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연구

삼국시기 명화가 - 솔거

 2017.6.15.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옛날의 이름난 화가 솔거는 벽에 소나무를 어찌나 잘 그려 놓았던지 날아 가던 새들이 그것이 진짜 소나무인줄로 알고 거기에 앉으려다가 벽에 부딪쳐서 떨어 졌다고 합니다.》 (김일성전집》 제37권 325페지)

자기의 예술적재능과 꾸준한 노력, 사실주의적인 화폭으로 중세미술의 보물고를 풍부히 한 솔거는 6세기경 신라 진흥왕(534~576년)시기에 미술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낸 화가이다.

그가 그린 그림은 기록상에만 보일뿐 후세에 전해지는것은 없지만 황룡사의 벽화, 단군초상, 분황사의 관음보살상, 단속사의 유마상은 그의 창작활동과정을 장식하는 명작들이였다.

그중에서도 황룡사벽에 그린 소나무는 어찌나 생동하게 그려놓았던지 날아가던 새들이 그것이 진짜 소나무인줄 알고 앉으려다가 벽에 부딪쳐 떨어지군 하였다는 이야기는 오늘도 전해지고있다.

당시 불교를 숭상하던 신라에서는 경상북도의 경주에 여러개의 건물로 이루어진 황룡사를 많은 로력과 자재를 들여 크고 화려하게 지었다. 그리고 오랜 기간 건설과정을 걸쳐 완공된 황룡사에 금 1만 198푼을 비롯한 많은 금속재료들로 주조한 3만 5 007근에 달하는 장륙부처를 안치하였고 넓은 벽에는 명화가인 솔거를 초청하여 소나무를 그리게 하였다.

그 생동한 화폭에 대하여 옛 력사문헌인 《삼국사기》에는 솔거가 황룡사벽에 늙은 소나무를 그렸는데 그것이 하도 실물과 비슷하여 《…매, 제비, 참새들이 때때로 날아들다가 벽에 부딪쳐 떨어지군 하였다. 세월이 오래되여 색이 어두워지자 절간의 중들이 애석히 여긴 끝에 단청으로 덧 그렸더니 그후로는 새들이 다시는 날아들지 않았다.》라고 기록되여있다.

참으로 거북잔등같이 껍질이 갈라터진 늙은 소나무의 줄기들, 세월의 흐름인양 힘있게 뻗어간 나무가지들과 무성한 잎새들의 생동한 묘사는 힘있고 아름답고 고상한 조선화의 미술형식을 담은 당대의 으뜸가는 명화였던것이였다.

그의 그림이 하도 유명하여 후세사람인 리수광은 1614년에 저술한 《지봉류설》에서 신라 진흥왕 때에 솔거라는 사람이 황룡사벽에 늙은 소나무를 그렸다고 하면서 《그림이 훌륭한것이였으니 어찌하여 신라에서는 김생의 글씨만을 홀로 일러주는가. 그의 이름이 후세에 떨치지 못함이 참으로 애석하다.》고 함으로써 솔거의 뛰여난 예술적재능을 높이 평가하였다.

이러한 예술적재능은 그의 꾸준한 노력과 떼여놓고 생각할수 없었다.

그는 6세기경에 가난한 가정에서 출생하여 어려서부터 남다른 천성적재능을 가지고 그림공부를 열심히 하였다

옛 문헌인《동사류고》에 의하면 솔거는 평백성의 아들로 태여나 어려서부터 그림그리기에 남다른 취미를 가지고 산에 나무하러 갈적에는 칡뿌리로 바위에 그림을 그리고 밭에서 김을 맬적에는 호미로 땅우에 그림을 그리였다고 한다.

이처럼 가난속에서도 사물현상에 대한 비상한 관찰력을 지니고 꾸준히 노력한것으로 하여 그는 풍경화와 인물화, 불화 등을 다 잘 그리는 당대의 명화가로 성장할수 있었다.

더우기 솔거가 우리 인민들속에서 이름을 떨칠수 있은것은 단군초상을 수많이 그려 널리 보급한것과도 관련된다.

근대시기에 나온 김교헌의 《신단실기》에 의하면 솔거는 매일 밤마다 명화가가 되게 해달라고 빌군하였는데 어느날 밤 신선이 내려와 신기한붓을 주었고 그때로부터 그는 이름을 떨치였다고 한다.

솔거는 자기에게 신기한 붓을 준 그 고마운 신선이 바로 선인왕검인 단군이라고 생각하고 그때부터 온갖 정열과 사색을 기울여 꿈에서 그려본 단군의 초상을 1 000여매이상 훌륭히 그려내여 집집마다 나누어주었다고 한다.

이 기록은 비록 신비하게 엮어졌지만 이것을 통하여 그가 자기 민족의 건국시조인 단군에 대한 숭배심을 지니고 정력적인 창작활동으로 단군의 업적을 후세에 남기는데 이바지하였다는것을 알수 있다.

이에 대해 고려의 이름난 철학가이며 문인이였던 리규보는 자기의 문집에서 다음과 같은 시를 남기였다.

령밑의 집집마다

신인의 모습 모셨으니

솔거는 이해부터

이름을 날렸어라

이처럼 우리 나라 력사에 가장 오랜 화가들중 한사람인 솔거는 단군민족으로서의 남다른 긍지와 자부심을 지니고 자기 식의 독특한 채색수법과 기법으로 인물화의 화법을 발전시킨것으로 하여 후세에 이름을 떨치고있다.

이밖에도 솔거의 작품인《신라 진흥왕북수대렵도》8폭이 병풍으로 전해져오는것을 보았다는 기록이 19세기 김윤식의 《운양집》에 전해지고있다.

비록 솔거의 대표작인 황룡사의 소나무벽화는 1238년 몽골침략군의 만행으로 황룡사와 함께 불타 없어지고 세월의 흐름과 함께 그가 남긴 많은 작품들이 류실되였지만 솔거의 이름은 우리 민족회화사에 깊이 새겨져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