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선로료리는 우리 민족의 고유한 음식이며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유명한 료리입니다.》 (
신선로료리는 여러가지 음식감들을 독특한 방법으로 가공하여 만든 료리인데 그 맛이 독특하고 영양가가 높을뿐아니라 그릇까지 화려하여 사람들의 구미를 돋구며 조선음식의 진미를 한번에 맛볼수 있게 하는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유명한 민족료리이다.
일명 열구자 또는 탕구자라고도 하였다. 열구자(悅口子)라는 말은 열구자탕(悅口子湯)의 준말로서 탕구자(湯口子), 구자탕(口子湯)이라고도 하였다. 열구라는 말은 입맛을 돋군다는 뜻으로서 열구자탕이라는 말은 《입맛을 돋구는 탕 또는 음식》이라는 의미이다.
신선로라는 말은 원래 열구자탕을 끓이는 독특한 구조를 가진 그릇의 이름이였는데 오랜 세월 내려오면서 그릇이름이 그안에 끓인 음식의 이름으로 바뀌였다.
신선로는 고기, 물고기, 해삼, 새우, 남새, 산나물 등을 따로따로 가공하여 볶음, 완자 등을 만들어 신선로에 담고 끓여먹는 맛있고 영양가높은 료리로서 세상에 널리 알려진 특색있는 우리 나라의 민족음식의 하나이다. 신선로는 말그대로 산해진미를 한그릇에 모아놓았다고 할만치 맛에서도 으뜸이고 볼품도 아름다워 음식상을 화려하게 하므로 연회상, 큰상을 비롯하여 여러가지 상료리로 많이 쓰인다.
신선로료리가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된데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지고있다.
조선봉건왕조시기 수도인 한성에서 그리 멀지 않은 경치좋은 산속에 속세를 떠나서 한 선비가 살고있었다. 그는 비록 사람들과 떨어져 살고있었어도 인간생활과 세상리치를 환히 통달하고있는 박식한 사람이였다.
하여 그 주변에 살고있는 사람들은 자기들의 생활에서 제기되는 풀기 어려운 일들이 있을 때마다 그를 찾아가 조언을 받군 하였는데 신통히도 그가 하라는대로만 하면 모든 일들이 잘 풀려나갔다. 이것이 한입건너 두입건너 전해지다가 나중에는 임금의 귀에까지 들어가게 되였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임금은 어느해 초가을날 조선봉건왕조의 정랑벼슬을 하는 관리를 불러 산속에 산다는 선비를 불러 나라일을 의논해보려고 하니 그를 데려오라고 하였다.
임금의 령을 받은 관리는 아침일찍 길을 떠나서 한낮이 지날무렵에야 선비가 사는 곳을 찾아갔다.
그가 선비가 산다는 산속의 집에 당도하니 마침 그가 마루우에 앉아서 조용히 책을 보고있었다. 관리가 그의 모습을 살펴보니 깨끗하게 다림질을 한 흰 두루마기를 입었는데 영채도는 눈빛과 름름한 풍채는 보통사람과 같지 않고 꼭 신선같았다.
그의 앞에 다가간 관리는 무릎을 꿇고 절을 하면서 자기가 찾아온 사연을 조심히 말하였다.
그러자 선비는 길게 자란 수염을 내리쓸면서 아무말도 없이 관리를 지켜보는데 그 눈빛이 어찌도 엄엄한지 감히 쳐다볼수 없었다. 그래서 관리는 그의 말을 기다리며 머리를 숙인채로 한동안 엎디여있었다. 그래도 아무말도 없기에 머리를 드니 선비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관리는 벌떡 일어나서 집안을 기웃거리면서 찾아보았건만 선비는 그 어디에도 없고 다만 그가 앉아있던 자리의 옆에 화로가 하나 있었는데 그우에 놓인 남비같은 그릇에서는 무엇인가 끓으면서 구수한 냄새를 풍기고있었다.
호기심이 동한 관리가 그안을 유심히 들여다보니 산나물과 각종 버섯 그리고 꿩을 비롯한 산짐승고기덩어리 비롯한 여러가지 음식거리들이 함께 끓고있었다.
점심때도 지난 참이라 배가 고파난 관리는 침을 꿀꺽 삼키면서 나무가지를 하나 꺾어들고 끓고있는 음식을 집어먹었는데 그야말로 별맛이였다. 그래서 한점 두점 집어먹기 시작하다가 나중에는 모두 거덜이 나게 다 먹어치웠다. 그제서야 정신을 차린 관리는 황황히 자리에서 일어나서 선비가 오지 않나 살펴보았으나 그때까지도 선비는 나타나지 않아 돌아오고말았다.
집으로 돌아온 관리는 선비가 끓여먹던 료리와 남비같은 그릇이 생각이 나서 장인바치에게 자기가 본대로 그릇을 만들게 하고 거기에 갖가지나물과 버섯, 고기와 지어는 전복을 비롯한 해산물까지 함께 넣어 끓이게 하였는데 그 맛이란 정말 별맛이였다.
관리는 자기 동료들까지 청해다가 그 맛을 보게 하였는데 모두가 맛있게 먹으면서 이게 무슨 료리인가고 물었다. 한동안 생각하던 관리는 무릎을 철썩 치면서 《이것은 신선들만 먹는것인데 신선이 만든 화로에 끓여먹으니 료리이름은 신선로일세.》라고 하였다.
이리하여 세상에 신선로료리가 전해지게 되였고 그 맛이 하도 좋아 궁중에까지 알려져 궁중음식의 하나로까지 되였었다.
그러시면서 옥류관에서 만들어 내놓은 신선로료리를 표준으로 하여 료리를 잘 만들되 예로부터 여러 사람들이 친근하게 모여앉아 함께 식사하는것을 좋아하는 조선사람들의 풍습에 맞게 3~5명이 함께 먹을수 있게 만드는것이 좋다고 하시면서 앞으로 신선로료리를 적극 장려해야 한다고 가르쳐주시였다.
이렇게 지난날에는 봉건관리들만 먹던 신선로료리는 오늘 우리 인민 모두가 즐겨먹는 대표적인 조선민족료리의 하나로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