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인민은 반만년의 유구한 력사와 찬란한 문화전통을 가진 슬기로운 인민입니다. 우리 인민의 력사는 자연과 사회의 구속과 억압에서 벗어나기 위한 빛나는 투쟁의 력사이며 민족의 슬기와 재능이 담긴 수많은 문화적재보를 창조해온 자랑스러운 창조의 력사였습니다.》 (
뛰여난 슬기와 재능을 가진 우리 인민은 지나온 력사적과정에 세계에 널리 자랑할만 한 문화적재부를 창조하였다.
우리 선조들이 창조한 문화적재부들가운데는 세계문화보물고를 풍부히 하는데 기여한 민족고전유산들도 적지 않다. 슬기로운 우리 선조들이 창조한 민족고전유산들가운데서 문집류의 민족고전들이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크며 그 가치 또한 크다고 할수 있다.
《사숙재집》은 15세기 후반기에 활동한 강희맹(1424-1483)이 쓴 글작품들을 묶어 편찬한 개인문집이다.
15세기후반기에 조선봉건국가의 관료로, 문장가로, 농학자로 활동한 강희맹의 자는 경순(景醇), 호는 사숙재(私淑齋) 또는 농문거사(農門居士)였다.
강희맹의 가문은 대대로 글을 잘 지어 이름난 가문이였다.
서거정(1420-1488)은 이에 대하여 《사숙재집》의 서문에서 이렇게 썼다.
《할
강희맹의 가문은 할
강희맹은 어려서부터 책읽기를 좋아하고 한번 본것은 그대로 기억하여 총명하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
그는 글짓기에 특별한 재간이 있어 여러가지 일화들을 남겼다.
12살 나는 해에 길가던 어떤 선비가 절에서 글공부하는 그를 보고 절간앞의 고목을 주제로 하여 시를 짓게 한적이 있었다.
이때 그는 대번에 《한그루의 고목 봄바람 맞으며/ 심산의 아지랑이 속에 홀로 서있네/ 해마다 생각하리 꽃잎진 후에는/ 떨어진 가지 몇이고 남은 가지 몇일가》라는 7언절구로 된 시를 지어 읊어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하였다고 한다.
문장가로서의 강희맹에 대하여 《성종실록》에서는 《문장이 정교하고 우아하며 종이를 쥐면 그 자리에서 글을 만들어냈다. … 희맹은 글을 많이 보고 기억도 잘하였으며 문장은 고상하고 정교하여 당시의 동료들가운데서는 그를 앞설 사람이 없었다.》(* 《성종실록》 권151 성종14년 2월 신사일)라고 썼다.
강희맹은 농학에도 조예가 깊었다.
그가 편찬한 금양 즉 경기도 시흥지방 농사관계의 자료들을 기록한 농서《금양잡록》에는 농업에 대한 그의 견해와 농학에 대한 해박한 지식이 수록되여있으며 당시 우리 나라의 농업발전면모가 반영되여있다.
강희맹의 대표작으로는 《금양잡록》과 농촌에서 사계절농사와 관련되는 여러가지 문제들을 취급한 《사시찬요》라는 농서가 있으며 문집으로 《사숙재집》이 있다.
《사숙재집》과 거기에 수록되여있는 작품들은 15세기후반기 우리 나라 문학예술의 발전면모와 시대상을 연구하는데 가치있는 자료들을 제공하고있는것으로 하여 귀중한 민족고전유산으로 되고있다.
《사숙재집》은 강희맹이 죽은 후에 편찬된 그의 개인문집이다.
《사숙재집》은 17권 4책으로 구성되여있으며 여기에는 강희맹이 생전에 창작한 많은 운문과 산문이 수록되여있다.
책의 앞부분에 서거정이 쓴 서문과 강희맹의 생애를 기록한 행장이 있다.
《사숙재집》의 편찬자들은 이 책을 편찬함에 있어서 복잡한 구성체계를 피하고 다만 수록할 내용들을 일정한 분량씩 권으로 묶는 구성체계를 취하였다.
산문부분에서는 산문의 형식에 따라 조목을 설정해주고 해당한 형식의 산문들을 차례로 수록하였다.
이렇게 17개의 권을 구성하고 4책으로 갈라 편찬하였다.
책별에 따르는 권수를 본다면 《사숙재집》의 제1책에는 제1권부터 제5권까지 수록되여있으며 제2책에는 제6권부터 제9권까지, 제3책에는 제10권부터 제12권까지, 제4책에는 제13권부터 마지막 제17권까지 수록되여있다.
《사숙재집》에 수록되여있는 자료들을 그 형식에 따라 크게 운문과 산문부분으로 갈라볼수 있다.
1권부터 10권의 전반부분에는 5언절구, 7언절구, 5언률시, 7언률시, 고시 등 여러 형식의 다양한 주제의 한시작품들이 1 400여편 수록되여있다.
《사숙재집》에 수록된 시작품들을 그 형식으로 나누어보면 7언절구가 686편으로 제일 많은 비중을 차지하며 7언률시가 240편, 5언절구가 158편, 5언률시가 124편이며 배률이 45편, 고시가 129편, 사와 부가 각각 19편, 4편씩이다.
《사숙재집》에 수록된 시작품들가운데는 조국강산의 아름다움을 주제로 한 작품들과 특이한 자연현상이나 대상을 주제로 한 시작품들, 그리고 우리 인민들의 세태생활과 로동생활을 주제로 한 작품들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있다.
《사숙재집》에 실려있는 1 400여편에 달하는 시작품들은 15세기 후반기 우리 나라 시문학의 발전면모를 연구하는데 가치있는 자료들로 된다.
《사숙재집》의 10권 후반부분부터 17권까지는 여러 형식의 산문들이 90여편 수록되여있다.
《기》, 《서》, 《발》, 《찬》, 《상서》, 《행장》 등 여러 종류의 한문산문문체들로 씌여진 각이한 주제의 산문작품들이 수록되여있다.
여기에는 강희맹이 생전에 쓴 여러 서문들과 발문들, 임금에게 올렸던 글들과 신숙주를 비롯한 일부 인물들의 활동을 기록한 행장 등의 산문들이 올라있다.
서가 18편이고 발이 12편, 기가 10편이며 상서는 4편, 다른 인물들의 활동을 기록한 행장은 3편 그리고 전기 1건이 수록되여있다.
그밖에 제문, 상소문, 비명 등의 산문들도 여러건씩 수록되여있다.
《사숙재집》에 수록되여있는 많은 산문작품들은 당시의 시대적환경과 력사적사건들과 사실, 인물들과 대상들과 관련된 구체적인 내용, 강희맹의 세계관과 정치적견해와 예술에 대한 견해 등에 대하여 파악할수 있게 해준다.
《사숙재집》은 강희맹과 편찬자들의 계급적 및 시대적인 제한성으로 하여 봉건통치계급의 리익을 옹호하고 봉건군주에 대한 충군사상을 설교하고 비과학적이며 미신적인 내용의 작품들이 적지 않게 수록되여있는 부족점이 있다.
그러나 《사숙재집》은 수록된 글작품들의 주제와 형식이 다양하고 내용이 풍부한것으로 하여 당시의 사회상과 인민들의 생활감정, 세태풍속의 연구와 다양한 문체의 연구, 중세문학의 발전면모를 연구하는데 가치있는 자료들을 제공해주는 귀중한 민족고전유산으로 되고있다.