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연구

용납하지 않으신 특전, 특혜

 2022.7.7.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리 당과 인민정권을 세우신 첫날부터 세도와 관료주의를 반대하고 혁명적사업방법과 인민적사업작풍을 확립하는것을 중요한 문제로 내세우시였습니다.》 (김정일선집》 증보판 제16권 474페지)

한평생 근로하는 인민들속에 자신을 나란히 세우시고 인민들과 한치의 간격도 없이 겸허하게 생활해오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자신에 대한 자그마한 특전이나 특혜는 물론 일군들속에서 나타나는 그 어떤 특전이나 특혜도 절대로 허용하지 않으시였다.

갓 해방된 조국땅에서 항일혁명투사들이 어느 한 투사의 결혼식을 차려주게 되였을 때의 일이다.

투사들은 환희에 넘쳐 들끓었다.

그런데 당장 돈 한푼 없는것이 문제였다. 백두전장에서 가지고온것이란 빈 배낭뿐이였던것이다. 전우의 결혼식을 두고 속을 태우던 한 투사는 어느 한 기관에서 후에 갚아주기로 하고 돈을 꾸어올 작정을 하였다.

그리하여 얼마간의 돈을 얻게 된 그는 결혼식준비로 바쁘게 뛰여다녔다.

며칠후였다.

한 일군과 담화를 하는 과정에 이 사실을 아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안색을 흐리시며 즉시 그 투사를 부르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결혼식준비때문에 찾으시는줄로만 알고 싱글벙글하며 달려와 인사를 올리던 그는 그만 위대한 수령님의 엄하신 안색을 보고 어리둥절해졌다.

그 순간 동무는 언제부터 특전, 특혜를 바라게 되였는가고 책망하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격하신 음성이 방안을 흔들었다.

투사의 얼굴은 순간에 흙빛이 되여버렸다.

자기의 행동이 특전, 특혜라고까지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그였다.

그러나 순간 투사의 눈앞에는 백두광야에서 겪은 나날들이 번개치듯 스쳐지나갔다.

그 나날 위대한 수령님께서사령관도 인민의 아들이라고 하시며 언제한번 자신을 인민들과 구별하신적이 없으시였다. 그리고 어떤 경우에도 인민우에 군림하는것을 절대로 허용하지 않는것을 군률로까지 확립하시였다.

투사는 그제야 자신이 얼마나 큰 잘못을 저질렀는가를 깨닫고 눈물을 삼키며 말씀드렸다.

《그 동무가 부모형제없는 홀몸이기에 도와준다는것이 그만… 제가 정말 잘못했습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를 이윽토록 지켜보시다가 부관에게 저 동무의 무기를 회수하라고 단호하게 명령하시였다.

지체없이 무기가 회수되였다.

안타까움으로 젖어드신 위대한 수령님의 음성이 다시 울리였다.

나라고 왜 산에서 고생하던 동무들의 결혼식를 잘 차려주고싶지 않겠는가, 우리야 산에서 싸울 때 밥 한그릇, 물 한사발을 떠놓고 결혼식을 하지 않았는가.

그러시면서 우리는 혁명을 위해 불바다, 피바다를 헤치고 지어 자기 목숨까지도 서슴없이 바칠 각오를 하고 나선 조선의 혁명가들이다, 20성상의 피어린 투쟁속에서 찾은 조국땅우에 새 사회를 건설해야 할 우리 혁명가들이 인민의 거울이 되고 모범이 되여야지 특별한 대우나 특혜를 바라서는 절대로 안된다고 간곡히 교시하시였다.

투사는 위대한 수령님의 그 깊은 뜻을 순간이나마 망각한것이 너무도 가슴아파 흐느껴울며 새 조국건설과 인민의 리익을 위한 길에 자신의 모든것을 다 바쳐갈 결의를 마음속으로 굳게 다지였다.

이 이야기는 위대한 수령님의 고결한 풍모를 보여주는 한가지 실례에 지나지 않는다.

최상최대의 특전과 특혜는 근로하는 인민들이 누리게 하고 일군들은 인민의 심부름군으로 되여야 한다는것이 위대한 수령님의 한생의 지론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