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인민들의 복리를 증진시키는것을 국가활동의
오수덕은 자강도 중강군에 있는 해발 800여m의 높은 고원이다.
이곳에는 땅에서 솟아나오는 물이라고는 한방울도 없었다. 지대가 높기때문에 아무리 깊이 파도 물이 나오지 않았다.
이곳 사람들은 여름에는 비가 고인 물을 먹었고 겨울에는 눈을 녹여먹지 않으면 안되였다. 개구리가 점벙거리고 곤두벌레가 우글우글하는 어지러운 물을 먹고 병에 걸려 한집에서 련이어 두세사람씩 무리장례를 지내는 일도 드문했다.
주체53(1964)년 9월
물을 끌어다줄데 대한
압록강물을 이 높은 산꼭대기에 끌어올린다는것이 쉬운 일이 아니였다. 수직높이로 500m가 넘을뿐아니라 어떤 곳은 벼랑처럼 가파로와 그런 곳으로 압록강물을 끌어올리려면 대형전동기를 여러대 놓고도 7~8단을 양수해야 하였다. 게다가 가파롭고 또 암반이기때문에 양수장을 짓기도 어려운 곳이였다.
때문에 이곳에 양수시설을 놓으려면 막대한 자금과 자재, 로력이 들어야 했다. 그래서 지금까지 몇세대 안되는 사람들을 위하여 그런 막대한 자금과 자재, 로력을 들여 양수시설공사를 하겠는가고 하면서 누구도 이 압록강물을 끌어올리려고는 생각조차 못하고있었다.
이곳 인민들을 물고생과 무서운 질병으로부터 영원히 해방하시려는
건설자들은 강바닥에서 자갈과 모래를 운반할 뜨락또르를 벼랑으로 해서 아찔한 강바닥에 내려보내기 위하여 악전고투를 하던 끝에 끝내 뜨락또르를 권양기에 달아서 내려보내는데 성공하였고 바위를 까내고 가파로운 경사에 7개의 양수장과 려과못 2개, 배수못 2개를 건설해놓았다. 이 공사에 드는 수많은 자갈과 모래는 70리 되는 압록강바닥에서 날라왔다. 끌어올린 압록강물을 다시 주민지역에까지 보내기 위하여 길이 50리의 주철관도 묻었다.
당시 200세대도 못되는 주민들을 위하여 무려 100만원을 들여 공사를 했으니 이 양수장을 건설하는데만 하여도 매 세대에 5천여원의 자금을 들인셈이다.
압록강물이 7단양수를 거쳐 수직으로 500m높이에 있는 이 고원에 올라오는 날 이 놀랍고 경사스러운 사실을 구경하기 위하여 린근마을이 온통 떨쳐나섰다. 그렇게도 소원이던 압록강물이 수도에서 콸콸 쏟아지는 순간 오수덕사람들도 건설자들도 모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