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연구

전화의 나날에 창설된 백리과원

 2024.4.8.

우리 나라의 서해안에 위치하고있는 과일군은 준엄한 조국해방전쟁시기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원대한 구상에 의하여 창설되였고 오늘은 세계적으로도 그 규모를 떳떳이 자랑하는 과수농장으로 전변되였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조국땅 이르는 곳마다에 펼쳐진 훌륭한 과수원들은 위대한 수령님위대한 장군님의 크나큰 심혈과 로고속에 마련된 애국애민의 유산이며 인민생활향상의 귀중한 밑천입니다.》

과일군이 자리잡고있는 지역은 과수업발전에 유리한 자연조건을 가지고있으나 해방전까지 밭농사를 주로하는 락후한 농업지대로 되여있었다.

전쟁전까지만 해도 겨우 몇십정보의 사과밭이 있었을뿐 억새풀과 잡관목들만 무성하던 여기 과일군에 오늘은 백리과수농장이 펼쳐졌다.

미제침략자들을 쳐부시는 준엄한 조국해방전쟁시기 래일의 승리를 확신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불바다속에서 전후복구건설의 웅대한 설계도를 준비하시면서 우리 나라 과수업발전의 장래를 내다보시고 조국땅 그 어디를 가나 백과주렁진 과일동산을 마련할 원대한 구상을 무르익히시였다.

주체42(1953)년 3월 25일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농업상과 황해도인민위원장을 부르시여 당시 송화군의 풍천일대에 과수원을 조성할데 대한 과업을 주시였다.

그들은 농업생산을 책임진 일군들로서 봄철영농사업이나 전선원호사업때문에 부르신줄 알고 그에 대해 보고드릴 준비를 하고왔을뿐 과수원조성에 대하여서는 전혀 생각하지 못하였다.

전쟁승리를 위하여 필요한것은 식량이였지 사과나 배와 같은 과일은 아니라는 생각만을 가지고있던 그들로서는 위대한 수령님의 그 말씀이 선뜻 믿어지지 않았다.

그이께서는 놀라움을 금치 못하는 일군들을 바라보시며 송화군 풍천일대는 해안연선지대이기때문에 군사상 필요에 따라 그곳 농민들을 후방지대로 이주시키다보니 지금 그 일대의 많은 땅이 묵고있다고, 우리는 그 좋은 땅을 계속 묵여둘수 없다고 하시면서 말씀을 이으시였다.

송화군 풍천일대의 좋은 땅을 어떻게 리용하겠는가 하는것을 여러모로 생각해보았는데 거기에 과수원을 조성하는것이 좋을것 같다. 송화, 은률지방은 과일이 잘된다. 풍천일대에 지금부터 과수묘목을 심어놓았다가 전쟁이 끝난 다음 큰 국영과수농장을 내오면 이 일대를 이름난 과일생산기지로 전변시킬수 있다. …

일군들은 끓어오르는 감격을 억제할수 없었다. 당시 풍천일대는 전선가까운 해안지대로서 그곳 농민들은 안전지대로 옮겨앉고 극히 필요한 인원만 남아있어 인적이 매우 드물었다. 그런데다가 적들의 함포사격이 그칠새 없었고 밤에는 섬에 둥지를 틀고있는 적들이 도적고양이마냥 무시로 뭍에 기여올라 일군들은 넓은 땅이 묵고있어도 전쟁시기여서 어쩔수 없는것으로 여기고있었던것이다.

그런데 위대한 수령님께서 바로 그 지대에 국영과수농장이라는 대과수기지를 창설하실 구상을 펼치고계시니 이 얼마나 가슴벅찬 일인가.

환희에 넘쳐있는 그들을 바라보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환하게 웃으시며 과수원조성사업은 우리 세대의 생활향상을 위한 사업인 동시에 후대들에게 귀중한 재부를 넘겨주기 위한 만년대계의 중요한 사업이라고 하시면서 동무들은 전쟁의 불길속에서도 많은 로력과 자금을 들여 과수원을 조성하는 당의 의도를 옳게 인식하고 이 사업을 책임적으로 조직하여야 한다고 하시였다.

조국의 운명을 판가리하는 전쟁시기 전선작전도 아닌 과수원을 조성하여 후대들에게 넘겨주기 위한 만년대계를 펼치시는 수령님을 우러르며 일군들의 가슴은 끝없는 흥분으로 끓어넘쳤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과일나무는 심어서 몇해 지나야 결실을 볼수 있으므로 과수원조성사업을 예견성있게 하여야 한다고 하시면서 금년봄에 심을수 있는 과수묘목이 20만그루가량 있고 가을에 심을수 있는 묘목이 10만그루가량 있다고 하는데 과수묘목을 1정보에 200그루씩 심는것으로 보면 금년봄에 한 1 000정보, 가을에 한 500정보 심을수 있다고, 금년안으로 과수묘목을 1 500정보 심으면 풍천일대의 과수원면적이 지금있는 200정보까지 합하여 모두 1 700정보가 된다고 하시였다. 그러시고는 앞으로 송화군에서는 과수원조성사업을 풍천지구의 해안연선으로부터 륙지안으로 과일나무를 심어들어오는 방법으로 전망성있게 하여야 하겠다고 이르시고는 운반조직과 로력조직을 잘하여 봄철과일나무모심기작업을 빨리 시작하여야겠다고, 잘못하면 과일나무모심는 계절을 놓칠수 있다고 강조하시였다.

계속하시여 로력문제, 비배관리문제를 비롯하여 과수원조성에서 나서는 문제들을 일일이 가르쳐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내려가서 사업에 빨리 착수하라고 이르시며 그들의 손을 뜨겁게 잡아주시였다.

전쟁이 계속되던 그 엄혹한 시기에 이와 같이 손수 송화에 과수농장을 창설해주신 그이께서는 당시 조건하에서 매우 귀하던 비료를 비롯하여 수많은 로력과 자재, 자금을 보내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크나큰 사랑에 무한히 고무된 인민들은 적들이 미친듯이 퍼붓는 포탄과 함포탄으로부터 과일나무들을 보호하기 위하여 필사적인 투쟁을 벌리면서 그이께서 보내주신 비료를 뿌리며 농장을 꾸려나갔다.

하루빨리 인민들에게 더 많은 과일을 먹이시기 위해 모든것을 다하시는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정전이 된지 두달밖에 안되는 어려운 때에 뜨락또르들과 개간작업에 필요한 농기구들을 농장에 보내주시였고 뒤이어 전쟁시기 친히 나라의 도처에다 양묘장을 만들어 키우게 하신 2년생 여러가지 과일나무모들을 보내주시였다.

그리하여 벌써 정전이 되던 해 가을에 새로 수많은 과일나무들이 아직 화약냄새가 가시지 않은 송화땅에 뿌리를 내리기 시작하였다.

이렇게 되여 과일나무들이 서해기슭의 풍천지구를 꽉 덮으며 뿌리내리게 됨으로써 조국해방전쟁사의 갈피에 새겨진 주체42(1953)년 3월 25일은 우리 나라 과수업발전에서 전환적계기를 안아온 뜻깊은 날로 전해지게 되였다.

전화의 나날 우리 조국을 과수의 나라로 전변시키시려는 위대한 수령님의 웅대한 구상에 의하여 해안연선으로부터 준평원의 구릉지대를 따라 점차 자기의 면적을 넓혀가면서 형성된 과수원은 그후 한개 군이 통채로 과수바다를 이룬 백리청춘과원으로, 현대적인 설비들을 충분히 갖추고 여러가지 맛좋은 과일가공품을 생산하는 대규모적인 과일생산 및 가공기지로 전변되였다.

과일군의 백리청춘과원
사진 1. 과일군의 백리청춘과원

과일군에 펼쳐진 과일대풍
사진 2. 과일군에 펼쳐진 과일대풍

주체106(2017)년 9월 20일 과일대풍이 든 과일군을 찾으신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혁명사적관에 모셔진 위대한 수령님의 사진문헌을 보시며 우리 수령님과 같이 가렬한 전화의 나날 승리할 래일을 그려보시며 나라의 과수업발전을 위한 길을 환히 밝혀주신 그런 령도자는 이 세상에 없다고 하시면서 수령님은 우리 나라 과수업발전의 새 력사를 펼쳐주신 위대한 개척자이시라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정녕 이 세상에 나라도 많고 풍요함을 자랑하는 과수원들도 많지만 위대한 수령님의 직접적인 령도에 의하여 전쟁의 재더미속에서 억센 뿌리를 내리고 가지마다 주렁진 알찬 과일들로 대지를 뒤덮은 백리과원을 가진 나라는 그 어디에도 없을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