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연구

고구려살림집건축이 일본에 준 영향

 2019.1.7.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당시 우리 나라의 장공인들, 건축가들, 화가들, 선비들은 일본에 건너가서 글과 기술을 보급하고 문화를 발전시키는데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김일성전집》 제1권 555페지)

우리 선조들은 기원전부터 일본땅에 건너가 독립적인 세력으로서 자기들의 소국가를 세우고 살면서 당시 훨씬 앞선 조선의 문화를 일본의 여러 소국가들에 널리 전파하였으며 삼국시기에도 일본의 살림집건축발전에 큰 영향을 주었다.

특히 고구려의 발전된 살림집건축술은 풀짚이영에 판자를 기본으로 하여 벽체를 형성하고있던 일본땅에 기와지붕을 한 목조기둥보식건물이 세워지게 하였으며 일본의 건축물을 개선시키는데 크게 이바지하였다.

고구려의 살림집건축이 일본에 준 영향은 우선 당시 일본땅에 세워진 건축물의 기초형식과 구들시설에서 나타난다.

《후지와라궁》유적의 서구남쪽에서는 일정한 넓이와 깊이로 구뎅이를 파고 그안에 강돌을 다져넣으면서 만든 주추자리돌과 그우에 놓은 주추돌이 적지 않게 드러났다.

여기에서 궁전의 한 건물인 조집전 남문터에서 드러난 기초시설을 살펴보면 주추자리돌 구뎅이의 깊이는 0.4m정도이고 직경은 2m이며 그 안에는 20~30cm크기의 강돌들이 다져져있었다. 이러한 기초시설은 이 궁전유적의 여러 곳에서 알려졌다.

이와 함께 강돌로 만들어진 물도랑과 물받이시설이 드러났는데 물도랑의 바닥에는 강돌을 깔고 도랑벽은 강돌로 쌓아졌다.

강돌로 만들어진 물도랑과 물받이시설은 고구려의 건축유적들에서 찾아볼수 있는 전형적인것으로서 여기서 드러난 강돌로 만들어진 주추자리돌형식의 기초시설과 물도랑, 물받이시설에 대하여서는 일본학계에서도 고구려의 특징적인 기초형식이며 고구려사람들이 만들어준것이라고 인정하고있다.

시가현 오오쯔시의 아노우유적에서는 주추돌과 온돌시설이 있는 집자리가 드러났는데 일본학계에서는 온돌을 놓은 집자리를 고구려의것이라고 하고있다.

예로부터 일본의 살림집난방은 방가운데서 숯을 피우는 정방형의 이로리였다.

이로리는 일본살림집의 구조적특성에 맞게 흙바닥가까이에 마루바닥을 사방 1m정도 또는 너비 1m, 길이 1.5~2m정도 되게 따내고 거기에 불을 피우는 화독형식의 난방시설이다.

이 난방시설은 당시 일본살림집의 대부분이 말뚝에 의하여 높아진 마루바닥과 높아지지 않은 흙바닥으로 되여있은 조건과 방바닥에 끓어앉아 생활하는 일본사람들의 방안생활풍습에 맞게 설치되고 리용된 시설이였다.

이것은 이로리의 사명이 기후가 온화하고 강우량이 많은 자연지리적조건에 맞게 살림집의 난방을 보장하면서도 습기를 방지하는데 많은 관심이 돌려진것과 관련된다.

이로리리용풍습을 보면 부분난방수단으로서 온도보장과 연기배출이 다 한곳으로 진행되면서 화독주위에 직접 둘러앉아 불을 쪼이게 되여있었다. 그러므로 신을 벗고 방안생활을 한다는 의미에서는 고구려와 같으나 난방시설의 구조와 리용풍습은 현저한 차이를 나타내고있다.

즉 이로리는 끓어앉아 생활하는데 편리하게 만들어지고 리용된 난방시설이였다.

이러한 난방시설만을 리용하던 일본에 조선민족의 앉아생활하는 생활풍습에 맞게 발생발전하여온 바닥난방시설이 나타난것은 고구려사람들의 문화적영향이 강하게 미치였다는것을 보여준다.

이렇게 일본의 궁전터들에서 보이는 기초형식과 온돌시설이 있는 집자리들은 고구려의 동대자집자리를 비롯한 건축물들에서 보이는것과 같은것으로서 기초시설을 견고히 하고 구들고래를 필수적인 난방시설로 하고있던 고구려의 영향과 떼여놓고 생각할수 없다.

고구려의 살림집건축이 일본에 준 영향은 다음으로 일본건축물의 지붕양식과 기와에서도 나타난다.

특히 고구려의 합각지붕양식은 일본의 건축물에 그대로 적용되였다.

그것은 일본의 옛 수도였던 나라현 중궁사에 보관되여있는 《천수국수장》에 반영된 건물지붕형식이 남포시 룡강군에 있는 고구려의 쌍기둥무덤 앞간 왼쪽 앞벽에 그려져있는 합각지붕양식과 일치하고있는데서 찾아볼수 있다.

《천수국수장》은 일본 야마또정권의 실권자였던 성덕태자와 그의 안해와 관계되는 유물이다.

622년에 성덕태자가 죽자 그의 안해는 자기 어머니인 추고왕에게 청탁하여 죽은 남편이 갔다는 극락세계 즉 《천수국》을 그림으로 그리게 하였다. 이 천수국그림은 고구려사람 가서일 등에 의하여 그려진것인데 그것을 밑그림으로 하여 수놓은것이 바로 《천수국수장》이다.

이것은 고구려의 살림집지붕양식이 일본에 준 영향을 보여준다.

고구려의 기와도 일본의 기와발전에 큰 영향을 주었다.

그것을 보면《아스까시대》건축물의 두가지 계통을 이루는 기와가운데서 첫째류형은 삼국시기 우리 나라 사람들이 왜나라에 건너가 만든것이며 두번째류형은 그 영향에 의하여 후에 만들어진것이였다.

일본학계에서도 《아스까시대》의 두 계통을 이루는 기와중 첫 류형은 백제계통의것으로 보고있다. 그런데 백제계통의 기와가운데서 초기의것이 고구려의 영향하에 만들어진것이라고 볼 때 고구려의 영향이 일본의 기와발전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고 본다.

이러한 의미에서 보면 초기 일본의 《아스까시대》기와의 첫 류형이 결국은 고구려기와의 영향에 의하여 이루어진것이라고 할수 있다.

일본에서 기와가 지붕재료로 되기 이전에는 모든 건물의 지붕에 짚이나 풀을 이었으며 나무판대기를 무어서 올리는것이 전부였다.

그러다가 《아스까시대》에 이르러 비로소 건물지붕에 기와를 올리였는데 그것은 전적으로 고구려를 비롯한 삼국시기 우리 나라에서 건너간 기술자들이 새로운 건축양식과 기와 만드는 기술을 보급한 결과에 의한것이였다.

이처럼 고구려의 살림집건축은 일본의 건축발전에 큰 영향을 주었으며 당시 일본문화의 조선적성격을 잘 나타내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