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종합대학 력사학부 박사 부교수 박영철
2021.5.14.
항일무장투쟁의 승리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활용하신 천재적인 군사전략과 전술, 탁월한 령군술의 빛나는 승리였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수령님께서는 군사기술적으로 우세한 적은 정치사상적우월성과 함께 전략전술적우세로 압도하여야 한다고 하시면서 탁월한 군사전략과 유격전술을 창시하시고 신출귀몰하는 령활한 전법으로 걸음마다 일제침략군대에 죽음과 공포를 안기시였습니다.》 (《김정일전집》 제7권 7페지)
유격전쟁에서는 부단히 변화되는 현실에 맞게 적아쌍방간의 력량관계, 지형, 주야일기조건을 정확히 타산하여 옳은 전술, 전법을 변화무쌍하게 구사할줄 아는 군사가만이 싸움에서 백전백승할수 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항일무장투쟁시기에 유격전의 독창적인 전술과 전법들을 창조하시고 령활무쌍한 령군술로 항상 주도권을 틀어쥐고 수많은 군사작전과 전투들을 승리에로 조직령도하시여 일제침략군에게 참패만을 안기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력사적인 남호두회의후 조선인민혁명군 주력부대를 이끄시고 국경일대에서 적극적인 군사정치활동을 벌리시던 시기에 조직지휘하신 서강전투도 그러한 전투들중의 하나이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25(1936)년 7월 중순 무송일대의 적을 제압하기 위한 공격전의 일환으로 서강전투를 계획하시였다.
서강은 무송현성에서 남쪽으로 약 40㎞, 동강에서는 서남쪽으로 약 20㎞ 떨어져있는 산간부락으로서 교통이 매우 불비한 지대였다.
적들은 이 일대가 백두산의 원시림과 직접 련결되여있어 조선인민혁명군의 활동에 매우 유리한 지역이라는것을 고려하여 가장 악질적인 위만군 1개 련대를 상시적으로 주둔시키고 통제지역으로 관할하고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적의 병영이 목조건물이라는것을 타산하여 화공전술을 배합한 강한 화력전과 적군와해전술을 리용하여 놈들을 소탕할데 대한 전술적방침을 제시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적들이 모르게 감쪽같이 공격태세를 갖추게 하신 다음 전부대에 전투명령을 내리시였다.
명령을 받은 화공조는 석유를 친 솜뭉치에 불을 달아 나무기와를 이은 적병영지붕에 던지였다. 이윽고 적병영지붕에서 삼단같은 불길이 치솟아올랐다. 화력조는 병영에서 뛰쳐나오는 적들에게 집중사격을 퍼부었다. 적들은 무리죽음을 당하면서도 지하포대에 의지하여 완강하게 저항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조성된 정황을 예리하게 통찰하시고 무모하게 발악하는 적의 지하포대를 폭파하기 위해 대원들에게 땅밑으로 굴을 파고들어갈것을 명령하시는 한편 성밖에 있는 민가들에서 위만군장교가족들을 찾아보도록 하시였다. 위만군장교가족들을 리용하여 놈들로 하여금 투항하게 하시려는것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위만군련대장의 가시어머니를 만나시여 사위로 하여금 중국사람으로 일제의 주구노릇을 하는 치욕을 벗어던지고 일신을 파멸에서 구출하려면 무모한 저항을 즉시 중지하고 조선인민혁명군에 무기를 바치도록 설복할것을 권고하시였다.
수차에 걸친 담판끝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2명의 사병을 데리고 떠나게 해달라는 위만군련대장의 요구를 수락하시였다.
겨우 살구멍을 찾은 위만군련대장은 먼저 포대의 사병들을 철수시키고 전체 사병들을 한곳에 정렬시킨 다음 무장을 해제하여 성밖에서도 볼수 있는 곳에 쌓아놓았다. 그리고는 2명의 호위병과 함께 황황히 북문으로 빠져나갔다.
전투는 조선인민혁명군의 빛나는 승리로 끝났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위만군포로들에게 그들이 걸어온 치욕스러운 괴뢰군살이의 반인간적, 반동적본질에 대하여 차근차근 해설해주시고 려비까지 넉넉히 주어 보내시였다.
위만군포로들에 대한 이와 같은 관대정책은 적군내부를 와해시킴에 있어서 커다란 작용을 하였다.
부락인민들은 조선인민혁명군 대원들을 열렬히 환영하면서 놈들의 《난공불락의 요새》를 하루사이에 무너뜨린데 대하여 경탄하여마지 않았다.
서강전투를 통하여 조선인민혁명군의 위력을 다시금 과시하고 주력부대의 무장장비를 개선할수 있게 되였다.
이처럼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항일무장투쟁시기 신출귀몰하는 령활한 전법으로 전투마다 승리를 이룩하시고 조국해방의 력사적위업을 이룩하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