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 언론인들은 대작주의, 주관주의를 극복하고 기사와 편집물을 짧고 아담하며 통속적으로 친절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
주체55(1966)년 12월 4일 기자활동을 갓 시작한 어느 신문사의 한 기자는
기자가 조용히 방에 들어서자
(그러니 매일마다 우리 신문을?…)
놀랍기도 하면서도 기자는 무한한 행복감에 가슴이 부풀었다.
기자는 황송하여 몸둘바를 몰랐다. 사실 그 기사로 말하면 몇매 되지 않는 간단한 보도기사였으므로 사람들의 눈에 잘 띄우지도 않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한면짜리 대작을 척척 써내는 관록있는 기자들을 부러워하면서 자기도 언제면 그들처럼 큰 기사를 내보겠는가고 은근히 왼심을 써오던 그는 무심중
그러자
신문지면을 자그마하게 차지하는 손바닥만 한 보도기사라고 할지라도 시대적으로 절실히 요구하는 문제를 참신하게 제기하고 옳은 대답을 주면 대작이라는 가르치심이였다.
(결국 규모가 대작이 아니라 내용이 대작이 되여야 한다는 말씀이 아닌가.)
기자가 받은 충격은 컸다.
지금 정세가 더욱 긴장해지고 제국주의자들의 전쟁책동이 날을 따라 로골화되는것만큼 근로자들과 청소년들이 옳바른 전쟁관점을 가지도록 교양하여야 한다. 신문에서 전쟁시기에 있은 좋은 자료를 많이 소개하는것과 함께 전쟁시기 잘 싸운 영웅들의 모범을 따라배우게 하는 글도 많이 소개하는것이 중요하다. 소년빨찌산대장과 시내 소년단원들과의 상봉모임에 대한 기사도 자그마한 기사이지만 두가지 큰 목적을 달성하였다고 볼수 있다. 하나는 소년단원들로 하여금 소년빨찌산대장처럼 당과
손바닥만 한 그 보도기사도 대작으로 높이 평가해주신다는 생각이 들자 기자는 이게 꿈이 아닌가싶었다.
기쁨에 겨워 어쩔바를 몰라하는 그의 심정을 헤아리신
신문에 내는 모든 기사는 아무리 짧은것이라 하여도 반드시 노리는 목적이 명백하여야 한다. 신문지면을 채워야 하기때문에 내용없는 기사를 넣는 식으로 신문을 편집하여서는 안된다. …
자자구구 말씀을 새겨가는 기자의 가슴속에는 《글은 짧게, 내용은 대작으로!》라는 말마디가 높뛰는 심장의 박동과 함께 힘있게 메아리치고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