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연구

평양으로 옮겨온 령구

 2023.3.21.

동지애로 시작되고 동지애로 개척되여온 성스러운 조선혁명의 갈피마 다에는 절세위인들의 숭고한 혁명적동지애의 세계를 전하여주는 이야기들이 수없이 많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 조선인민군 전선사령부 참모장이였던 박정덕동지에게 베풀어주신 사랑에 대한 이야기도 그 하많은 이야기들중의 하나이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수령님께서는 오랜 기간 혁명을 해오시면서 그가 누구든 일단 동지적관계를 맺으시면 그의 운명과 미래를 끝까지 책임지고 보호해주시였으며 수천수만의 혁명전사들을 한품에 안아 크나큰 믿음을 주시고 온갖 사랑을 다 베풀어주시였다.》

주체41(1952)년 10월 11일 아침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전선사령부 참모장인 박정덕동지가 최고사령부로 올라오던 로상에서 뜻하지 않은 치명상을 입고 사경에 처하였다는 보고를 받으시였다.

박정덕동지가 치명상을 입게 된 전후사연과 생명이 위급하다는 보고를 받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를 살려내기 위하여 온갖 치료대책을 다 취해주시였다.

한 군사지휘관의 생명을 두고 그렇듯 마음쓰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숭고한 뜻을 받들어 군의일군들은 환자를 소생시키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였지만 박정덕동지는 가방안의 문건을 최고사령관동지께 드려달라는 부탁을 남기고는 숨을 거두었다.

이 사실을 보고받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사랑하는 전사를 잃은것이 너무도 가슴이 아프시여 비통한 심정을 누르지 못하시였다.

30대의 한창나이인 박정덕동지는 전도양양한 군사지휘관이였다.

해방전 째지게 가난한 농가에서 태여난 그는 공부를 해보려고 14살부터 소년배달부로 신문을 들고 뛰여다녔지만 공부는 고사하고 그에게 차례진것은 인간이하의 천대와 멸시뿐이였다.

그처럼 비참한 생활을 겪으며 성장하는 과정에 계급적으로 각성된 박정덕동지는 이국살이를 하면서 일제를 반대하여 싸우다가 감옥생활도 하게 되였다. 그후 박정덕동지는 중국동북해방전쟁에 참가하여 싸우다 주체37(1948) 년 12월말 위대한 수령님의 부르심을 받고 조국으로 나왔다.

다음해 1월 중순 위대한 수령님을 만나뵙는 꿈같은 영광을 지니게 된 박정덕동지는 수령님께 자기의 과거사에 대하여 말씀드리였다.

박정덕동지의 과거사에 대한 이야기를 다 들어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어려서는 신문배달을 하고 철들어서는 감옥생활까지 하였다니 정말 고생이 많았겠다고 하시며 이제는 동무와 같은 사람이 나라의 주인이라고, 나는 동무가 앞으로 꼭 인민군대의 훌륭한 군사일군이 되기를 바란다고 크나큰 믿음을 안겨주시였다.

그후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박정덕동지의 남다른 군사적자질의 싹을 귀중히 여기시고 그에게 조선인민군 련대장의 직무를 맡겨주시였으며 제1중앙군관학교 강습소에도 불러주시여 그의 성장의 걸음걸음을 따뜻이 보살펴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품속에서 련대장으로부터 사단장과 군단장 그리고 전선사령부 참모장으로 성장한 박정덕동지는 조국해방전쟁에서 뛰여난 군사적자질을 남김없이 발휘하였다.

이런 유능한 군사지휘관을 잃은것이 너무도 가슴아프시여 한동안 말씀을 잇지 못하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정말 아까운 동무를 잃었다고, 아직 나이는 젊지만 그 동무는 재능있는 능숙한 군사지휘관이였다고, 박정덕동무와 같이 재능있는 일군을 잃은것은 우리 당과 인민군대의 큰 손실이라고 하시였다.

이날 밤 전선사령부로부터 박정덕동지의 장례식을 현지에서 하겠다는 보고를 받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내가 그 동무를 떠나보내면서 얼굴도 다시 보지 못하고 어떻게 그곳에서 하겠는가고 하시며 그의 령구를 평양에 옮겨다가 최고사령부에서 장례식을 잘해줄데 대하여 말씀하시였다.

이렇게 되여 고인의 령구는 이튿날 머나먼 전선동부로부터 평양으로 옮겨져 최고사령부 회의실에 안치되게 되였다.

일군들과 함께 고인의 령구를 찾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의 가슴에 몸소 자유독립훈장 제1급을 달아주시였다. 그러시고는 그 훈장을 몇번이고 쓸어만지시며 김책동무가 사망했을 때 가슴이 아팠는데 오늘 또한 가슴이 아프다고, 재능이 있고 품성이 좋고 열정이 있던 사람이 그렇게 빨리 갈줄이야 어찌 알았겠는가고 하시며 비통한 심정을 금치 못해하시였다.

이날 고인의 령구를 평양시교외의 어느한 야산에 안치하려고 한다는 보고를 받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렇게 하는것도 좋지만 그의 령구를 좀더 가까운 곳에 두고싶다고 하시면서 우리들이 언제나 볼수 있는 최고사령부 맞은편 산등성이에 안장하도록 하자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진정 그것은 위대한 태양의 품에 안긴 조선의 혁명가들만이 받아안을수 있는 가장 값높은 삶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전쟁의 불비속에서 박정덕동지의 령구를 평양에 옮겨다 장례식을 하도록 하신 감동깊은 이야기는 오늘도 새 세대들의 심장마다에 성스러운 조선혁명의 갈피에 금문자로 아로새겨진 숭고한 동지애의 력사가 과연 어떤것인가를 깊이 새겨주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