도에 의하여 우리 나라는 1974년에 만국우편동맹에 가입하여 동맹에서 큰 역할을 하고있다.

만국우편동맹은 1947년 7월 4일에 유엔의 전문기구의 하나로 되였으며 동맹의 사무국은 스위스의 베른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