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인민의 영용한 투쟁은 전세계인민들의 찬양을 받고있으며 식민지민족해방운동의 본보기로, 기치로 되고있습니다.》 (
20세기 전반기는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크고작은 전쟁들이 끊임없이 일어난 전란의 시기였다. 수많은 약소국들이 《자치령》, 《보호령》의 치욕을 쓰고 제국주의자들의 발굽밑에서 신음하고있었다.
우리 나라의 현실도 그러하였다. 온 조국강토가 통채로 일제의 식민지로 전락되여 민족의 력사와 문화, 말과 글마저 빼앗긴 수난의 세월이였다.
당시 우리 나라를 비롯한 여러 나라들에서의 식민지민족해방운동은 청원과 시위, 봉기와 폭동, 등 여러가지 형태로 진행되여왔다. 하지만 그것은 총칼을 휘두르며 억압하는 제국주의자들에게 결정적인 타격을 줄수 없었으며 식민지예속국가 인민들에게 완전한 해방과 독립을 가져다줄수 없었다. 《만국평화회의》에서 국제사회의 여론을 불러일으켜 일제의 조선강점에 타격을 주려고 하다가 자기의 배를 갈라 죽음으로써 항거해나선 애국지사 리준의 활동과 조선침략의 괴수 이등박문을 처단한 안중근의 투쟁 등은 렬강들의 도움을 받아 독립을 이룩하기 위한 청원의 방법이나 침략의 우두머리 한둘을 처단하는 방법으로서는 민족해방의 위업을 성취할수 없다는것을 웅변으로 보여주었다.
한마디로 평화적, 비폭력적인 방법으로는 제국주의침략세력을 물리치고 민족해방을 이룩할수 없다는것이 참담한 실패와 좌절을 겪어온 민족해방투쟁사의 교훈이였다.
바로 이러한 때에
인민의 힘을 밑고 인민의 힘에 의거하여 조직적인 무장투쟁으로 제국주의자들의 반혁명적폭력을 짓부셔버려야 한다는 자주적인 무장투쟁로선은 그 어느 고전에서는 절대로 찾아볼수 없는 독창적인 사상이였다.
지난 시기 유격전은 거의 모든 전쟁에서 하나의 전투형식으로 적용되여왔다. 그렇지만 군사가들과 사람들은 오래동안 대부대전, 정규전을 절대시하면서 유격전을 차요시하는 견해와 관점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다.
이러한 환경속에서
유격전은 정규군대가 규정된 정규전법과 전술에 따라 진행하는 정규전과는 다른 무장투쟁형식으로서 인민무장력이 식민지 또는 반식민지나라나 적들의 강점지역에서 인민대중의 적극적인 지지성원속에 가볍고 다루기 편리한 무장을 가지고 자유자재로 기동하면서 령활무쌍하게 이르는 곳마다에서 적들을 끊임없이 타격소멸한다는데 그 중요한 특징이 있다.
남들이 다 유격전을 정규전의 보조적수단이나 부차적인 투쟁형태로 보고있을 때 그것을 식민지민족해방전쟁의 기본투쟁형식으로 규정하고 하나의 독자적인 군사전략으로 내세우신것은 군사전략상에서의 거대한 발견이였으며
식민지민족해방투쟁에서 유격전이 기본투쟁형식이라는것은 그것만이 유일한 군사전략으로 된다는것을 의미하는것은 아니다.
유격전을 기본으로 하면서 여기에 전민항쟁을 배합하여야 식민지민족해방투쟁의 숭고한 위업을 종국적으로 실현할수 있다.
유격전과 전민항쟁은 군사전략상 일련의 다른 특성을 가지고있다. 그러므로 식민지민족해방전쟁에서 유격전이 기본이라 하더라도 최후결전단계에서는 반드시 유격전이 전민항쟁과 배합될 때 승리를 가져올수 있는것이다. 만일 최후공격작전에서 유격전만을 절대화하고 여기에 전민항쟁을 배합하지 않는다면 침략자들을 조국땅에서 짧은 기간에 단숨에 완전히 몰아낼수 없고 결국 나라의 해방을 빠른 기간내에 실현할수 없다. 조국해방의 최후결전에서 이것을 옳게 배합하는것은 식민지민족해방투쟁의 승리를 위한 합법칙적요구로 된다.
이것은 유격전의 형식을 기본으로 하여 민족해방전쟁에 유리한 환경을 주동적으로 마련하며 그에 기초하여 혁명적대사변이 도래하는 시기에 유격전과 전민항쟁의 배합으로 적들을 완전히 격멸소탕하고 최후승리를 이룩할수 있게 하는 현실적인 군사전략이다.
실로
독창적인 사상과 군사전략으로 식민지민족해방투쟁의 참다운 본보기를 마련하시여 인류의 자주위업에 쌓아올리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