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건국 B.C. 277년)로부터 조선봉건왕조에 이르는 중세조선의 장구한 력사에는 세계적으로 크게 자랑할만한 출판인쇄업의 발전사도 깃들어있다.
《세계에서 금속활자를 제일 처음으로 만들어낸것도 우리 민족이라는것을 누구든지 알도록 하여야 합니다.》 (
중세조선의 출판인쇄업의 발전을 추동한 주요요인들로서는 종이의 발명과 생산, 금속활자의 발명과 보급, 훈민정음의 창제 등을 들수 있다.
무엇보다도 중세시기 조선에서는 종이가 일찌기 발명되고 적극 생산됨으로써 출판인쇄업의 발전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종이는 사람의 의사를 기록할수 있는 중요한 서사수단의 하나로서 출판인쇄업의 발전을 담보하는 물질적기초이다.
종이가 발명되기 이전에 사람들은 돌이나 나무, 참대, 뼈, 가죽, 천 등을 글을 기록하는 수단으로 리용하였지만 이것들은 사용이 편리하지 못하였고 또한 도서에 대한 사회적수요를 충족시킬수 없었다.
중세에 조선사람들은 서사활동에 보다 간편하고 쓰기 좋은 종이를 만드는 기술을 발명해냈으며 제지기술을 세계에 널리 보급하였다.
4세기경에 축성된 고구려의 안악3호무덤에 왕에게 보고하는 신하가 글줄이 있는 종이장을 들고있는 그림이 있다는 사실, 평양 대성산에서 나온 삼으로 만든 고구려시기의 종이가 오늘까지도 깨끗한 흰빛을 띠고있다는 사실, 평양 청류벽 북쪽기슭 토성유적지에서 발굴된 종이가 고구려시기의것이라는 사실 등은 4세기이전에 중세조선에서 종이가 발명되였다는것을 알수 있다.
중세조선에서는 세계력사상 처음으로 닥종이(닥나무의 속껍질을 재물에 우려내여 만든 종이)를 만드는 기술을 발명하였는데 《신증동국여지승람》의 기록에 의하면 닥나무의 특산지로 지정된 군만 하여도 전국내 4개도에 34개군이나 되였다고 한다.
중세조선의 제지기술자들은 초기 발명한 닥종이를 더욱 발전시켜 백지뿐 만아니라 청지, 황지를 비롯한 색지들도 많이 만들어냈는데 고려시기에 와서 종이의 질이 대단히 높아져 다른 나라 사람들로부터 찬탄을 자아냈다.
중세 조선사람들은 종이를 중국을 비롯한 다른 나라들에 널리 수출하였으며 제지기술을 주변나라들에 널리 전파시켰다. 실례로 610년 고구려의 유명한 화가 담징은 일본에 건너가서 채색하는 방법, 종이와 먹을 만드는 기술을 배워줌으로써 당시 일본의 문화발전에 큰 기여를 하였다.
이와 같이 중세 조선사람들은 다른 나라들에 비하여 남먼저 제지기술을 발명하고 적극 발전시켜 중세조선의 출판인쇄업발전에 매우 유리한 물질적조건을 마련하였으며 세계의 출판문화사발전에도 특출한 기여를 하였다.
다음으로 중세시기 조선에서는 세계에서 처음으로 금속활자가 발명되여 생산 및 활용됨으로써 출판인쇄기술의 비약적발전이 이룩되였다.
출판인쇄업의 발전에서 인쇄기술의 발명이 가지는 의의는 매우 중요하다.
일반적으로 도서를 대량적으로 찍어내자면 글자를 새긴 판이 있어야 했는데 세계적으로 볼 때 초기에는 목판인쇄가 위주로 되여있고 그 이후에 금속제조기술이 발전하면서 금속활자가 나오게 되였다.
중세조선에서는 일찌기 목판인쇄기술이 발전하여 고려시기에 6 000여권의 방대한 규모로 된 불교경전 《대장경》이 목판활자를 리용하여 인쇄되는것과 같은 성과도 이룩되였다.
슬기로운 조선사람들은 도서의 글자수와 동일한 분량을 목판에 새겨야 하는것으로 하여 많은 시간과 로력, 숱한 목재가 드는 목판인쇄의 부족점을 메꾸기 위해 마침내 12세기 전반기에 세계에서 처음으로 금속활자를 발명해내였다.
조선에서 금속활자를 사용하여 출판한 책으로 가장 오랜것으로는 《상정례문》(《상정고금례》라고도 함) (50권)이다. 《상정례문》은 1123~1146년에 쓴 책인데 1234~1241년간에 금속활자로 28부를 찍었다고 한다.
금속활자의 발명은 목판인쇄기술과 나무활자의 리용, 금속주조 및 가공기술의 발전을 토대로 하여 이룩된 조선민족의 자랑으로서 조선은 세계최초의 금속활자발명국으로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되였다.
도이췰란드의 구텐베르그가 금속활자를 발명하여 도서인쇄에 도입한것이 1450년대였고 네데를란드에서 코스타(본명 라우렌스 안스죤)가 금속활자를 발명하여 인쇄를 시작한것이 1433년이라는 사실에 비추어볼 때 조선이 유럽에 비해 수백년이나 앞서 금속활자를 발명하였다는것을 알수 있다.
조선이 금속활자발명국이라는것은 현존하는 가장 오랜 금속활자인쇄물을 통해서도 잘 알수 있는데 현재 세계적으로 금속활자로 찍은 책들가운데서 가장 오래된것으로 전해지고있는것은 1377년 고려에서 출판된 《직지심경》이라는 책이다. 1972년 유네스코의 주최밑에 진행된 《책의 력사》종합전람회에 이 책이 전시되였는데 현존하는 금속활자인쇄물가운데서 제일 오래된것으로 평가되였으며 이것이 각국에 통보되였다.
금속활자는 조선봉건왕조시기에 들어와 그 질과 량의 측면에서 더욱 발전하였는데 1436년에는 세계에서 제일 처음으로 청동활자의 결함을 극복한 연활자를 만들어내여 세계인쇄기술발전에서 새로운 길을 열어놓았다.
중세조선의 이러한 발전된 활자인쇄기술이 있었기에 500여년간의 조선봉건왕조의 력사를 서술한 1 763권에 달하는 방대한 도서인 조선봉건왕조실록도 아무런 지장없이 편찬될수 있었다.
이처럼 세계에서 처음으로 발명된 금속활자는 중세조선의 출판인쇄업의 발전에 직접적이며 결정적인 작용을 하였을뿐 아니라 세계의 출판인쇄업의 발전을 추동하였으며 조선민족은 슬기롭고 지혜로운 민족으로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되였다.
다음으로 중세시기 조선에서는 자기의 고유한 민족글자인 훈민정음이 창제됨으로써 국문에 기초한 출판인쇄업발전의 길이 열리게 되였다.
출판인쇄업에서 문자는 매우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그것은 사람의 의사와 사상의식이 바로 문자를 통하여 종이우에 기록되기때문이다.
고대국가였던 고조선시기에 벌써 신지글자라는 자기의 고유한 글자를 가지고있던 조선민족은 삼국시기(고구려, 백제, 신라가 존재한 시기)부터 사용하여온 리두문자의 불합리성을 극복하고 아름다운 조선사람의 말을 편리하게 표기할수 있고 누구나 쉽게 배우고 쓸수 있는 민족글자를 만들어내기 위하여 노력하였다.
조선민족의 이 숙망은 1444년 훈민정음의 창제로 이루어지게 되였다.
훈민정음(訓民正音-가르칠훈, 백성민, 바를정, 소리음)이라는 말은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라는 뜻으로서 조선민족의 고유한 민족글자를 의미한다. 창제당시 기본글자수는 28자였는데 자음은 17자, 모음은 11자였다.
문자발전단계에서 가장 발전된 글자의 류형에 속하는 소리글자이면서 자모글자인 훈민정음은 발음기관의 모양을 본따서 만들었기때문에 그 원리가 과학적이고 체계적이며 글자를 배우기 쉽고 쓰기 편리한것으로 하여 국제적으로 그 우수성이 인정되고있다.
훈민정음이 나옴으로써 15세기부터 국문활자주조가 시작되였고 조선민족은 자기의 민족글자로 씌여진 국문출판물을 가지게 되였으며 이것은 중세조선의 출판인쇄업발전에서 매우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 성과로 된다.
이상에서 본바와 같이 중세조선의 출판인쇄업을 세계적수준으로 발전시키는데 커다란 영향을 미친 주요한 요인들에는 여러 물질기술적수단들이 있다. 그러나 력사의 주인인 인민대중의 투쟁에 의하여 력사가 전진하고 사회발전이 이루어지는것만큼 중세조선에서의 출판인쇄업의 발전을 추동한 결정적요인은 바로 근로하는 인민대중의 창조적지혜와 노력으로 보아야 한다.
중세조선에서의 종이와 금속활자의 발명, 훈민정음의 창제, 조선봉건왕조실록의 편찬 등은 조선민족의 슬기와 지혜가 깃들어있는 민족의 자랑으로서 세계적으로 볼 때 중세 출판인쇄업발전의 당당한 한자리를 차지하는 특출한 성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