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연구

《친일파》로 몰리웠던 한 지식인에게 안겨주신 크나큰 믿음과 뜨거운 은정

 2023.9.5.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품은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을 한품에 안아 운명을 지켜주고 보살펴주는 한없이 넓고 은혜로운 품이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품속에서 해방후 곡절많은 운명의 길을 걸어온 조선의 수많은 지식인들은 인생의 새 삶을 꽃피웠으며 새 조국건설에 자기의 모든것을 다 바치였다.

위인의 은정속에 영원한 삶을 빛내인 지식인들속에는 어제날에 《친일파》로 몰리웠던 한 지식인에게 혁명의 군복을 입혀주시고 자기의 재능과 기술로 정규무력건설에 이바지하도록 이끌어주신 가슴뜨거운 이야기도 있다.

주체35(1946)년 10월 16일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한 의사를 만나주시였다.

그가 바로 일제때 경성의학전문학교를 졸업하고 평양에서 외과전문병원을 차려놓고있다가 해방후 《친일파》로 몰리였던 의사 리병훈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리병훈선생을 언제부터 한번 만나보려고 하였는데 오늘 이렇게 자리를 같이하게 되여 매우 반갑다고 하시면서 그와 가족들의 안부부터 알아보시고 선생과 가족들이 다 건강하다니 마음이 놓인다고 다정히 말씀하시였다.

꿈결에도 뵙고싶던 영명하신 김일성장군님앞에 선것이 꿈만 같아 그럴수록 자기의 경력이 너무도 어지러워 몸둘바를 몰라하면서 자신은 장군님을 뵈올 면목이 없는 사람이라고 하면서, 장군님께서 풍찬로숙하시며 일제와 싸우실 때 개인병원을 운영하면서 편안하게 살았고 해방후에도 별로 한 일이 없다고 죄의식감에 사로잡혀 말씀드리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의 말을 들으시고 해방전에 선생은 평양에서 개인병원을 경영하였지만 민족적량심을 저버리지 않았고 의사로서의 도리를 지켰다고 하시면서 그가 인간의 생명에 대해서는 아랑곳하지 않고 돈만 아는 그 각박한 세상에서도 탄광로동자들을 비롯하여 가난한 사람들을 정성껏 치료해주고 치료비와 약값도 적게 받은 사실에 대하여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해방후에도 고향으로 가지 않고 평양에 남아 자기의 병원을 나라에 무상으로 바치고 인민의 건강증진을 위해 일하고있는 사실 더우기 얼마전에는 심한 부상으로 다리를 절단하지 않으면 생명을 구원할수 없다고 하던 중앙경위대대의 소대장을 수술하고 성의껏 치료하여 원상회복시킨 사실 그리고 황해도(당시)에서 전염병이 발생하였을 때 의료집단을 책임지고 그곳에 내려가 치료예방사업을 잘한 사실들을 하나하나 꼽아주시고나서 이 모든 소행은 민족적량심과 애국심의 발현으로서 응당 찬양받아야 할 일이라고 말씀하시였다.

리병훈은 그만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일제를 때려부시고 새 나라를 세우시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자기의 경력을 그리도 자상히 알고계시기때문이였다. 그리고 《친일파》로 몰리웠던 자기를 애국자로 내세워주시는 그 은정에 감격을 금할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또 한가지 마음속고충이 있었으니 그것은 일본녀성인 자기 안해에 대한 문제였다.

자기가 《친일파》로 규정된 조항의 하나가 일제때 공부를 하고 개인병원을 차려놓은것과 함께 기본은 바로 일본인녀성과 산다는것이였다.

참을수 없는 사람들의 몰리해의 눈초리와 일부 편협한 일군들의 강박과 위협앞에 모대기던 끝에 마침내 모진 마음을 먹은 그는 위대한 수령님께 지금 저의 안해가 일본녀성이므로 여태 고민하다가 그를 귀국시키려고 결심하였다고 자기의 마음속고충을 위대한 수령님께 아뢰였다.

그의 얼굴을 측은하게 바라보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에 대하여서는 깊이 생각해보아야 한다고 하시면서 선생이 안해를 귀국시키려고 하는것은 일본거류민들에 대한 우리 인민정권의 시책을 잘 모르고 또 안해의 의향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고 결심한것이라고 생각한다고 타일러주시였다.

그러시고 일본거류민들에 대한 우리 당의 정책에 대하여 설명해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리는 이미 선생의 안해가 일본녀성이라는것을 알고있었다고, 그는 일본의 극빈한 가정에서 태여나 일찌기 아버지를 여의고 먹고 살아가기가 힘들어 조선에 건너온 불우한 녀성이라고, 그런데 이제 와서 그와 헤여지고 자녀들까지 어머니와 생리별하게 해서야 되겠는가고, 안해가 선생과 헤여질수 없고 자녀들과도 떨어질수 없기때문에 귀국하지 않겠다고 하면 본인의 요구대로 우리 나라에서 같이 사는것이 좋겠다고, 국적이 다르다는 한가지 리유로 행복한 가정을 파괴하는것은 인륜도덕으로 보아도 옳은 일이라고 말할수 없다고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나는 선생을 믿는 이상 선생의 안해도 믿는다고, 선생은 일본녀성과 사는것으로 하여 조금도 위축되여 생활하여서는 안된다고, 선생이 일본녀성과 산다고 하여 누가 시비를 걸거나 박해하려 한다면 우리가 책임지고 그렇게 하지 못하도록 하겠다고 확고한 어조로 선언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너무도 감격하여 흐느끼는 그의 어깨를 다정히 어루만져주시며 마음고생을 많이 하였겠다고, 앞으로는 그런 일이 없을것이라고 따뜻이 위로해주시면서 우리는 선생의 과거생활을 의심하거나 문제시하지 않으며 민족적량심과 애국심을 매우 귀중히 여긴다고, 오늘부터 선생은 나를 믿고 나는 선생을 믿고 같이 손잡고 일해나가자고, 우리는 일시적인 길동무가 아니라 영원한 동행자가 되여야 한다고, 선생은 언제나 우리 당과 인민정권만을 믿고 희망과 랑만에 넘쳐 굳세게 살아나가야 한다고 절절하게 말씀하시였다.

하늘보다 높고 바다보다 깊은 위대한 수령님의 믿음의 세계에 리병훈은 목메여 오열을 터치며 앞으로 새 민주조선건설에 전심전력하겠다고 말씀드리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못내 기뻐하시면서 선생은 높은 의술을 소유하고있는것만큼 새 조국건설에서 한몫 단단히 할수 있다고, 자신께서는 선생이 군의부문사업을 맡아하는것이 좋을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씀하시였다.

그러시고 우리는 정규무력을 건설하기 위한 준비사업으로서 보안간부훈련소를 조직하였으며 보안간부훈련대대부 직속병원을 내왔다고 하시면서 새로 내온 그 병원의 원장사업을 선생에게 맡기기로 하였다고 말씀하시였다.

이날 군복입은 그의 모습을 대견하게 바라보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원장동무의 입대를 축하하여 기념사진을 찍자고 하시면서 그를 옆에 세우시고 영광의 기념사진을 찍으시였다.

이렇게 되여 어제날 《친일파》로 몰리웠던 한 지식인이 혁명의 군복을 입은 위대한 수령님의 영원한 전사가 되였다.

이처럼 위대한 수령님의 품은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을 한품에 안아 운명을 지켜주고 보살펴주는 한없이 넓고 은혜로운 품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