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인민은 반만년민족사에서 처음으로 맞이하고 높이 모신 불세출의 위인에 대한 다함없는 경모의 정과 순결무구한 충성의 마음을 담아 지성어린 선물들을 마련하여
만경대의 추녀낮은 초가집에서 조선의 태양으로 솟아오르신
이 진귀한 선물들은 하늘이 낸 전설적위인, 20세기의 대성인에 대한 민족의 열화같은 흠모와 지성의
《온 민족과 전세계가 우러러받드는
우리 인민들이
칠골인민들이 놋합을 정성들여 만들어
주체1(1912)년 4월 15일.
이날 새벽 만경대의 하늘가에 때아닌 때에 번개가 치고 우뢰소리가 진감하는 가운데 때때로 소나기가 쏟아졌다.
그러더니 하늘이 씻은듯이 개이고 붉은 태양이 광휘로운 빛을 뿌렸다.
얼마 안있어
김보현할아버님께서 꿈에 금방석에 앉은 옥동자를 보신 뒤
우리
해님같이 환한 모습에 첫울음소리는 또 얼마나 우렁찼는지 손자며느님이 생남했다는 소식을 듣고 한달음에 달려온 만경대증조할머님께서는
그들이 이토록 마음을 쓴데는 가슴뜨거운 이야기가 있었다.
인정이 깊으신 강반석녀사께서는 어려서부터 가난과 고역에 시달리는 마을사람들을 많이 도와주시였다.
강반석녀사께서 10살나시던 해 봄이였는데 이웃에서 사는 강병포의 집에서는 바깥주인이 자주 앓는데다가 안주인이 또 쌍둥이같은 년년생을 거듭 낳아서 바쁜 농사철에도 밭에 나갈 사람이 없었다.
이웃집의 이런 딱한 사정을 헤아리신 강반석녀사께서는 그해 온 여름 가을 그집의 어린애를 보아주시면서 집주인의 병구완도 해주시고 살림살이도 맡아하시였다.
아이들을 보는 품을 덜게 된 그 집에서는 그해 농사를 잘 지었다. 그리하여 강병포내외는 녀사의 고마운 은정과 수고를 무엇으로 다 갚겠는가 하면서 좁쌀 몇말을 보내여왔다.
이웃집의 형편을 잘 아는 녀사께서는 굳이 사양하시였다.
강반석녀사께서는 이처럼 어린시절부터 착하신 성품으로 가난과 고역에 시달리는 마을사람들의 가슴속에 따뜻한 사랑의 정과 기쁨을 안겨주시였다.
녀사의 고마움을 늘 잊지 못하고있던 강병포내외는
하지만 무엇을 드려야 할지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서 마을사람들과 무릎을 맞대고 밤새 의논을 하였다.
글깨나 아는 로인들은 녀사의 아드님께서는 학문으로 이름떨칠 위인이기때문에 책과 연필 등 좋은 학용품을 마련해드리자고 하였으며 젊은 축들은 녀사의 아드님은 필경 백만군사를 거느릴
알알이 고르고고른 오곡을 보내여주자는 의견, 명주로 색동옷을 지어드리자는 의견, 뜻깊은 글자와 그림을 그린 병풍을 만들어드리자는 의견 등 별의별 의견들이 다 쏟아져나왔다.
그가운데는 나라의 장래를 위해서 뭐니뭐니해도 귀중한 몸건강부터 축원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모두들 환성을 터치였다. 결국 놋합으로 락착되였다.
덧붙는 의견이 하나 있었을뿐이였다. 놋합을 사와서는 안된다는것이였다.
그들은 고심어린 노력을 기울여 놋색갈을 피하고 놋합이 아침에 방금 솟아오를 때의 태양의 색갈을 띠게 하였다.
해님을 상징한 뚜껑 한가운데는 《생일 축》이라는 글을 새기였으며 뚜껑의 량옆에는 참대와 소나무를 새겨넣고 두송이의 국화꽃과 춤추는 나비를 형상하였다.
《생일 축》이라는 글에는 위인의 탄생에 드리는 열렬한 축하의 마음을 담았으며 굳센 의지와 장수를 상징하는 소나무와 참대에는 그이의 건강과 만년장수를 바라는 절절한 심정을 담았다. 그리고 화목과 행복을 의미하는 활짝 핀 꽃송이들, 춤추는 나비들에는 위인을 모시여 나라가 흥하고 만백성이 복락을 누렸으면 하는 인민들의 간절한 념원을 담았다.
이렇듯 지극한 정성과 깊은 뜻이 어린 놋합이
세상에 이름을 남긴 위인들은 적지 않으나 우리
오늘도 우리 인민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