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조선혁명의 1세대 로혁명가들의 연길폭탄정신은 그 이름과 더불어 아득히 흘러간 세월의 갈피를 조용히 더듬어보게 한다.
《자력갱생의 길은 탄탄대로가 아닙니다. 완강한 난관극복의 정신, 간고분투의 정신으로 하는것이 자력갱생이며 그것으로 하여 빛나는것이 자력갱생선구자들의 투쟁행로입니다.》 (
항일혁명투쟁의 첫 시기 유격구에 꾸려진 병기창사업은
당시 유격구의 병기창들에서 제일 절실하게 요구되는것은 화약이였다.
바로 이러한 때 화약을 자체로 만들 대담한 결심을 내리시고 화약제조의 력사와 자료들을 깊이 연구하시는 한편 그 과정에 화약의 기본원료인 염초를 민간에서도 생산할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신분은
병기창일군들은
이렇게 맨손으로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과정에 발휘된 항일혁명선렬들의 자력갱생정신이 다름아닌 연길폭탄정신이다.
오늘도 그날의 연길폭탄정신은 모든것이 부족하고 어려운 가혹한 환경속에서도 조금도 굴하지 않고 결사의 의지로 만난을 헤쳐나간 항일의 자력갱생선구자들을 길이 전하고있다.
연길폭탄정신과 더불어 길이 전해지는 자력갱생선구자들가운데는
그는
손원금동지는 폭탄제작에 필요한 장약함을 만들다가 종이와 천이 모자라면 다른 사람들이 미처 생각할 사이도 없이 한밤중에 마을로 뛰여내려가 자기 집 문창호지와 하나밖에 없는 이불까지 날라왔고 철사가 모자라 작탄제작에 지장을 받으면 수십리밖에까지 달려가 수백m나 되는 적들의 전화선을 끊어오기도 했다. 류황과 무쇠쪼각, 양철판을 구해오기 위해 눈보라가 세차게 몰아치는 밤길도 주저없이 떠나군 한 그였다.
작업도중 폭발사고로 두눈을 잃는 불행까지 당했지만 손원금동지는 실명의 쓰라린 아픔속에서도 락심하거나 비관하지 않고 《동무들, 슬퍼말라. 비록 두눈은 잃었지만 나에게는 심장이 남아있지 않는가. 두팔이 있고 두다리가 있지 않는가!》라고 하면서 오히려 동지들을 위로하였다.
연길폭탄제작에 자기의 몸과 마음을 깡그리 바친 손원금동지야말로 강쇠같은 자력갱생정신의 소유자였다.
후날 원쑤들에게 체포되여 화형을 당하는 날 그는 이런 마지막말을 남기였다.
《여러분, 나에게는 눈이 없습니다. 그러나 해방된 조국산천이 환히 보입니다. 승리의 날까지 굳세게 싸워주십시오! 조선혁명 만세!》
25살의 애젊은 청년인 손원금동지는 이렇게 한생을 마치였다.
하기에
연길현유격근거지의 병기창성원들도 연길폭탄정신과 더불어 길이 전해지는 자력갱생선구자들이다.
어느해 겨울 연길현유격근거지의 병기창성원들이
쇠가마로 파편쪼각을 만들 때에도 그들은 가마를 두드리는 마치소리로 적들에게 로출될수 있다는 위험성을 발견하고는 자기들의 솜덧저고리를 벗어 그것으로 가마를 싸서 덮어놓고 두드려 깨여 작탄제조에 필요한 파편쪼각들을 하나하나 마련해나갔다. 가마를 싼 덧저고리는 갈기갈기 찢겨져 형태마저 알아볼수 없게 되였으므로 단벌옷인지라 그들은 홑내의바람으로 작업을 하지 않으면 안되였지만 절대로 내색하지 않았다. 말그대로 악전고투였다.
강추위와 눈보라가 홑내의를 뚫고 온몸에 스며들었으나 맡은 임무를 기어이 완수하여 원쑤를 무자비하게 족칠 그들의 굳센 신념과 의지는 꺾을수 없었다.
그리하여 연길현의 병기창성원들은 단 3일동안에 100개의 작탄을 만들어 싸움터로 보내줌으로써 유격구방어전투에 크게 기여하였다.
이렇듯 조선혁명의 제1세대들은
참으로 항일혁명선렬들은 연길폭탄정신, 자력갱생정신과 더불어 조선인민의 추억속에 영원히 남아있는 백절불굴의 투사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