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연구

우리 수령님과 법동농민

 2019.10.28.

인민의 지위를 력사상 최상의 지위에 올려세우시고 한평생을 인민을 위하여 모든것을 다 바쳐오신 위대한 수령님의 신조는 이민위천이였다. 인민을 력사의 주체로 내세우시고 하늘처럼 여기시는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오로지 인민에게 가장 존엄있고 행복한 생활을 마련해주시기 위하여 생애를 다 바치시였다.

우리 인민이 다난한 혁명의 길을 한치의 탈선도 없이 꿋꿋이 걸어올수 있은것은 바로 위대한 수령님을 마음의 기둥으로 삼고 수령님을 따르는 길에 승리와 영광이 있다는것을 억척불변의 신념으로 간직하였기때문이다.

조국해방전쟁시기 어느 한 고개길에서 위대한 수령님과 한 농민사이에 진행된 담화는 우리 인민의 숭고한 사상정신세계가 무엇에 기초하고있는가 하는것을 잘 보여주고있다.

조국해방전쟁의 전략적인 일시적후퇴가 계속되던 주체39(1950)년 10월 20일 밤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타신 차가 평안북도 녕변군 북신현면(당시)의 상로고개길에 이르렀다. 자동차전조등의 불빛에 벼가마니를 실은 몇대의 달구지들이 움직이는것이 환히 보였다.

수령님께서는 차에서 내리시여 맨앞에서 머리를 수굿하고 달구지를 몰아가고있는 한 로인앞에 다가서시며 따뜻이 말씀하시였다.

《로인님이 밤길에 수고합니다.》

그러시고 이 달구지는 어디서부터 오는가고 물으시였다.

어둠때문에 물으시는분이 누구이신지 알수 없었던 로인은 걸음을 멈추고 강원도에서 들어온다고 석쉼한 목소리로 대답하였다.

후날 우리 인민들속에, 위대한 수령님의 기억속에 살아있는 《법동농민》으로 널리 알려진 그 로인은 아호비령과 마식령사이에 있는 당시의 강원도 문천군 풍상면 룡포리 본동부락에 살고있는 김기택이라는 농민이였다. 문천군 풍산면 룡포리는 후날 법동군에 속한 마을로서 법동이라면 예로부터 하도 산세가 험하고 인적이 드물어 나라의 법도 오솔길을 따라 들어오다가 험한 령을 더 넘지 못하고 그만 지쳐서 멈춰선 심산벽지라고 하여 이름지어진 깊은 산골이였다.

먼지와 땀에 젖은 목수건, 소금기가 내밴 주름투성이의 무명바지저고리며 흙묻은 신을 눈여겨 살펴보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 험한 길을 용케도 뚫고왔다고 하시며 로인에게 손수 담배를 권하시고 불까지 붙여주시며 험한 길을 오느라고 고생이 많았겠다고 말씀하시였다.

이름없는 궁벽한 산골늙은이의 소행을 다심하게 헤아려주시는것이 황송하여 어쩔바를 몰라 두눈만 슴벅이는 로인에게 수령님께서는 다정히 물으시였다.

《그래 로인님은 이 깊은 밤에 어디로 갑니까?》

로인은 《북으로 가지요. 지금이야 북쪽밖에 갈데가 있습니까?》라고 대답올리였다.

북에 가면 어디 가까운 친척이라도 있는가고 다시금 물으시는 수령님께 로인은 가까운 친척도 없거니와 있다고 해도 이 전쟁판에 친척은 찾아 뭘 하겠는가고 말씀올리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로인에게 그러면 누굴 믿고 북으로 들어가는가고 물으시였다.

로인은 놀라운 기색을 보이며 《군대동무들과 같이 김일성장군님을 찾아가지요!》라고 대답하였다.

이 란리통에 김일성장군은 왜 찾아가는가는 위대한 수령님의 말씀에 로인은 대뜸 노여움이 섞인 목소리로 《왜 찾아가다니요?!… 장군님을 찾아가야 살길이 열리고 우리가 전쟁에서 이기지 않겠소.》라고 말하였다.

한동안 말이 없던 로인은 《세상은 참 좋은 세상이지요. 우리 농군들이 제땅에서 농사를 지어보기는 평생 처음이였쉐다. 바로 이 황소도 해방후 장군님께서 주신 땅에서 농사를 지어가지고 사맨것이지요. 그런데 침략자들이 장군님께서 주신 우리 땅을 빼앗자고 달려드는데 우리가 어디로 가겠소. 장군님을 찾아가야지요.》라고 말하였다.

로인은 위대한 수령님께 이 길로 가면 틀림없이 김일성장군님을 만나뵈올수 있는가고 물었다.

《로인님이 북에 가까운 친척은 없지만 지금처럼 시국이 어려운 때에는 김일성장군님을 믿고 따라가야 살길이 열리고 우리 공화국이 전쟁에서 이길수 있다고 하는데 그런 마음을 가지고 북으로 찾아가면 김장군을 꼭 만날수 있을것입니다.》

위대한 수령님의 말씀에 로인은 만시름이 놓이는듯 반색을 하며 《그렇게만 된다면 여북이나 좋겠소. 장군님만 만나뵈온다면 정말이지 이 몸은 죽어도 여한이 없겠수다!》라고 목메여 말하였다.

잠시후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로인에게 한가지 물어도 되겠는가고 하시며 이렇게 물으시였다.

《로인님. 그런데 로인님의 생각에는 우리 인민군대가 전쟁에서 이길것 같습니까?》

그러자 로인은 대뜸 확신에 넘쳐 대답올리였다.

《이기지요. 이기고말구요. 김일성장군님께서 계시는데 무슨 걱정이 있겠소! 이기지요!》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로인의 대답에 호탕하게 웃으시였다. 전략적인 일시적후퇴가 시작된 이후 그이께서 만시름을 놓으시고 터치시는 웃음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로인님은 신통히도 자신과 같은 생각을 하고있다고, 우리 인민군대는 침략자들을 더 본때있게 족치기 위하여 일시적으로 후퇴하고있다고, 인민군대는 이제 곧 돌아서서 다시 남으로 진격하게 되며 전쟁에서 우리가 승리할 날도 멀지 않았다고, 그때에는 로인님도 고향에 돌아가 마음껏 농사를 짓게 될것이라고 말씀하시며 인민군대를 도와 더 잘 싸워주길 바란다고 인사를 나누시고 로인과 헤여지시였다.

이것이 바로 잊을수 없는 1950년 10월의 그밤 위대한 수령님께서 령길에서 법동농민과 나누신 수령과 인민간의 불굴의 의지와 신념의 대화였으며 우리 당과 인민의 불패의 통일단결에 대한 감동적인 서사시적화폭이였다.

오늘 평양-향산관광도로가 뻗어간 상로고개에는 못잊을 그날의 화폭을 펼친 벽화가 세워져 오가는 길손들에게 위대한 수령님과 법동농민에 대한 감회깊은 이야기를 길이 전하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