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문학의 한 형태인 력사소설창작에서 다양한 종자와 주제, 내용을 반영하는 문제는 매우 중요하게 제기된다.
아무리 다른 소재를 취급하였다고 하여도 종자가 같으면 형상의 반복성을 피할수 없다. 반면에 소재가 같아도 종자만 새로우면 개성적이고 인상적인 형상을 펼칠수 있다.
《종자는 언제나 새롭고 특색이 있는것이여야 한다.》 (
새롭고 특색있는 종자란 언제나 비반복적인것이며 생활발전의 새로운 싹을 독특하게 체현하고있는것이다. 이러한 특색있는 종자는 쉽게 발견되지 않는다. 그것은 바다가의 수억만 모래알가운데 있는 하나의 금싸래기처럼 희귀한것이여서가 아니라 생활속에 많으면서도 그 특색을 제때에 옳바르게 가려내는 일이 쉽지 않기때문이다.
력사소설의 소재속에서 새롭고 참신한 종자를 탐구하기 위한 방도는 무엇보다도 작가들이 력사적사실의 극적인 요소를 깊이있게 파헤쳐 그 극을 떠올린 근본요인, 력사적사실의 기저에 깔려있는 새로운 력사의 철리를 발견하여 종자로 내세우는것이다.
종자가 새로와야만 새로운 작품이 탄생할수 있다.
불후의 고전적명작 《안중근 이등박문을 쏘다》를 소설로 옮긴 장편소설 《안중근 이등박문을 쏘다》와 불후의 고전적명작 《혈분만국회》를 소설로 옮긴 장편소설 《혈분만국회》는 다같이 일제의 조선침략초기에 단행된 애국지사들의 애국적장거를 소재로 하고있지만 그 형상이 개성적이다. 그것은 바로 이 작품들의 종자가 완전히 다르기때문이다.
장편소설 《안중근 이등박문을 쏘다》에서는 이등박문은 죽었어도 침략자는 남아있다는 종자를 통하여 개인테로의 방법으로는 조선의 독립을 이룩할수 없으며 인민대중이 단합된 힘으로 일제와 맞서 싸워야 한다는 사상을 천명하였다. 장편소설 《혈분만국회》는 만국평화회의도 조선의 독립을 선사해주지 않았다는 종자를 통하여 외세의존의 길은 망국의 길이며 민족자주의식을 가지고 투쟁으로 나라의 독립을 쟁취해야 한다는 사상을 힘있게 천명하였다.
작가들은 누구나 다 볼수 있는 생활의 표피를 벗겨내고 극적인 생활을 떠올린 근본인자를 끄집어내야 한다.
종자는 생활의 표면에 드러나있는것이 아니라 생활의 가장 깊은 곳에 숨어있다. 아무런 충격도 없고 아무런 변화도 없이 정상적으로 흘러가는 생활에서는 종자가 잘 드러나지 않는다. 종자는 어떤 충격에 의하여 생활에 파동이 일어나 그 정상적인 흐름이 깨여지며 사람의 운명에서 심각한 변화가 생기게 될 때 보다 뚜렷하게 드러난다. 생활의 흐름을 새롭게 변화시키며 사람의 운명에서 극적인 전환이 일어나게 한 그 근본요인속에 바로 생활의 사상적알맹이, 종자가 있다.
실례로 17세기에 울릉도를 지켜싸운 안룡복의 행동에서 극적인것은 나라를 《대표》하는 국가의 정부관리가 아닌 한갖 배군에 불과한 사람이 왜놈들에게서 울릉도가 조선의 령토라는 공식인정을 받아냈다는데 있다.
울릉도의 국적을 판별하는것은 조선과 일본 량측정부의 관리들이 해결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울릉도문제에 대한 조선봉건정부의 비겁한 태도는 안룡복으로 하여금 일본렬도에로의 항행을 단행하지 않을수 없게 하였다. 안룡복의 쯔시마행은 결국 백성들 자신이 아니고서는 그 누구도 울릉도를 지켜줄 사람이 없다는 결론을 내렸기때문이였다.
울릉도, 그것을 지켜줄 진정한 주인이 없는 섬, 여기서 작가는 소설의 종자를 도출해내였다. 작가는 소위 나라를 《대표》하는 량반사대부들은 허수아비들이며 나라의 한끝 한뙈기땅마저 목숨바쳐 지키는 나라의 진정한 주인들은 평범한 백성들이라는 종자를 발견하여 장편력사소설 《울릉도》를 창작하였다.
력사소설창작에서는 반드시 력사소설로서의 무게를 가진 력사의 진리를 새롭게 탐구하여 종자로 제시하고 해명하여야 한다.
력사소설의 소재속에서 새롭고 참신한 종자를 탐구하기 위한 방도는 다음으로 해당 력사적사실을 여러 측면에서, 다양한 각도에서 파고들어 분석함으로써 동일한 력사적사실속에서도 력사의 진리로 되는 새로운 사상적알맹이를 발견해내는것이다.
어느한 작가가 어떠한 력사적사실을 소재로 소설을 썼다고 하면 이를 형상한 력사소설이 다시는 나오지 않는것은 편향이라고 할수 있다. 설사 이미 해당 력사적사실을 반영한 명작소설이 창작되였다고 할지라도 종자를 달리하면 또 새로운 명작소설이 창작될수 있는것이다.
력사소설이 천편이면 천편이 다 종자가 다르고 새로와야 한다.
력사소설의 소재속에서 새롭고 참신한 종자를 탐구하기 위한 방도는 다음으로 현시대 인간들에게 의의있는 인간문제가 내포된 종자를 발견하여 내세움으로써 형상에서 현대성을 철저히 구현하는것이다.
문학은 과거나 현재, 미래의 어느 시대, 어느 시기를 그리는가를 막론하고 반드시 현대에 복무하는것을 본성적요구로 한다.
문학은 어떤 시기의 생활을 반영하든지 오늘의 투쟁과 생활을 추동하는 무기로서의 사명을 수행하여야 한다.
물론 민족의 유구하고 자랑찬 력사를 생동한 예술적화폭으로 재현하여 보여주는 그 자체만으로도 력사소설은 독자들에게 자기 나라 력사에 대한 옳바른 인식을 주며 그들의 애국심을 북돋아주는데 이바지하게 된다. 그러나 같은 력사적사실도 현실적요구에 보다 가까운 문제를 내세워 형상할수록 그 작품은 보다 가치있는 작품으로 된다.
현대인들에게 의의있는 문제를 내세운다는것은 오늘의 시점에서 우리 인민의 혁명투쟁과 건설을 추동할수 있고 사람들에게 애국심과 민족의식을 고취시킬수 있는 문제를 내세운다는것을 의미한다.
력사소설에서는 반드시 현대인들에게 옳바른 인생관과 민족관, 력사관을 심어줄수 있는 현실적문제를 안고있는 종자를 내세워야 한다.
실례로 고구려 명화가로 명성이 높았던 담징에 대한 중편력사소설 《담징》의 종자탐구경험을 들수 있다.
이 소설에서는 작품의 종자를 새로운 각도에서, 즉 력사에 전해져내려오는 담징과 혜자의 성격적대비속에서 탐구하였다.
담징과 혜자, 이들은 동시대인들로서 다같이 불교계에 몸을 담근 중들이며 중요하게는 당대에 뛰여난 재사들이였다.
혜자로 말하면 미술적재능으로 보나 불교계에서의 지위로 보나 담징보다 더 높은 지위에 있은 사람이였다고 말할수 있다.
그러나 력사가들은 혜자는 그저 재능있는 화가로, 담징은 애국적이며 재능이 뛰여난 화가로 그 평가를 달리하고있다. 혜자와 담징, 두 재사에 대한 후세의 평가가 서로 다른것은 바로 두 인물이 조국을 대하는 태도가 서로 대비되였기때문이다. 즉 담징이 조국애로 불타는 재사였다면 혜자는 재능은 뛰여났으나 불교에만 충실한 사람이였다.
혜자와 담징은 고구려의 위상이 비상히 높아진 시기에 일본에 초빙되여갔다. 그때 일본의 실권을 장악하고있던 성덕태자는 고구려의 정치, 문화에 대한 강렬한 동경심을 가지고 고구려사람들을 적극 본국에 초청하여 일본의 정치와 문화에서 개변을 이룩하였다. 성덕태자가 고구려의 중이였던 혜자를 오래동안 자기의 스승으로 삼은것도 강국인 고구려에 대한 당시 일본의 숭배심으로부터 출발한것이였다.
혜자와 담징이 왜인들의 존경과 숭상을 받을수 있은것은 다름아닌 강대국 고구려의 재사들이였기때문이며 고구려의 그 빛나는 명성으로 혜자와 담징의 이름이 더욱 빛났던것이다.
아무리 뛰여난 재사라 하여도 그 재능은 조국의 후광으로 빛나는 법이다. 바로 담징이 혜자에게 깨우쳐주고싶었던 이 말, 그것은 작가 자신이 작품을 통해서 독자들에게 하고싶은 말이기도 한것이다.
이로부터 중편력사소설 《담징》에서는 그 어떤 재사도 조국과 결부하여서만 그 명성이 빛날수 있으므로 조국을 아는 재사가 되여야 한다는 의의있는 력사의 진리를 종자로 설정하였다.
력사소설은 민족사를 풍부하게 반영한 백과전서로 되여야 하는 동시에 인간학으로서의 체모를 갖춘 문학으로 되여야 한다. 새롭고 참신한 종자의 발견 바로 여기에 력사소설의 문학성을 담보하는 근본방도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