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연구

조선민족의 자랑 고구려무덤벽화

 2019.4.6.

반만년의 유구한 력사와 찬란한 문화를 자랑하는 우리 민족사에서 고구려는 동방의 천년강국, 선진문명국으로 그 위용을 크게 떨치였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옛날 고구려무덤벽화만 보아도 우리 선조들이 얼마나 뛰여난 미술적재능을 가지고있었는가 하는것을 잘 알수 있습니다. 벽화들은 그 묘사의 생동성과 다양한 생활세부, 변하지 않는 색갈로 하여 세계적으로 관심을 크게 집중시키고있습니다.》 (김정일전집》 제2권 480페지)

지난날의 우리 나라 력사에서 가장 강대하였던 고구려는 넓은 령토와 막강한 국력을 가진 강대국이였으며 중세초기 동방문화발전에 특출한 기여를 하고 우리 민족문화의 개화기를 열어놓은 발전된 나라였다.

고구려의 강대성과 높은 문화발전수준을 생동하게 보여주는것이 바로 당시의 무덤벽화이다. 고유하고 풍부한 내용과 높은 예술성, 선명하고 아름다운 색채, 힘있고 우아한 화풍으로 이름높은 고구려무덤벽화는 우리 나라 중세회화미술의 발전면모와 우수성을 보여주는 우리 민족의 귀중한 재보이다.

일반적으로 회화미술의 우수성은 크게 주제내용과 미술적인 형상수준의 두가지 측면에서 론할수 있다.

높은 형상수준도 물론 중요하지만 고구려무덤벽화와 같이 어느 한 력사적시대를 반영하고있는 그림인 경우에는 무엇보다도 내용이 중시되여야 한다. 그것은 력사적인 회화미술작품의 가치-우수성은 그 그림이 당대 사람들의 생활을 얼마나 폭넓고 진실하게 반영하고있는가에 따라 규정되기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고구려무덤벽화의 우수성은 우선 주제가 다양하고 내용이 풍부한것으로 하여 중세 동방회화미술의 대걸작으로 손꼽히고있는데서 잘 나타난다.

중세초기 동방의 여러 나라들에도 많은 무덤벽화들이 있었지만 그것들은 당대 사람들의 생활을 다양하고 풍부하게 나타내지 못하고있다.

그러나 고구려무덤벽화에는 정치, 경제, 군사, 문화, 신앙 등 모든 분야의 생활이 폭넓고 깊이있게 반영되여있다.

특히 안악3호무덤, 덕흥리벽화무덤, 약수리벽화무덤, 장천1호무덤을 비롯한 많은 벽화무덤들에는 다양한 주제의 벽화들이 종합적으로 그려져있어 당시 사람들의 생활모습을 여러 측면에서 진실하게 보여준다.

정치생활주제의 벽화에는 무덤주인공이 정사를 보는 장면과 많은 사람들을 거느리고 나아가는 대행렬장면을 형상한 그림들이 있다.

대표적으로 덕흥리무덤벽화의 정사도를 보면 무덤의 앞칸에는 주인공인 고구려의 유주자사 진이 자기 관할하의 13개군 태수들로부터 보고를 받고 지시를 주며 정사를 토의하는 모습이 그려져있다. 위엄있는 자세로 틀지게 앉아있는 무덤주인공의 눈길과 몸가짐에서는 대강국 고구려의 서북방 넓은 령역을 지배한 지방행정장관의 위풍과 담대한 기상이 한껏 풍기고있다. 무덤주인공의 앞에 경건한 자세로 서서 어떤 일을 보고하거나 축하하는 13군 태수들의 그림도 매우 인상적이다. 13명의 태수들가운데는 만족한 자세로 얼굴에 웃음을 담고 서있는 인물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고개를 약간 숙이고 송구스러워하는듯한 표정을 짓고있다. 13군 태수들의 앞에는 공손하게 무릎을 꿇고 앉아 두손을 맞잡고 유주자사 진에게 태수들이 찾아왔음을 아뢰는 관리의 모습도 보인다. 고구려의 유주진출과 이 지역을 통치하던 당시의 사실을 생동하게 반영하고있는것이다.

안악3호무덤 회랑의 벽에는 250여명이 등장하는 대행렬도가 그려져있다. 고취악대의 장중한 주악이 울리는 가운데 황제의 행차임을 알리는 《성상번》기발을 휘날리며 문무백관을 거느리고 개마무사들과 기마병들, 활과 창, 칼과 도끼를 든 무사들의 옹위를 받으며 위풍당당히 나아가는 왕의 웅건한 모습을 잘 나타내였다. 이 그림은 고구려왕의 황제적지위를 보여주는 력사적인 화폭이다.

고구려무덤벽화들은 경제생활을 반영한 그림, 군사물주제의 그림, 체육 및 예술활동을 반영한 그림, 신앙관계를 반영한 그림 등 주제령역이 매우 다양하다.

세칸무덤에는 사람과 말이 모두 쇠갑옷으로 무장한 개마무사들이 창을 휘두르면서 성을 공격하는 장면이 그려져있다. 통구12호무덤의 전투하는 그림에는 중무장한 고구려무사가 긴칼로 적병의 목을 내리쳐 베여버리는 모습이 형상되여있다. 고구려사람들의 씩씩하면서도 용맹스럽고 담찬 기상이 어려있는 그림이다. 이밖에도 군사물주제의 그림에는 개마무사, 문지기장수, 호위무관들과 의장대렬의 모습들이 있는데 여기에 그려진 무기, 무장만으로도 고구려의 군사적위력을 잘 알수 있다.

고구려사람들의 신앙관계를 보여주는 그림들에는 단군관계전설과 견우직녀전설을 반영한 그림, 신선과 비천그림, 불교의 칠보행사, 불공드리는 모습을 형상한 장면들이 있다.

집안다섯무덤의 5호무덤 천정에는 해를 머리우에 떠이고 인간세상으로 내려오는 한 선인의 모습이 그려져있고 씨름무덤의 벽화에는 큰나무아래 곰과 범이 나란히 서있는 모습이 있다. 장천1호무덤의 벽화를 보면 큰 나무아래 굴속에 곰 한마리가 웅그리고 앉아있고 굴밖에서 범 한마리가 서성거리고있다. 이 그림들은 우리 인민들속에서 오래전부터 전해져오던 단군에 대한 신화를 련상시킨다. 이것은 고구려사람들속에 민족의 원시조 단군을 숭상하는 단군숭배의식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이처럼 중세 우리 민족문화의 보물고라고 할수 있는 고구려무덤벽화는 주제의 다양성과 내용의 풍부성으로 하여 세계적으로 그 류례를 찾아볼수 없는 인류문화의 귀중한 재부이다.

고구려무덤벽화의 우수성은 다음으로 당대 사람들의 사상감정과 정서를 우수한 회화기법으로 높은 수준에서 생동하게 형상하고있는데서도 잘 나타난다.

억센 힘이 넘치면서도 섬세하고 우아한 고구려무덤벽화는 세련된 선, 선명한 색채, 째인 구도로 특징지어진다.

고구려화가들은 무덤벽화에 선과 색채, 밝고 어두움, 구도 등 회화미술의 기본형상수단들을 훌륭히 구현하였다. 그들은 선을 매우 중시하였으며 대상의 형태와 양상에 맞게 다양하고 기발하게 리용하였다. 당시 사람들은 단숨에 그어내린 굵고 힘있는 선과 가늘고 부드러운 선 등 여러가지 선으로 묘사대상의 특징과 성격, 운동감까지도 잘 살리였다.

춤무덤의 살림집그림과 쌍기둥무덤의 련꽃무늬장식그림, 세칸무덤의 힘장사그림만 보아도 대범하면서도 자유분방한 선, 섬세하면서도 예리한 선, 유연하면서도 탄력있는 선 등으로 대상의 형태를 방불하게 묘사하고있다. 청룡이나 백호의 부릅뜬 눈, 휘여든 잔등, 억센 발과 같이 힘을 넣어 강조할 부분들은 굵고 진한 선으로 단숨에 그려냈고 날개, 털, 수염과 같이 가볍게 휘날려야 할 부분들은 가늘고 연한 선으로 재치있게 처리함으로써 대상의 성격과 운동감을 잘 표현하였다. 특히 현무그림에서는 뱀이 거부기를 감으면서 몸을 비틀 때 비늘이 꼬이는것까지도 가는선으로 생동하게 형상하고있다.

고구려무덤벽화에서는 색이 또한 기본형상수단의 하나로 중요시되였다.

고구려무덤벽화에서는 검은색, 흰색, 붉은색, 푸른색, 노란색과 함께 밤색, 풀색, 회색 등 여러가지 색들이 효과적으로 쓰이였다.

같은 색에서도 진하고 연한 정도가 다른 여러가지 색들을 풍부하게 리용하였는데 붉은색만 보더라도 다섯가지이상에 달하였다. 그런가 하면 고구려화가들은 금분, 은분과 같은 현란한 색감을 써서 무덤벽면을 화려하게 장식하거나 짐승의 눈에 구슬을 박아 진실하고 생동한 감을 나타내기도 하였다.

안악2호무덤의 비천그림에서는 몸을 휘감은 얇은 날개옷의 가벼운 흐름까지도 연한 색으로 표현함으로써 부드러운 률동과 하르르한 맛을 강조해준다.

강서세무덤과 집안다섯무덤의 4호무덤, 5호무덤에 그려진 사신그림과 황룡그림들은 색감의 풍부성과 진실성, 선과 색의 일치, 화면이 물기를 받았을 때 나타날수 있는 동물들의 미끄럽고 윤기있는 피부의 질감까지 능숙하게 표현해냄으로써 고구려무덤벽화형상에서 절정을 이루고있다.

고구려화가들은 대상의 특성을 강조하기 위하여 색채에서 허구를 적용하는 높은 기교도 발휘하였다. 안악3호무덤벽화의 외양간과 마구간그림에는 소와 말이 각각 세마리씩 그려져있는데 검정소와 누렁소사이에 초록빛의 소가 있고 흰말과 검은말사이에는 분홍빛의 말이 끼여있다. 그림에서 보이는 초록빛 소와 분홍빛 말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것이다. 그러나 화가는 소와 말의 실지색을 그대로 그린다면 소와 말들이 어둑컴컴한 외양간과 마구간속에 잠겨버릴수 있다는것을 고려하여 색채의 허구를 리용한것이다. 그리하여 그림전반의 양상을 밝게 하면서도 조금도 어색하지 않게 처리하였다.

기발한 화면구성은 화가의 능력을 가늠할수 있게 하는 중요한 징표로 된다. 고구려화가들은 무덤벽화에서 화면의 전반적구도를 조화롭게 맞추면서도 대상의 특성에 어울리게 함축과 집중, 생략수법들을 능숙하게 리용하였다.

안악3호무덤의 회랑에 그려진 대행렬도에는 왕이 탄 수레를 중심으로 하는 행렬의 앞부분만이 그려져있다. 물론 화가는 높이 2m, 길이 10m이상의 긴 회랑벽에 고구려왕의 장엄한 행렬전모를 빼곡이 그려넣을수도 있었다. 그러나 화면에서 왕이 탄 수레는 벽면의 가운데가 아니라 무덤칸에 들어서면서 인차 한눈에 바라보이는 회랑의 어구에 그것도 웃부분에 그려져있다. 화가는 자연스러운 눈높이에서 행렬의 중심부에 있는 무덤주인공을 바라볼수 있도록 뒤부분을 대담하게 생략하고 아래부분에는 공간을 조성하였던것이다. 그리하여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넓은 들판을 지나는듯한 행렬의 앞부분을 감상하면서 뒤공간에 그와 같은 규모의 위엄있게 꾸려진 행렬이 계속 뒤따르고있을것이라는 느낌이 들게 하였다. 화가는 집약된 행렬의 한부분만을 그려 이와 관련된 다른 많은 부분을 련상케 하는 회화에서의 함축과 집중, 생략의 수법을 높은 수준에서 성공적으로 구현하였던것이다.

이처럼 고구려무덤벽화에서는 세련된 선, 선명한 색채, 째인 구도로 형상대상을 방불하게 표현하고있다.

고구려무덤벽화의 우수성은 다음으로 천수백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자기의 선명한 색체를 거의 그대로 유지하고있는데서도 잘 나타난다.

일반적으로 동양화에서는 좋은 종이에 그림을 그렸을 때 그 수명은 천년, 명주에 그린것은 500년이라고 한다. 고구려무덤벽화가 1 500여년이 지나도록 변색없이 보존되고있는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수 없다.

고구려사람들은 무덤의 구조와 무덤안의 습도, 겨울철과 여름철의 기온차이, 무덤칸을 덮은 흙의 두께, 외부와의 온도차이로 인한 이슬맺힘까지 다 고려하여 그속에서도 견딜수 있는 안료와 점착제, 접착기법을 창안하였다.

고구려무덤벽화는 무덤벽면에 회를 바르고 그것이 채 마르기전에 그린것과 완전히 마른 다음에 그린것, 평면으로 다듬은 돌우에 직접 그린것이 있다.

회가 굳기전에 그리는 방법은 오늘날의 후레스코법과 같은것이다. 회벽의 누기가 적절할 때 일정한 시간안에 빨리 그려야 하며 일단 그리면 고치기 어려운 점은 있으나 그림이 견고하고 회벽면이 마르면서 이루어지는 특유한 빛갈도 얻을수 있다. 이 기법은 그림이 마르면서 색채가 변하기때문에 화가는 여기에 대비하고있어야 한다. 즉 색채의 강도나 밝기 등 다양한 변화에 대비하여 많은 경험을 축적하고 그림을 그려야 한다. 특히 작업량을 정확히 타산하여 그림을 그릴수 있는 량만큼 석회미장작업을 하여야 한다.

안악2호무덤벽화를 보면 회벽이 마르기 전에 딱딱하고 예리한 물체로 선을 그어 구도를 잡고 대상을 그린 흔적이 뚜렷이 남아있다. 이러한 회벽에 벽화를 그릴 때에는 벽화를 빨리 그리고 실수없이 그려야 하였기때문에 사전에 도안을 준비하여 두었다가 회벽이 굳어져가는 일정한 기간내에 선과 채색으로 완성하였다.

회벽이 채 굳기 전에 벽화를 그렸다는것은 고구려화가들이 다른 기법에 비해 이 기법이 화면에 그린 색감이 벽에 스며들어 잘 벗겨지지 않고 색이 변하지 않는다는것, 다른 재료와 기법으로는 나타낼수 없는 투명도와 깊이, 선명도를 나타낼수 있다는것을 잘 알고있었다는것을 보여준다.

건조한 회벽이나 돌벽에는 안료를 동물성아교나 식물성기름, 옻이나 석회수같은 점착제와 섞어 그림을 그린것으로 보인다.

고구려사람들은 돌벽우에 직접 그림을 그리는 경우 대체로 화강암판돌로 된 벽면을 리용하였다. 화강암은 매끈거리는 대리석과는 달리 면을 수평으로 맞추었다 하더라도 표면이 토들토들하여 그림의 우아함과 립체감을 나타내는데 아주 효과적이였다.

색감에 못지 않게 바탕면에 주의를 돌려 그림을 보다 생동하게 묘사하려고 한 여기에 고구려화가들의 높은 기교와 창조적재능이 어리여있는것이다. 특히 습기가 찬 무덤안에서 벽화의 손상을 막으면서도 오히려 물기를 머금었을 때 나타낼수 있는 오묘한 립체감과 령롱한 빛갈까지 고려하여 그림을 그린것은 당시 고구려회화미술의 높은 발전수준을 그대로 과시하고있다.

천수백년이 지났지만 금방 붓을 뗀듯이 선명하게 안겨오는 고구무덤벽화는 주제내용이 매우 풍부하고 다양하며 묘사 또한 생동하고 진실한데다가 오늘까지도 그 모습을 훌륭하게 보존하고있는것으로 하여 세계적으로 관심을 크게 집중시키고있다. 그리하여 고구려벽화무덤은 주체93(2004)년 7월에 진행된 유네스코 제28차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세계유산으로 정식 등록되였다.

조선민족이 창조하고 발전시킨 고구려무덤벽화는 중세초기 동방회화미술의 최고정화, 세계회화사에서 손꼽히는 걸작으로서 전인류적가치를 가지는 세계적인 문화유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