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조국해방전쟁의 빛나는 승리는
《우리는
준엄한 전화의 나날
해방후
입대전 서로의 희망과 포부, 직업은 달랐으나 모두가 원쑤에 대한 불타는 증오를 안고 사랑하는 조국을 위하여, 전쟁의 승리를 위하여 청춘도 생명도 아낌없이 바쳐 용감하게 싸웠다. 평범한 인민군전사들이 불뿜는 적의 화점을 피끓는 가슴으로 막아 부대의 진격로를 열었고 끊어진 통신선을 혈맥으로 이어 전투지휘를 보장하였으며 한몸이 그대로 육탄이 되여 한치한치의 조국땅을 피로써 사수하였다.
시시각각 전사들의 영웅적위훈에 대하여 보고받으면서도 반공격에로 이행하는 전선정황속에서 모두가 공격속도를 높여 전과를 확대하는데 신경을 쓰고있던 그때 평범한 인민군전사들의 전투위훈까지 하나하나 헤아리시고 그들을 온 세상에 보란듯이 내세우시려 그토록 마음쓰신분이 다름아닌
하나밖에 없는 조국을 위하여 꽃다운 청춘도 아낌없이 바쳐 싸우는 인민군전사들을 더없이 아끼고 내세워주며 그들의 이름을 영생의 언덕에 길이 빛내여주시려고 전쟁개시후
당시 우리 나라에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창건과 함께 전쟁전에 이미 제정된 나라의 정연한 상훈제도가 있었다.
주체37(1948)년 10월 12일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정령으로 나라를 위해 공훈을 세운 일군들과 집단, 기관, 단체, 대상들을 국가적으로 표창하기 위한 국기훈장 제1급, 2급, 3급이 제정되여있었으며 주체38(1949)년 6월 13일에는 군공메달과 공로메달이 제정되여 정령으로 수여되고있었다.
하지만
예로부터 공정한 상훈제도를 세우는것은 국가의 존립과 기강을 세우기 위한 필수적인 법제로 전해져 어느 나라나 엄정한 상벌제도가 있었다. 하지만 영웅이란 말은 력사의 그 어느 시대에도 평범한 인민들과 어울려 본적이 없었다.
오로지 인민에 대한 사랑을 천품으로 지니신
주체39(1950)년 6월 30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영웅칭호를 제정할데 대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정령이 발표된 격동적인 소식은 삽시에 전선천리와 온 나라에 퍼져갔다.
조국수호전을 위한 공화국공민의 응당한 소행을 그토록 높이 평가하고 내세워주시는
이뿐만이 아니라
훈장도안이 완성되였을 때에는 훈장의 이름을 전사의 영예훈장이라고 하자고 하시면서 그 이름까지 달아주시고 훈장이 제작되였을 때에는 이 세상의 가장 진귀한 보물과도 같이 여기시며 두손으로 쓸어보시고 가슴에 대보시면서 못내 만족해하시였다.
전사의 영예훈장!
이름만 불러보아도 인민군전사의 영예와 긍지가 대번에 안겨오는 훈장이였다. 나라들마다에는 제나름으로 이름난 훈장들이 많다고 하지만 어느 시대, 어느 나라 전쟁력사를 돌이켜보아도 전사의 영예훈장과 같이 평범한 전사들의 위훈을 평가하여 따로 제정한 훈장은 없었다.
이렇게 되여 주체39(1950)년 7월 1일 전사의 영예훈장제정에 관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정령이 발표되였으며 주체39(1950)년 7월 7일에는 지휘관들에게 수여되는 자유독립훈장의 제정에 관한 정령이 발표되였다.
이어
공화국영웅칭호와 전사의 영예훈장 그리고 자유독립훈장과 근위부대칭호!
이렇게 되여 조국해방전쟁이 시작되자마자 전쟁에 참가한 인민군전사로부터 소대장, 중대장을 거쳐 련대장, 사단장에 이르기까지 전체 인민군장병들의 위훈을 등급별로 빠짐없이 평가할수 있는 정연한 상훈제도가 마련되게 되였다.
이것은 그대로 병사대중의 무궁무진한 힘을 활화산의 용암처럼 무섭게 폭발시켜 이 땅우에 력사에 전례없는 무훈과 위훈으로 수놓아진 영웅서사시적화폭을 장엄하게 펼쳐놓고 온 나라가 환희의 격동으로 들끓게 하였다. 그리하여 전쟁이 시작되여 불과 한달밖에 안되는 주체39(1950)년 7월말까지 17명의 공화국영웅이 태여났으며 수많은 전사의 영예훈장수훈자들과 근위부대들이 배출되였다.
이렇듯 평범한 전사들의 위훈을 뜨겁게 품어안고 찬란한 영웅의 금별로 빛내주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