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연구

위대한 수령님의 특이한 인간애의 토양

 2019.10.28.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는 한없이 뜨거우신분, 열의 인간이시였다.

인류는 위대한 김일성동지의 영광스러운 생애에서 비로소 거룩한 인간사랑의 서사시를 읽게 되였고 그이의 거룩한 풍모에서 열렬한 인간애의 귀감을 보게 되였다.

부드러운 음성, 자애가 그득 넘치는 눈빛, 따사로운 손길, 온몸이 그대로 뜨거운 사랑의 열을 뿜어올리는 태양과 같은분이시여서 인민은 그이의 품에서 얼어든 몸을 녹이고 차거워진 마음을 덥혔다. 인민의 심장과 마음속에 부어준 사랑이 너무도 따스하고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식지 않는것이여서 오늘도 인민은 그이를 어버이라 목메여부르며 산다.

바로 이러한 우리 수령님의 위대한 인간애는 만경대가문을 토양으로 형성되였다.

인간의 품성은 일정한 토양우에서 가꾸어지고 체질화된다.

체질은 타고나도 성품은 결코 저절로 체질에 얹혀지지 않는다.

그 품성이 자라나는 토양이 바로 가정이다.

사람은 누구나 가정이라는 울타리에서부터 인생의 첫발을 떼며 부모와 가정의 품에서 인생의 리치도 배우고 인간적인 품격과 자질도 갖춘다.

사람의 품성은 여러단계를 거쳐 형성되지만 가장 중요한것은 유년시절이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수령님께서는 유서깊은 만경대에서 부모님의 혁명적교양을 받으며 성장하시였습니다.》 (김정일전집》 제1권 487페지)

위대한 수령님께서 탄생하신 만경대가문은 이 세상 수천, 수만의 가정들가운데서도 가장 따뜻한 인간애와 육친의 정이 가득 넘치는 인간사랑의 터전이였으며 가문의 고결한 인간애는 우리 수령님의 인생의 숨결로 되였다.

만경대가문의 가장이신 할아버지 김보현선생님께서는 《돈이 없이는 살수 있어도 인덕이 없으면 살수 없느니라》고 자제분들에게 늘 훈계를 하군 하시였다.

아버지의 말씀은 곧 만경대가문의 철학이기도 하였다.

강반석어머님께서 만경대가문에 시집오시였을 때에는 가문이 위대한 수령님의 증조할머니를 비롯하여 열이 넘었다. 그러나 그 많은 식구들은 언제나 서로를 위하고 양보하면서 생활을 진행하였다.

만경대일가분들은 한 가정에서뿐아니라 남을 돕는데서도 사심을 몰랐다.

언제인가 김보현선생님께서는 남리의 어느 한 가난한 집을 위해 손수 련대보증을 서서 빚을 내여주도록 하시였으며 그후 그 집에서 더는 빚을 물수 없게 되였을 때에는 빚을 모두 걸머지시고 죽을 고생을 하시며 물어주시였다.

조부모님들의 이러한 품성은 그대로 일가분들의 귀감이 되였다.

가족성원들사이에 오가는 정가운데서도 특히 부모들의 사랑과 정은 사람의 성품형성과 발전에 커다란 영향을 준다. 가정의 래력에 함축된 생활태도와 방식을 후대들에게 넘겨주는데서 가장 친밀한 위치에 있는것이 다름아닌 아버지, 어머니인것이다.

김형직선생님께서는 어린 시절부터 동무들을 무척 귀해하시고 헐벗은 동무들을 위해 자신의 짚신이나 옷을 서슴없이 벗어주시였으며 아드님이신 위대한 수령님을 단순히 아버지로서의 애정만이 아니라 스승으로서 지도자로서 숭고한 정을 기울이시였다.

강반석어머님께서는 대가정의 살림을 도맡아하시면서도 언제한번 안색을 흐린적이 없이 시부모님들을 모시였고 혁명하는 남편을 받들었으며 자식들을 교양하시였다.

강반석어머님께서는 언제나 이웃을 사랑하시고 남을 위해 헌신하시였다.

언제인가 이웃집 며느리가 남에게서 꾸어쓰고 물지 못해 안타까와하는 돈 3원을 물어주려고 자신의 단벌치마를 파신적도 있었다.

위대한 수령님의 가정이 팔도구에 계실 때 어떤 가난한 집 아이의 치료를 성의껏 해주신것으로 그 집에서는 얼마되지도 않는 돈 1원을 가져왔다.

가난한 사람들의 성의를 물리칠수가 없으시여 그 돈을 받으신 강반석어머님께서는 거기에 75전을 합쳐 당목 5자를 사가지고 오시여 헐벗은 아이에게 옷을 해입히도록 하시였다.

강반석녀사의 부드럽고 인자하신 성품과 남을 리해하고 자신을 헌신하는 성품은 그대로 우리 수령님의 몸에 피줄처럼 퍼져나갔다.

보시는것은 가족들사이에 오가는 따뜻한 정이고 받으시는것은 특이한 가정철학의 교양이여서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일찍부터 특이한 인간애를 지니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5살나시던 봄 어느날, 식량이 떨어진 만경대마을사람들은 들판과 최뚝에 나와 냉이를 캐고있었다.

그때 냉이 캘념을 못하고 무릎이 드러난 몽당치마를 입고 옹크리고 앉아 오돌오돌 떨고있는 한 처녀애가 있었다.

불쌍하지만은 다 같은 처지여서 누구도 돌볼념을 하지 않고있었다.

그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서슴없이 자신이 입고있던 저고리를 벗어 그에게 입혀주시고 자신께서 캐신 냉이를 하나하나 손질하여 그 소녀의 보자기에 쏟아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7살나시던 해 가을 어느날 군사놀이를 하시다가 맨발로 집으로 들어오시였다. 그 다음날도 짚신을 신고 나가셨다가는 또 맨발로 집에 들어오시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만경대에는 조나 기장밖에 심지 못해 벼짚이 매우 귀하였기때문에 많은 아이들이 짚신을 신지 못하고있었다. 그래서 할아버님께서는 먼 원암장에 가 벼짚을 사오시여 오래 견딜수 있게 바닥과 신총에 삼을 섞어 짚신을 질기게 삼아주시였다. 그런 짚신을 서슴없이 동무들에게 벗어주시고 맨발로 집에 들어오시군 하는 사연을 알게 되신 할아버님께서는 어리신 수령님을 칭찬하시며 다음날부터 등잔불밑에서 더 많은 신을 삼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렇게 삼으신 짚신을 어떤 때에는 한꺼번에 10컬레씩 가지고나가시군 하시였다.

그 나날 어리신 수령님에게 있어서 동무들의 기쁨은 자신의 기쁨이였고 동무들의 슬픔과 안타까움은 자신의 슬픔과 안타까움이였다.

어린시절부터 웃사람들을 존경하고 동무들을 사랑하시며 남을 돕는 생활속에서 만경대가문의 철학은 우리 수령님의 확고한 생활신조로 굳어지게 되시였다.

비옥한 토양에 지심깊이 뿌리내린 나무는 아무리 세찬 바람에도 끄떡하지 않는다.

이렇듯 뜨거운 인간애의 토양에 든든히 뿌리내리고 성장의 나날을 통하여 완전히 체질화된 위대한 수령님의 인간애는 위대한 혁명생애의 전과정을 인간사랑의 서사시로 빛나게 수놓으실수 있게 한 추동력으로 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