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세기 50년대부터 오늘까지 우리에게서 된매를 맞고 녹아나기만 한것이 미제의 수치스러운 전통이라면 비대한 힘을 믿고 설쳐대는 미국을 걸음마다 통쾌하게 족쳐대기만 한것은 영웅조선의 자랑스러운 전통입니다.》
조국해방전쟁은 정규무력으로 발전된지 2년밖에 안되는 청소한 조선인민군을 일방으로 하고 백수십년의 침략력사를 통하여 《불패》의 신화를 가진 미제침략군과 15개추종국가군대 그리고 괴뢰군과 일본군국주의를 타방으로 한 치렬한 대결전이였다.
미국이라는 나라를 세운 때로부터 20세기초까지 130년사이에 무려 114차례의 침략전쟁과 8 900여차의 군사적간섭으로 령토를 10배이상이나 늘구었으며 제2차 세계대전후에는 제국주의의 우두머리로 등장하여 세계반동의 아성, 침략과 전쟁의 원흉으로 된 미국은 령토상으로 보면 우리 나라의 78배에 달하는 초대국이였다. 미제는 기어이 조선을 타고앉으려고 유엔에서 거수기들을 발동하여 비법적이고 날강도적인 방법으로 유엔군을 조작하고 수백만의 방대한 침략무력을 조선전쟁에 들이밀었다.
미제침략자들은 수적, 기술적우세를 미친듯이 떠벌이면서 조선전선의 좁은 지역에 현대적기술장비로 무장한 자기 나라 륙군의 1/3과 공군의 1/5, 태평양함대의 대부분 그리고 15개의 추종국가군대들과 괴뢰군 및 일본군국주의자들을 포함하여 무려 200여만명의 병력을 동원하였다.
이것은 밀도상으로 볼 때 전쟁력사상 전례없는 대병력이였다.
뿐만아니라 미제는 《공중요새》라고 불리우던 《B-29》를 비롯한 각종 최신형비행기들과 항공모함, 중순양함, 상륙함 등 전투함선들, 중땅크, 대구경포 등 현대적인 살륙무기들을 최대한 동원하였다.
미제가 조선전쟁기간에 들이민 군사비는 태평양전쟁에서 소모한 군사비의 11배에 달하는 200억US$이상이였으며 군수물자는 7 300만t이상에 달하였다.
때문에 조선전쟁시기 특파기자로 활동한바 있는 로씨야의 한 인사는 《쏘도전쟁이 대군과 대군사이의 전쟁, 련합국과 동맹국사이의 전쟁이였다면 조선전쟁은 〈세계제패〉를 꿈꾸는 대군과 엊그제 태여난 군대와의 전쟁, 련합국세력과 청소한 일개국사이의 보통상식을 벗어난 대결》이였다고 썼다.
우리 공화국의 승리로 끝난 조국해방전쟁에서 미제가 입은 손실은 태평양전쟁에서 입은 손실의 거의 2.3배나 되는것이며 지난 100여년간의 피묻은 해외침략력사에서 처음으로 되는 수치스러운 참패였다.
조국해방전쟁은 무엇보다도 민족의
조국해방전쟁은 조선전쟁에 참전한 제국주의진영의 한다하는 국가수뇌들과 군수뇌들과의 강도높은 두뇌전쟁, 지략전쟁이였다.
미국과 영국에서만도 정치와 군사예술에서 당대 자본주의세계를 대표한다는 트루맨과 아이젠하워, 이든, 쳐칠과 같은 국가수뇌들과 애치슨과 덜레스, 죤슨과 브랫들리, 맥아더와 릿지웨이, 클라크, 워커와 밴플리트와 같은 《명물》들과 《장군》들이 떨쳐나섰다.
일생을 침략과 략탈을 위한 싸움터에서 보냈다고 하는 맥아더는 제1차 세계대전에 참모장교로 참가한후 미륙군참모총장, 필리핀정부의 최고군사고문직을 거쳐 1941년 7월에는 미극동군사령관, 1942년 3월에는 련합국군 서남태평양방면군 사령관으로 맹활약을 하여 1944년에 원수칭호를 받은 자이다.
릿지웨이 역시 제2차세계대전시기 공정사단장으로서 북아프리카, 씨칠리아섬, 이딸리아본토, 노르망디상륙작전에 참가하여 명성을 떨치고 1944년에 제8공정군단 사령관, 1946년에 유엔군사참모위원회 미국대표로, 1949-1950년까지 륙군참모차장으로 있었다.
미제가 조선전쟁에서 적용한 모든 전략과 작전, 전술들은 다 이처럼 서방세계에서 수많은 침략전쟁을 통하여 《명성》을 떨친 수십명의 《책략가》들과 악명높은 호전《장군》들이 달라붙어 짜낸것들이였다.
하지만
탁월한 군사전략가이신
조선전쟁시기 마카오주둔 뽀르뚜갈군 참모장으로 있던 뽀르뚜갈 전 대통령 고메스는 자기가 느꼈던 소감을 이렇게 피력하였다.
《당시 미국이 만든 작전계획은 미국편에 선 서방나라들의 참모장들,군사전문가들인 수십명의 장군들이 여러차례 모여서 토의한끝에 만든것이다. 그런데
조국해방전쟁은 또한 우리 군대와 인민에 대한 뜨거운 사랑을 지니신
전쟁사에는 싸움에서의 승리를 위하여 인민의 리익을 희생시킨 사실은 있어도 전시에 겨레를 위하여 군대를 동원하여 통나무를 베여 강물에 땔감으로 떠내려보낸 사실, 한푼의 돈도 전쟁승리에 돌려야 할 때에 인민들의 건강을 위해 국가적인 전반적인 무상치료제를 실시한 사실을 알지 못한다. 또한 화선휴양소를 개설운영하도록 하신 이야기며 적의 포위에 든 전사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전전선에 걸쳐 긴급대책을 취하신 이야기들은 인민의 령장, 민족의
이것은 오직 자기 군대와 인민에 대한 열렬한 사랑을 지닌 위대한 수령만이 창조할수 있은 사랑의 전설이였으며 그것은 그대로 미제와의 대결에서의 승리라는 기적에로 이어졌다.
전화의 나날 후방인민들은
예로부터 전쟁은 총포의 대결이라고 하여왔다. 하지만 우리 인민은 현대적인 무장장비가 있어 침략자들을 쳐물리치고 승리한것이 아니였다. 조국해방전쟁에서의 승리는 명실공히 《무기만능론》에 의거하는 제국주의자들의 반동적이며 비인간적인 군사사상과 침략책동에 대한 우리 군대와 인민의 불굴의 정신력, 위대한 조국수호정신의 빛나는 승리였다.
사상과 정신력에서도 따를수 없고 전략전술과 도덕적측면에서도 견줄수 없는 우리 군대와 인민의 위력앞에 적들은 무서운 공포에 질렸으며 전쟁이 끝나기도 전에 벌써 자기들의 패배를 인정하지 않을수 없었다.
탁월한 군사전략가이시며 강철의 령장이신
세계전쟁사에 패전을 모르고 《유일초대국》으로 자처하던 미제는 력사상 처음으로 수치스러운 패전의 기록을 새기였다.
조국해방전쟁에서의 패배를 인정하여 항복서에 수표한 당시 유엔군사령관이였던 클라크는 기자들에게 수표한 만년필을 보이며 이 만년필로 정전협정에 내가 수표하게 된것을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하면서 《그러나 낸들 어떻게 하겠는가,
이것은 조미대결에서 조선인민의 자랑스러운 승리의 전통의 시초로 되였으며 동시에 미제의 수치스러운 패배의 전통의 시초로 되였다.
정전협정에 조인한 미제는 전후에도 우리 공화국에 대한 도발책동을 멈추지 않았다. 그러나 그때마다 미제는 우리 군대와 인민앞에서 수치스러운 참패를 면치 못하였다.
1960년대 미제는 무장간첩선 《푸에블로》호사건을 구실로 그 무슨 《보복》과 《최후통첩》에 대하여 요란스럽게 떠들어댔으나 불법침입을 인정하는 사죄문을 쓰고 우리 공화국경외로 추방되지 않으면 안되였으며 우리 령공에 침입하였던 대형간첩비행기 《EC-121》, 군용비행기 《OH-28G》도 격추되여 련속 패배의 쓴맛을 보지 않으면 안되였다.
미제는 1970년대 중엽부터 범죄적인 《팀 스피리트》합동군사연습을 벌려놓고 해마다 계단식으로 확대하면서 1980년대말-1990년대초에 와서는 병력수에 있어서나 무장장비에 있어서 옹근 하나의 현대전을 치르고도 남을 막대한 력량을 들이밀며 전쟁정책을 추구하였다. 그러나 그때마다
1990년대초 미제는 《핵개발의혹》이라는 구실밑에 우리 공화국에 대한 《특별사찰》을 강요하며 파렴치하게도 기간까지 제시해놓고 이것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군사적공격과 선제타격도 배제하지 않겠다고 떠들면서 침략적인 전쟁계획까지 공공연히 내돌렸다.
그러나 1993년에 선포된 준전시상태, 뒤이어 발표된 정부성명, 핵무기전파방지조약에서 탈퇴라는 단호한 자위적조치 등 련속 가해진 청천벽력같은 타격에 세계의 일극화를 운운하면서 사회주의를 압살해보려던 미제의 어리석은 기도는 물먹은 담벽처럼 되여 조미기본합의문의 채택과 미국대통령 클린톤이
하기에 준전시상태의 해제를 두고 어느 한 나라의 국가수반은 자기 나라를 방문하고있던 우리 나라 대표단 단장에게 《미제의 면상을 보기 좋게 후려 갈겼다. 털어놓고 말하여 오늘날 〈초대국〉인 미제의 면상을 갈긴 장군이 있는가? 면상을 갈기기는 고사하고 주먹조차 내흔들지 못하고있다. 문무를 겸비하신
유일초대국으로 자처하는 미제국주의우두머리로부터 담보서한까지 받아낸것은 인류사에 일찌기 있어본적이 없는 커다란 사변이였다.
1990년대말 미제는 또다시 우리의 평화적인 핵시설을 문제시하는 한편 핵선제공격계획인 《작전계획 5027》을 내외에 공포하면서 압력의 도수를 높였다. 미제의 가증되는 반공화국고립압살책동에 핵억제력을 마련하는데로 나가지 않을수 없다는 보다 강경한 립장과 의지를 정정당당하게 선포한 우리 군대와 인민의 초강경대응자세에 아연실색한 미제는 정부회의의 소집, 대조선정책조정관의 임명과 같은 비상책을 세우는 한편 국무성과 군부인물들을 기자회견마당에 내세워 조선이 지하핵시설에 대한 사찰을 계속 거부한다 해도 조미합의가 깨여지지는 않을것이라느니, 조선반도에서 군사적위기는 일어나지 않을것이라느니 하고 우리를 눅잦히려고 모지름을 썼으며 저들이 내돌린 대조선선제공격설과 붕괴를 기정사실화했던 그 무슨 《위기설》을 스스로 부정해버렸다.
결국 1998년 8월 미제가 우리의 인공지구위성발사를 탄도미싸일발사라고 우겨대며 이미 짜놓고 본격적인 실행단계에 들어갔던 제2의 조선침략전쟁계획인 《작전계획 5027》도 물거품으로 되여버리고말았다.
새 세기에 들어와서도 미제는 《미싸일위협설》을 계속 떠드는 한편 우리 나라를 《악의 축》, 《폭정의 전초기지》로 걸고들면서 대조선강경청잭에 매달리였으나 미제의 책동에 우리 공화국은 2003년 핵무기전파방지조약에서의 완전탈퇴, 2005년 핵무기보유에 관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외무성성명 발표, 2006년 10월과 2009년 5월 두차례의 지하핵시험의 성과적진행으로 강력한 타격을 안기였다.
첫 수소탄시험의 완전성공과 새형의 대륙간탄도로케트 대출력발동기지상분출시험에서의 완전성공 등 다계단으로 이룩된 성과들은 동방의 핵대국, 군사최강국으로서의 우리 공화국의 위력을 세계에 또다시 힘있게 과시하였다.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어 조선반도에서 전쟁위험을 제거하고 긴장을 완화하며 평화적환경을 마련할데 대한 우리의 요구를 한사코 외면하고 대결만 추구하여 온 미국의 대조선정책은 우리 공화국이 자위적핵무력을 천백배로 강화하여 핵강국의 전렬에 당당히 들어설수 있게 하였으며 힘으로 우리를 압살하려던 미국에 불안과 공포만을 더해주었다.
미륙군참모총장은 얼마전에 발표한 미군의 전투력에 대한 보고서에서 《조선과의 전쟁에서 미국은 승리할수 없다.》고 실토하였다.
이처럼 조국해방전쟁에서 시작된 조미대결에서 우리 인민은 자랑스러운 승리의 력사를 년대에 년대를 이어 아로새겨왔으며 미제는 걸음걸음 수치스러운 패배의 력사를 기록하여왔다.
우리 군대와 인민은 지난날과 마찬가지로 앞으로도 영원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