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종합대학 력사학부 김현철
2021.11.15.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문학예술부문 일군들과 창작가, 예술인들은 명작창작으로 수령을 옹위하고 혁명을 보위하며 당의 척후대, 나팔수로 복무해온 전세대 문예전사들의 투쟁전통을 이어받아 오늘도 래일도 영원히 우리 당을 앞장에서 받들어나가는 사상전선의 기수가 되여야 합니다.》
태을민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누구나 조선예술영화《량반전》, 《흥부전》에서 주역으로 출연하여 사람들의 웃음을 자아낸 명배우로서의 그의 모습을 먼저 떠올리게 된다.
태을민이 우리 곁을 떠난지도 이제는 퍼그나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그는 우리 인민들과 친숙해진 명배우로 남아있으며 절세위인들의 사랑과 믿음속에 오늘도 영생하고있다.
해방전 태을민은 집안이 가난했던탓에 소학교를 겨우 마치고는 힘겨운 로동에 시달리지 않으면 안되였다. 그러나 어려서부터 예술을 남달리 동경했던 그는 이악스럽게 노력하여 18살때부터 무대에 나섰지만 일제의 식민지통치와 해방후 미제침략자들의 탄압으로 하여 참된 예술에 대한 갈망을 풀수가 없었다.
주체37(1948)년 태을민은 분계선을 넘어 그처럼 꿈결에도 그리던 위대한 수령님의 품에 안기였으며 이때부터 그의 운명에서는 전환이 일어나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가 그토록 바라던 참다운 예술활동을 마음껏 벌릴수 있게 온갖 배려를 다 돌려주시고 그가 출연한 연극과 영화작품들도 몸소 보아주시며 다른 배우들의 연기형상은 물론 그가 맡아한 역형상의 우점과 부족점까지 일일이 가르쳐주시였다.
위대한 수령을 모셔야 조국도 있고 조국이 있어야 예술가의 생명도 있다는것을 곡절많은 인생체험을 통해 신념으로 간직한 태을민은 조국해방전쟁시기 용약 전선으로 달려나갔으며 전쟁의 운명, 조국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 도저히 가늠할수 없었던 일시적인 전략적후퇴시기에도 고향을 지척에 두고도 조금도 흔들림없이 끝까지 당을 따라왔다.
위대한 수령님 그대로이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태을민을 극진히 아끼고 사랑해주시고 걸음걸음 손잡아 이끌어주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그의 남다른 충실성과 독특한 개성을 남먼저 헤아려보시고 영화혁명을 령도하실 때부터 국립연극단에 그를 불러주시고 영화예술인들의 무대공연작품인 경희극《보람찬 우리 생활》의 령감역도 맡겨주시는 크나큰 영광과 믿음을 안겨주시였다.
위대한 장군님의 사랑과 믿음에 보답하기 위하여 태을민은 그 누구보다 피타는 사색과 탐구의 날과 달을 보내며 아낌없는 노력으로 한치한치 자기의 연기술을 높여나갔으며 그 과정에 전문가들도 감탄을 금치 못해하고 인민들의 사랑을 받는 특이한 개성의 인기배우로, 인민배우로 자라났다.
태을민은 자기가 난치의 병에 걸렸다는것을 알게 되였을 때에도 날로 두터워만지는 위대한 장군님의 사랑과 믿음에 보답하기 위하여 더욱 활력있게 창조활동을 벌렸고 생의 마감도 무대우에서 마치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그가 평양대극장에서 공연준비를 하다가 급병으로 별로 손쓸사이도 없이 숨을 거두었다는 보고를 받으시고 못내 가슴아파하시면서 한밤을 꼬박 새우시며 그의 장례식과 관련한 조직사업까지 구체적으로 가르쳐주시였으며 다음날에는 흙탕물에 신발과 바지가 어지럽혀지는것도 아랑곳하지 않으시고 도로수리로 파헤쳐진 험한 길을 걸으시여 촬영소에 안치된 그의 령구를 몸소 찾아주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태을민동무는 자기의 특기와 예술적재능으로 우리 예술의 대전성기를 이룩하는 사업에 크게 이바지하였다고 하시면서 그는 언제나 당을 믿었고 자기의 모든 운명을 전적으로 당에 의탁하였다고, 그가 남달리 예술을 열렬히 사랑한것도 당의 은덕에 성실히 보답하려는 뜨거운 충성심때문이였다고 교시하시였다. 그러시고는 그가 평소에 간직했던 그 숭고한 뜻을 우리가 잊지 말고 끝까지 꽃피워주어야 하겠다고, 자식들을 당에서 맡아 키워주고 가족들이 사소한 불편도 없도록 우리가 책임지고 돌봐주자고 대해같은 사랑을 베풀어주시였다.
그때로부터 1년후에 열린 조선로동당 제5차대회에서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당대회의 개회를 선언하시면서 총결기간 혁명투쟁과 건설사업에 자기의 한생을 바친 공로있는 혁명가들과 함께 태을민의 이름도 불러주시였다.
참으로 혁명전사에 대한 위대한 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의 사랑은 끝이 없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그가 이룩한 공적을 높이 평가해주시고 떠나간 전사를 잊지 못하시여 그의 묘를 애국렬사릉으로 옮기도록 하여주시였다.
사랑도 헤여지면 세월의 흐름과 더불어 차츰 식어지기마련이라고 한다.
그러나 세월이 흐를수록 더욱 뜨거워만지는것이 바로 우리 장군님의 동지에 대한 사랑이다.
진정 위대한 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의 품은 전사들에게 죽어도 잃지 않는 생을 안겨주시는 한없이 위대하고 숭고한 사랑의 품이다.
그의 한생은 우리들에게 수령의 사랑과 믿음을 뼈에 새기고 당을 받드는 길에 자기의 모든것을 깡그리 다 바칠 때 세월의 흐름과 더불어 영생한다는 진리를 다시금 새겨주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