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연구

점심시간도 바쳐가시며

 2024.9.30.

한평생 인민을 위해 걸으신 위대한 수령님의 불멸의 자욱마다에는 수령님과 시간에 대한 가슴뜨거운 이야기들이 수없이 아로새겨져있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일찍부터 이민위천을 좌우명으로 삼으시고 한평생 인민들속에 계시면서 인민들과 생사고락을 같이하시였으며 인민을 위하여 모든것을 다 바치시였다.》

주체61(1972)년 3월에 있은 일이다.

그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강원도를 현지지도하시다가 문득 인민문화궁전 설계를 맡은 한 설계일군을 그곳으로 부르시였다.

설계일군은 어버이수령님을 만나뵙게 된 기쁨도 컸지만 설계를 완성하지 못한 자책으로 하여 송구스러운 마음을 금할수 없었다.

궁전의 지붕을 조선식으로 처리하게 되였었는데 아직 묘안을 찾지 못하고있었던것이다.

설계일군이 위대한 수령님께서 계시는 숙소에 도착한것은 점심시간이였다.

때마침 현지지도에서 돌아오시다가 설계일군이 도착하였다는 보고를 받으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휴식도 없이 그 일군부터 만나주시였다.

어느한 집의 지붕을 좀 보라고 해서 불렀다고 하시며 어버이수령님께서는 그를 데리고 밖으로 나가시였다.

그러시고는 그 집지붕을 가리키시며 저렇게 해놓으니 얼마나 보기 좋은가고 말씀하시였다.

그것은 조선식기와지붕이였는데 참말로 보기 좋았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인민문화궁전지붕을 밋밋하게 처리해서는 안되겠다고 하시면서 궁전지붕도 저런 식으로 형태를 좀 다양하게 해서 멋있게 설계해야 하겠다고 당부하시였다.

설계일군은 막혔던 눈앞이 확 트이는것 같았다.

그는 재빨리 지붕형태를 속사하였다.

옆에서 지켜보시던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바로 그런 방향에서 하면 되겠다고 하시면서 그의 등을 다정히 두드려주시였다.

그러시고는 문살도 다 조선식으로 하라고 이르시면서 조선식지붕과 함께 조선식문살도 있어야 같이 조화를 이룬다고 깨우쳐주시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이것때문에 동무를 여기에 불렀다고, 어디 한번 잘 설계해보라고 당부하시며 시계를 보시더니 오후에 회의를 조직한것이 있어서 가봐야겠으니 동무는 식사를 하고 푹 쉰 다음에 돌아가라고 이르시였다.

수령님, 식사도 못하시고…》 설계일군은 말끝을 맺지 못하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일없다고, 자신의 걱정은 말고 어서 들어가 식사를 하라고 하시고는 그길로 또다시 차에 오르시였다.

우리 인민에게 훌륭한 문화궁전을 안겨주시려고 때식마저 건느시며 점심시간까지 고스란히 바치시는 어버이수령님을 바래드리며 설계일군은 뜨거운것을 삼키였다.

이렇듯 우리 수령님은 일요일과 명절일뿐 아니라 식사시간과 밤시간까지도 모두 인민을 위해 깡그리 바치신 진정한 인민의 수령이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